ZEROBASEONE 정규 1집 [NEVER SAY NEVER]
프로젝트 그룹은 시작부터 ‘유한성’이라는 낙인을 가지고 태어난다.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끝’을 떠올리게 만든다. 따라서 팬들은 역설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끝은 더 선명히 다가오고, 그 끝을 의식할수록 현재는 더욱 간절하고 소중해진다. 그러나 이들의 강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역설적인 감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끝을 향해 간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현재의 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바이벌 프로그램부터 차곡차곡 쌓인 서사를 밑바탕으로 그룹의 브랜딩이 시작되며, 이는 곧 강력한 소구점이 된다.
ZEROBASEONE(이하 제로베이스원) 또한 ‘보이즈플래닛’이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으로 내년 1월 활동 종료 예정이다. 같은 시리즈의 프로젝트 그룹인 ‘Kep1er’ 또한 미니 앨범 5개, 정규 앨범 1개를 발매한 후 활동 기간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공식적으로 ‘마지막’이라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계약 종료 시점과 활동의 흐름을 고려할 때 이번 정규 1집 [NEVER SAY NEVER]는 팬들에게 사실상 마지막 앨범이라 여겨지면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을 말하기에 앞서 시작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말했던 서사를 밑바탕으로 한 그룹의 브랜딩은 강력한 소구점이 된다고 했는데, 데뷔 앨범 [YOUTH IN THE SHADE]는 그 출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프로그램 직후의 높은 화제성을 기반으로 서바이벌 경쟁 이후 태어난 서사를 ‘만개’라는 테마로 나타냈다. 이는 동세대 보이그룹의 청량 기조 속에서도 제로베이스원만의 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며 약 180만장에 달하는 역대 데뷔 음반 초동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의 앨범들은 일관성 없는 콘셉트와 동세대 보이그룹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지 리스닝 사운드에 기대며 ‘제로베이스원만의 색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정체성을 증명하기보다 시장의 트렌드만을 따라갔고, 자연스레 데뷔 앨범만큼의 파급력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규 1집 [NEVER SAY NEVER]는 이러한 비판을 정면 돌파한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과감하다. 중간 과정을 사실상 지워버리고, 데뷔 앨범과 정규 앨범을 정반대로 맞세우는 전략이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스타일링’이다. 제로베이스원은 별도의 콘텐츠인 ‘FIT CHECK’를 통해 이를 강조했다. 이전에도 존재하던 단순한 스타일링 쇼케이스 형식을 차용했지만, 이번에는 대비되는 스타일링을 통해 앞으로의 콘셉트와 변화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단순한 프로모션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시각적으로 입증하는 선언인 셈이다.
콘셉트 포토의 ORDINARY vs ICON 구도는 이를 상징적으로 응축한다. ORDINARY 버전은 보자마자 데뷔 초를 의도적으로 소환한다. 내추럴한 헤어와 데님 스타일링, 풀과 나무로 채워진 자연의 배경은 데뷔 앨범 [YOUTH IN THE SHADE]의 타이틀 ‘In Bloom’ 활동 당시의 스타일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SHADE’ 버전 콘셉트 포토와도 흡사한 구도와 색감을 가져오면서, 놀이터의 그네와 시소, 자연광을 담은 빈티지한 필름 톤을 더해 소년 시절의 청량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반면 ICON 버전은 전형적인 락스타 이미지로 180도 돌변한다. 화려한 실버 악세서리, 시니컬한 가죽과 봄버 자켓, 플레어 팬츠와 볼드한 부츠는 이들을 더 이상 ‘소년’이 아니라 ‘무대 위의 아이콘’으로 변주시킨다.
이 대비는 단순한 스타일링의 변화가 아니라, 데뷔 앨범과 정규 앨범이라는 양극단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넣어 ‘시작과 끝’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데뷔 초를 소환한 뒤, 그 이후 이어졌던 미니 2집부터의 모호했던 정체성을 과감히 지워내고 새로운 방향성을 선명히 제시한다. 다시 말해, 처음과 끝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압축해 보여줌으로써 프로젝트 그룹의 한정된 시간을 서사적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달라진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낸다. 즉, ORDINARY와 ICON의 대비는 단순한 비주얼적인 연출이 아니라, 제로베이스원이 비판을 돌파하고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서사적 장치로 활용된다.
