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TIS, 유다빈밴드, 최엘비, Frost Children 외
iforyoursanity : 빅히트 막내 CORTIS(코르티스)가 일명 '영 크리에이터 크루'라는 컨셉으로 세상에 나왔다. 특정 포지션 없이 멤버 모두가 다양한 영역에서 창작 역량을 발휘하는 방식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면모는 다양한 곳에서 드러난다.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안무, 영상 제작 과정에서 참여도가 높은 모습들을 비추고, 멤버들이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를 언급한 것은 큰 주목을 받으며 후르츠 패밀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 케이팝 아이돌이 단순 퍼포머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다방면에서 주체성을 쥐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에이티즈의 홍중과 민기, 세븐틴의 우지가 그랬듯이 물론 이러한 크리에이티브 포지셔닝 아이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버추얼 IP인 플레이브를 제외하면 전 멤버 전 영역 창작보다는 일부 영역 일부 인원이 창작에 참여하는 양상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다르다. 즉 '영 크리에이터 크루'라는 용어까지 만들며 자체 프로듀싱 포지셔닝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은 이들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면적 시도가 케이팝 시장에 또 다른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음악적 브랜딩에서는 BTS, TXT를 이어 나온 빅히트 출신 아이돌임에도 케이팝 곡의 정석을 따르기보다는 '자유로운 외국 힙합 및 밴드 컨셉'을 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선 ‘GO!’는 미니멀한 트랩 기반의 곡으로, 귀에 감기는 신스 사운드는 'GO! 댄스 챌린지'가 유행하는데 일조했다. 또한 가장 유명한 그 구절만 들으면 마치 외국 힙합 곡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타이틀 곡인 ‘What You Want’은 밴드 록 사운드와 붐뱁 힙합을 결합한 곡으로, 거칠고 날 것의 사운드와 로우키한 보컬 합창의 향연, 타이틀 곡 치고 루즈한 템포 등의 요소들은 한 데 모여 미국의 인디 밴드를 연상시킨다. ‘FaSHioN’ 또한 조금은 딥한 레이지 위에 날카롭고 파워풀한 딕션을 얹으며 트레비스 스캇을 비롯한 레이지 아티스트들을 떠올리게끔 한다. 결국 이들의 음악은 정제된 아이돌보다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해외 아티스트의 포지셔닝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만 이러한 음악적 실험성은 신선하지만 아쉽다. 초대형 기획사라면 대중적인 음악을 충분히 무기 삼을 수 있으나 오히려 미성숙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좀 더 후킹하여 숏폼에서도 빠른 반응을 보인 완성도 있는 ‘GO!’를 두고 구조적으로 다소 단순하고 사운드가 거칠게 처리된 ‘What You Want’을 타이틀로 내세웠다. 기존 케이팝 송폼을 벗어나 훅의 부재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컬의 정제되지 않은 톤, 편곡에서의 비워둔 공간은 아직 스케치 단계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말 그대로 초대형 기획사에서 나온 인디 락 컨셉의 신인 그룹이라기보다는, 정말 갓 데뷔한 인디 락 그룹의 결과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도된 러프함 덕에 성장 서사와 자체 제작 브랜딩이 공고히 된 것은 맞으나, 빅히트 신인의 타이틀 곡이라는 위치에 비해 음악적으로 아쉬운 지점들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빅히트라는 힘이 받쳐질 수 있고, 또 산업적으로 받쳐져야만 했을 텐데 선택하지 않은 것은 결국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팀의 정체성, 서사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영리한 선택일지는 팀의 앞날을 지켜봐야 알 듯하다.
Noey : [CODA]라는 제목은 마침표이면서 동시에 공백이다. 내년 멤버 대부분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곧 찾아올 공백기를 의식한 의도적 표식처럼 보인다. 앨범 아트워크와 트랙리스트는 연극의 흐름을 그대로 빌려온 듯하다. Intro–Intermission–Epilogue로 이어지는 구조, '커튼콜'이라는 트랙명은 그 자체로 '극'처럼 앨범을 감상하게 만든다. 설정만 놓고 보면 꽤 공을 들였지만, 정작 무대 위 전개는 심심하다. 전반부는 익숙하다 못해 너무나도 무난하다. 단조로운 코드 워크와 반복적인 코러스, 단발적으로 터뜨리는 클라이맥스까지, 밴드가 이미 익혀온 화법을 반복하며 특별히 각인될 순간 없이 지나간다. 타이틀곡 ‘어지러워’나 ‘20s’ 역시 이러한 틀 안에서 왜 타이틀곡으로 올렸는지 납득할 만한 차별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CODA]는 유다빈밴드가 자신들의 서사를 정리하며 남긴 하나의 극본처럼 읽힌다. 다만 앨범의 절반 가까이가 익숙함에 머물러 긴장감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해 "뻔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오히려 후반부에 배치된 ‘축배’나 ‘지나갈 지나간 지나쳐갈’에서야 비로소 밴드 특유의 꽉 찬 호흡과 감정의 진폭이 살아나며, 앞선 흐름의 아쉬움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한다. 유다빈밴드가 만들어낸 극본은 후반부의 몇 장면 덕에 끝내 관객에게 박수를 이끌어내지만, 그 박수가 기립박수일지, 혹은 예의상 건네는 박수일지는 애매하다.
