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필요한 소리를 담았어요." khc 인터뷰

251218 khc 작업실

by 고멘트

최근 들어 한국 전자음악 씬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단순히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 아닌, 어떤 순간을 그려 내려고 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인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자음악의 사운드를 발전시키고 있다. 누구는 신디사이저에 대해 더 집중하고, 또 다른 이는 편집 방식을 더 파고드는 형태로.


khc는 후자의 경우이다. 특히, 전자음악의 편집 방식을 어쿠스틱 악기에 도입하며 청자들에게 전자음악의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컴퓨터의 프로그래밍으로 인한 소리가 아닌, 현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소리를 하나하나 모아 독특한 편집을 시도하여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내는 것이 khc 음악의 매력일 것이다. 2024년 EP [소거로]로 솔로 데뷔를 한 khc, 작년 11월 [아침놀]이라는 정규 앨범으로 그의 음악적 세계를 또 한 번 확장했다. 그 후로 한 달 지난 12월, khc의 작업실에 찾아가 그의 솔로 커리어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음악가 khc입니다. 최근에 [아침놀]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어요.

Q. [아침놀]을 발매한 후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 많이 쉬었어요.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최근에 공연 두 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Q. 공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우희준님과 합동 공연을 하셨어요. 콜라보 공연 소감이 궁금합니다.

- 준비를 되게 열심히 했어요. 우희준님과 공연했던 방식, 그러니까 제 곡을 다른 분들이 세션으로서 참여하는 공연은 처음이어서 되게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언젠가 제 곡으로 합주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의 초석으로서 체험해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의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Q. 포크트로니카라는 장르 특성상, 라이브가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구현하는 데 어려웠던 지점이 있을까요?

- 맞아요. 아무래도 음원과 똑같이 구현하는 것은 어려워서, 그 공연은 포크트로니카적인 맥락보다는 오히려 그냥 포크의 느낌이 조금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출처: 우희준님 유튜브


Q. 사운드 서플라이 서비스에서 4주년을 기념해 리믹스 트랙을 내신다고 들었는데, 사운드 서플라이 서비스랑은 어떻게 함께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오래전부터 사운드 서플라이 서비스(이하 사서스) 음악의 팬이었어요. 제가 옛날에 작업물 있으면 사서스 사장님께 들려주고 그랬었는데, 어느 날 사장님께서 이제 앨범 준비되면 한번 연락하라 하셔서, “마침 잘 됐다. 앨범을 만들고 있는데…” 하고 연락이 됐었고 그렇게 사서스에서 발매하게 되었어요. 언젠가 레이블을 통해 발매도 해보고 싶었기도 하고 제겐 너무 좋은 기회였죠.




khc - 'origami'


Q. EP [소거로]의 제목 뜻이 궁금합니다.

-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지우고 제거한다’라는 뜻의 ‘소거’도 있을 거고… 세 글자의 어떤 이름을 하고 싶었는데, 소거로를 잘못 쓰면은 소지로처럼 되고, 반대로 소지로를 잘못 쓰면 소거로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단어 자체가 재미있는 게 더 컸고요. 의미상으로 보면 ‘지운다’의 ‘소거’가 맞는 것 같지만, 맥락상의 의미라기보단 EP를 구축하는 하나의 단편적인 말, 키워드로서 의미가 더 컸던 것 같아요.

Q. 앨범 소개 글에 ‘내가 숨은 굴로 놀러 오세요’라고 쓰여 있는데, 제목의 영향인지 앨범의 흐름까지 동양 판타지풍의 여행기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이 소개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 제가 [소거로] 만들 때 작업실이 너무 추워서, 작업실 공간을 비닐로 둘러쌌어요. 그러니까 작업실이 약간 비닐로 만든 굴처럼 됐는데요. 그래서 아예 이 굴에서 만든 음악을 듣는 것이 제가 만든 세계 안으로 들어오는 거로 생각하고 소개말을 적었어요.