제로베이스원의 이번 앨범이 특별한 이유는 프로젝트 그룹의 ‘유한성’을 단순히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무한성의 언어와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트레일러 ‘NEVER' Film은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강아지가 운전을 한다거나, 디저트를 끊었다더니 몰래 먹는 장면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모습이거나 희망하는 미래와 달리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앨범 제목 그대로 [NEVER SAY NEVER]라는 역설을 시각화하는 것 같달까. 불가능을 부정해 가능으로 전환하는 이러한 이중 구조의 제목은 끝이 정해진 그룹임에도 스스로 그 유한성을 부정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타이틀곡 ‘ICONIK’의 가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누 디스코 사운드 위에 얹어진 ‘No Gravity Stopping Us’라는 가사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제약을 ‘중력’에 빗대어 표현하고 이를 거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중력이 인간을 지구에 가두어 두는 구속적인 의미라고 한다면 달과 우주로 향하는 순간은 그 구속에서 벗어나는 은유적인 행위임을 의미한다. 또한 ‘What We Got is ICONIK’에서 ‘We are ICONIK’으로 이어지는 가사의 변화도 눈에 띈다. 이는 유한한 프로젝트를 넘어 오히려 화려했던 시대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기억되겠다 라는 강한 정체성이 느껴진다.
MV 속 우주 비행과 달 착륙 장면은 이를 더욱 강화한다. 달에 찍힌 첫 발자국은 인류가 불가능하다 여겼던 아폴로의 도전을 의미한다. 마치 ‘보이즈플래닛’에서 시작했던 그룹의 종착역을 달 착륙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서사처럼 느껴진다. 제로베이스원에게 끝은 곧 새로운 시작으로 나타내는 의미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헤겔의 변증법을 말하고 싶다. ‘정’(프로젝트 그룹의 유한성)과 ‘반’(별·우주·아이콘과 같은 무한성)을 정면 충돌시키고, ‘합’(끝이 미래로 전환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보이즈플래닛’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제로베이스원의 서사는 어색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함께 MV에서 스쳐가는 문구인 ‘Departing to Lingering In Bloom’은 이 모든 이야기를 압축한다. 떠나지만 만개한 채로 머무른다는 뜻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난 순간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에 남은 최초의 발자국처럼, 기억 속에 남는 향기처럼,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 말이다.
프로모션 역시 시간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앨범 스케줄을 비디오테이프 형식으로 꾸미며 과거를 기록하듯 보여줬고, 하이라이트 메들리에서는 각 트랙 사이를 연결하는 파란 선을 배치했다. 이는 단순한 그래픽이 아니라, 각각의 트랙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치 지나간 시간을 선으로 엮어내듯 제로베이스원의 마지막 여정을 연속적인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룹명 ZEROBASEONE이라는 이름은 ‘0에서 1로’라는 도약을 뜻한다. 이 단순한 명제는 이번 앨범에서 결정적인 메타포로 활용된다. 시작과 끝의 비유를 0과 1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수학적으론 당연히 틀린 말이지만, 0과 1의 차이가 1과 2의 차이보다 크다고 느껴지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것이 처음으로 출현하는 순간의 무게는 감각적으로 그 어떤 연속적 증가보다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지금, [NEVER SAY NEVER]는 프로젝트 그룹이 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답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외침이 아니라, 끝을 미래로 전환하는 선언이다. ORDINARY와 ICON, 유한성과 무한성, 지구와 달. 모든 대비와 역설로 지금까지의 서사를 봉합해낸 앨범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단순히 제로베이스원의 마지막 기록이 아니라, 앞으로 프로젝트 그룹의 유한성을 어떻게 서사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교보재다. 끝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또 다른 시작으로 전환하는 방법. 그것이야말로 제로베이스원이 남긴 가장 아이코닉한 유산일 것이다.
by. 광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