엉얼 : 이번 [her.]은 순간에 함께 있던 '여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작에는 독립음악(인디뮤직)의 상징인 브로콜리너마저를 피쳐링으로 불렀다면, [her.]에서는 여성 게스트가 주를 이룬다. 독립음악 이후에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놓는 점과 이전에 발매했던 앨범들의 가사들을 오마주 하면서 자신의 서사를 더욱 단단하게 완성시켰다. 하지만 전작과 겹치는 점이 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전작과 비슷한 스토리 시작 구조, 조금 떨어지는 앨범의 유기성(1번 트랙 ‘니여자’는 여자 얘기, 2번 트랙 ‘YSL’은 가족 얘기)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로 써 내려간 앨범을 발매한 건, 듣기 쉽고 가벼운 음악들 사이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앨범의 무드는 리듬 타기 어렵지 않은 드럼 박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체적으로 앨범의 드럼 소스는 붐뱁에서 많이 들리는 wet 한 느낌의 소스를 사용하였다. 그중 타이틀 곡인 ‘킹오브인프피’에서 브라스와 그에 맞춰 나오는 전자 피아노, 그리고 코러스에서 '고엘비!'를 반복하는 모습은 90년대 동부힙합을 떠오르게 한다. [her.] 앨범의 곡들은 대부분 BPM이 높지 않고 드럼, 일렉기타, 베이스 라인이 화려하지 않기에 밴드 편곡까지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6번 트랙인 ‘찌질의 역사’에서 그러한 점이 많이 느껴졌다. 다만 아쉬운 점은 8번 트랙 ‘her intro’는 2막이 열리는 느낌을 주어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이후 13번 트랙까지 몽환적인 신스 or 따듯한 일렉기타 사운드를 메인으로 사용하여 chill 한 바이브가 느껴져 후반부에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있다.
최엘비는 [독립음악]에서 어머님께 10만 원을 빌려 갔던 사람에서 '꿨던 돈의 50배로 갚는 사람'(2번 트랙 ‘YSL’ 中)이 되었다. 전작보다 붐뱁, 재즈와 같은 트랙을 더 추가시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리고 단단한 발성 그리고 억지 라임 없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작법으로 능숙하게 풀어간다. 최엘비는 이번 앨범 이후로 어떤 사람이 될지, 무슨 이야기로 리스너들을 또 몰입시킬 수 있을지, 또한 레이지와 같은 다른 사운드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여러모로 기대된다.
iforyoursanity : 유행은 늘 순환한다. 2010년대 초반을 휩쓴 EDM은 사라지는 듯 보였지만, 하이퍼팝의 부흥을 거쳐 다시금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 Frost Children의 Sister는 2010년대 초반 EDM과 지금의 하이퍼팝 부흥을 한데 아우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다. 단순히 그 시절의 전자음악 사운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대의 불안과 그 시절의 해방을 동시에 담아낸다. ‘RADIO’의 두텁게 쌓인 신디사이저, ‘Position Famous’의 급박한 베이스와 밝은 기조의 피아노, 앨범 전반적으로 상기된 보컬과 빠른 템포 등은 '놀자, 해방' 등의 그 시대 파티적인 에너지를 담아내면서도 ‘Ralph Lauren’, ‘Dirty girl’의 과잉된 사운드, 거친 텍스처, ‘CONTROL’의 반복되는 대사와 불협화음은 현세대의 불안과 긴장을 표현한다. ‘4ME’나 ‘Bound2U’ 같은 트랙은 정체성 혼란, 사회적 압박 속에서 현세대가 겪는 감정을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Frost Children의 Sister는 춤추고 노래하며 불안을 극복하는 현세대의 사운드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패션과 비주얼 또한 앨범의 중요한 요소다.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비쥬얼 적인 면에서는 영화〈Skins〉나 인디 슬리즈(Indie Sleaze)를 떠올리게 하는 90년대 클럽 키즈 스타일을 차용한다. 과장된 메이크업, 자유로운 의상, 클럽 현장의 에너지를 재현하는 태도는 음악과 맞물려,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한다. 사운드와 비쥬얼 모든 방면에서 자유와 파티, 즐거움의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 속에는 현세대의 불안에 관한 심리적 반영이 겹쳐있다. 가끔은 이러한 쾌락적 이미지로 인해 EDM은 음악계에서 진지하지 못한 음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단순히 청각 및 시각이 주는 감각 너머로 이 앨범에서 Frost Children이 주려는 메세지에 주목해 본다면 앞선 편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Noey : 그룹 활동으로 이름을 알린 팝스타가 해체 이후 내놓는 첫 솔로 앨범은 언제나 기대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한 그룹의 멤버로만 소비되던 이미지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Little Mix(이하 리틀 믹스)처럼 명확한 센터가 없었던 경우, 솔로로 나설 때는 모든 것을 최대로 끌어올려 개성을 최대한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 JADE(이하 제이드)는 ‘Angel Of My Dreams’부터 이어진 선공개 싱글들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기에 그게 이미 최고점이 아니냐는 의심도 뒤따랐으나, 이번 앨범은 그런 걱정을 충분히 지워낸다.