Q. 스포티파이 소개 글도, 앨범 소개도 항상 단편적으로 적혀 있더라고요.

- 그게 그냥 저란 사람의 특징인 것 같은데, 음악 외적으로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게 어려워요. (웃음) 특히나 제 작품에 대해서 스스로가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리면, 그 언어가 해당 작품을 감상하는데 어쩔 수 없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하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말이나 소개 글 같은 건 더더욱.

Q. 2023년에 moribet 님이랑 같이했던 [전파납치]는 실험적이고 냉소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소거로]에서 [아침놀]로 이어지는 개인적인 커리어에서는 신비스럽고도 따뜻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첫 EP [소거로]를 준비하면서 신경 쓰신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소거로]만 특히 그런 건 아니지만, 음악을 만들 때 항상 신경 쓰는 지점은 있어요. “앨범을 끝까지 듣는데 그렇게 지루한 구간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 해서, 앰비언트 성이 강한 트랙을 연속으로 두지 않고 반드시 중간에 리드미컬한 트랙을 쓰는 식의 배치를 하는 것 같아요.

Q. 의도적으로 [전파납치]와 분위기를 다르게 하려고 하신 건 아니군요.

- 네네. 제가 음악을 만들 때, 항상 그 순간순간 저한테 필요한 소리를 만드는 것 같은데, [전파납치] 이후 2~3년간 더 따뜻한 소리를 필요로 했던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또, 그때는 컴퓨터 안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었고, 그 이후에는 아날로그 악기 중심의 선율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전파납치] 중 '저회(feat. 이민휘)'

Q. [소거로]의 2번 트랙, ‘^^;’ 이라는 제목의 비화가 궁금합니다.

- 6v6 Recordings라는 음악 동호회 컴필레이션에 있던 트랙이죠. 컴필레이션의 주제 자체가 이모티콘이었어요. 문자 3개로 만든 이모지 같은 거를 곡 제목으로 설정하는 게 규칙이었어서, 그때 제가 정한 게 이 ‘^^;’ 이었거든요. 그 후에 그 곡을 EP에 담으려는데, 그 제목보다 마음에 드는 제목이 없어서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Q. 이 트랙은 부를 때 뭐라고 부르시나요?

- 눈웃음 땀이라고 부릅니다. (웃음)

Q. 6v6 Recordings 컴필레이션 앨범을 위해서 만든 곡이었는데, EP에 수록된 것인가요?

- 그걸 위해서 만든 건 아니고, 항상 작업을 하고 있긴 하니까 컴필레이션 앨범 때, “뭘 제출하지?” 하다가 이 곡을 제출한 거죠. 그 컴필레이션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Q. ‘^^;’의 가사는 “누의 무리”부터 시작해서, 가사가 매우 추상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요.

- 누, 동물 ‘누’가 뛰어가는 장면을 어디서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누’라는 게 중의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어떤 개인이 저지른 잘못’이란 의미의 ‘누’. 그래서 ‘누의 무리들’이 애초에 ‘우리들’이라는 맥락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지만, 저는 사실 가사 쓸 때, 발음이 그 곡에 얼마나 잘 묻는지를 중심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Q. Playboi Carti식 작사법이네요. (웃음) 최근 국내 인디 음악에서 khc 님과 비슷한 언급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분명 몇 년 전까지 가사를 얼마나 의미 있게 쓰느냐가 그 아티스트의 성숙도를 매기는 척도 같은 것이었는데, 요즘에는 의미보단 하나의 ‘악기’로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 둘 다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의미나 맥락에 대한 생각을 덜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이번 앨범 [아침놀] 만들 때 그런 걸 신경을 써야겠다 싶었어요.

khc - '^^;'


Q. ‘비늘굴’은 [소거로]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사운드가 움직이는 트랙이었습니다. 초반부에 유리 조각에 잘게 부딪히는 소리라든지, 후반부 타악기 소리가 신디사이저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신비로우면서도 벅찬 감성을 만들어낸 게 되게 인상 깊었습니다. 이 곡을 구성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 이 곡이 진행되는 순서대로 곡을 만들었는데요. 이런 글리치한 비트 같은 거 넣고 싶었는데, 그 EP에서 이 곡 말고 글리치한 느낌이 없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Q. 그럼 이런 트랙을 만들 때 시작점은 어떤 부분에서 시작하는 건가요?