첫 번째 정규 앨범이자 데뷔 앨범인 [THAT'S SHOWBIZ BABY!]는 맥시멀리스트 팝 부흥의 흐름에 올라탄다.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속삭이는 보컬과 미니멀한 사운드가 주류를 이뤘다면, 최근 1~2년 사이 팝은 다시 화려하고 꽉 찬 사운드를 갈망해 왔다. Charli XCX나 Chappell Roan이 대표적인 이름이다. 같은 선상에서 제이드 역시 다시 화려하고 풍성한 사운드를 택했다. 빠르고 강렬한 일렉트로팝 ‘It girl’과 ‘Midnight Cowboy’는 전면을 단단히 잡아주고, 중반부를 책임지는 ‘Fantasy’, ‘Unconditional’, ‘Self Saboteur’과 같은 트랙들은 신스 기반의 댄스 팝으로 전개되지만, 동시대 팝을 대표하는 사브리나 카펜터식 신스 팝과는 또 다른 결이다. 제이드는 더 과감하게, 더 자기 방식으로 보여준다.
발매 전략 차원에서의 아쉬움은 남는다. 14곡 중 절반을 1년에 걸쳐 선공개한 탓에 신곡이 몰린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힘이 빠져 보인다. 트랙리스트를 균등하게 배치했다면 앨범의 흐름이 더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 앨범이 제이드의 커리어를 규격화된 팝 공식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팝스타들이 택하는 안전한 공식을 떠올려보면, 라디오 친화적인 사운드, 샘플에 의존한 안전한 댄스 팝이 대부분이다. 제이드는 이 틀에서 벗어나 곡 안에 서로 다른 장르를 겹겹이 얹고 사운드를 맥시멀하게 확장해 리틀 믹스 시절의 상업적 팝과는 분명히 거리를 둔다. 이제 제이드는 '전 리틀 믹스 멤버'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입지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THAT'S SHOWBIZ BABY!]는 그 첫 장을 설득력 있게 열어젖힌다.
엉얼 : [Breach]의 리스닝 포인트는 다양하게 있다. 랩과 보컬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1번 트랙 ‘City Walls’. 보컬의 리버브를 더 넣어 공허한 느낌을 주는 4번 트랙 ‘Garbage’. 코러스에서 튠을 높게 잡아 긴박한 느낌을 주는 5번 트랙 ‘The Contract’. 앨범 흐름을 끌어올렸다가 풀어주는 트랙이 있다. (8번 트랙 ‘Center Mass’ -> 9번 트랙 ‘Cottonwood’) 특히 11번 트랙 ‘Days Lie Dormant’의 시작은 밝은 느낌의 신스 사운드로 시작하다가 verse에서는 신스가 빠지며 인트로와 분위기가 대비되는 분위기를 이어가고, 다시 밝아졌다가 Bridge에서는 클래식 피아노를 사용하며 텐션을 확 낮춰버린다. 이처럼 다양한 포인트를 짚어가며 듣는 것이 이번 앨범을 듣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앨범은 밴드 사운드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메인 사운드는 튠을 건 일렉기타 사운드와 기타 루프, 신디사이저가 메인인데 1번 트랙인 ‘City Walls’에서 잘 드러난다. 1번 트랙과 2번 트랙에서 웅장하고 조금은 공격적인 느낌의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여 앨범 전체가 그런 느낌일 줄 알았지만 9번 트랙 ‘Cottonwood’나 10번 트랙 ‘One Way’ 같은 경우는 몽환적인 피아노와 신스사운드를 사용하며 트랙 간에 대비를 주며 앨범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앨범의 곡들은 보컬의 고음과 곡의 템포가 빠른 트랙이 있음에도, 다양한 음역대를 가진 악기들의 소리 하나하나 균형 있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7년 만에 세계관이 끝난 twenty one pilots의 [Breach]는 자신들이 얘기했던 스키조이드 팝(Schizoid Pop: 정신 분열 팝)에 벗어나지 않고 작업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바이브가 쭉 이어지는 곡들이 있었고, 흐름을 예상할 수 있는 트랙들도 있기에 자신들의 색깔을 조금은 덜어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아마 기존 팬들은 색깔을 더 진하게 담아 세계관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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