- 매번 다르긴 한데, 제가 작업을 하다 특정 부분에서 더 나아갈 방향을 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때 어떤 ‘좋음’을 발견하고 그 부분이 “내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그 부분부터 나아가기 시작해요.

Q. 어떤 특정 소스가 “전망이 보인다.” 싶으면 발전해 나가는 방식인 거군요.

- 저는 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고 동시에 제 음악을 듣는 사람이기도 한데, 이게 참 모순적인 부분이 있어요. 만드는 내내 제가 그걸 듣고 있으니까, 제가 지루하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 안에 리스너가 이 곡을 흥미로워하고 어떻게 나아갈지 궁금해야만 만드는 거 같습니다.


khc - '비늘굴'


Q. 차분하면서도 신비롭고, 때로는 서늘한 느낌을 주는 신디사이저 사운드. 이런 요소들이 khc 님의 음악이 갖고 있는 정체성을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디사이저 사운드로 어떻게 사운드를 만들고 다듬었는지도 궁금합니다.

- 일단 어떤 랜덤한 패칭을 구성해서 아주 길게 녹음을 다 받습니다. 어떤 의도로 “이렇기 때문에 이런 소리가 날 거야.”라는 것을 잘 모른 상태로 무작위로 노브를 돌리거나 하면서 길게 녹음을 받아요. 그리고 그 녹음된 것에서 어떤 맥락을 발견하면 제가 선택을 하는 거죠.


Q. 그리고 앨범 전체적으로 역재생되는 소리가 많이 느껴지는데, 이런 역재생되는 사운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이것도 앞에 한 대답에서 이어 간다면, 제 안에 리스너가 재미를 원하고, 그 재미를 위해서 어떤 특정 소리를 제가 몰라야만 해요. 그런데, 역재생이라는 기법은 제가 아는 소리도 처음 들어보는 소리처럼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소리라는 것은 시간을 따라가는 형태를 띠기 때문에 제가 뭘 녹음하든 다 한 번씩 리버스를 시켜봐요. 그러면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너무 재밌어요.

Q. “역재생이 안타 확률이 높다.”라는 뜻이군요.

- 아, 그럼요. 되게 좋은 방법이에요. 그래서 피치를 내려보기도 하고 속도를 빨리 감아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다 그런 이유죠.


Q. 전반적으로 앨범 만들 때 다른 아티스트처럼 큰 키워드를 잡고 짜맞추듯이 만드는 것보다는 만들다 보니 이거랑 어울리겠다 싶으면 넣는 방식의 작업 과정을 좋아하시는 걸까요?

- 네,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 모든 작업 과정의 주체가 저이기 때문에 의도적이진 않아도 어떤 특정된 하나로서 귀결되는 것 같긴 해요.




Q. [아침놀]을 준비하면서, [소거로]와 다른 포인트를 주려고 의식한 부분이 있었을까요?

- [소거로]때보다 더 노래 같은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진행감이 더 두드러진다거나, 선율적인 도전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Q. 아까 얘기했던 소거로 ‘^^;’ 처럼 다이나믹에 집중하는 방식보단 기성곡이 가진 전개, 즉 송폼을 가지고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으셨다는 걸까요?

- 꼭 그런 느낌이라기보단… moribet 님이 해줬던 말인 거 같은데, “좋은 곡은 악기를 다 빼고 기타와 멜로디 혹은 보컬만 남았을 때도 여전히 좋은 곡이어야 된다.”라는 말을 해줬던 것 같아요. 그 친구 말처럼 그냥 “좋은 곡”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khc - '송가'


Q. [아침놀]의 앨범 제작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 특별한 영감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 “슬슬 앨범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바로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마치 ‘아침놀’이라는 앨범의 이름처럼, 이번 앨범은 [소거로]에 비해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소거로]가 조금 더 음산한 시골이라면, [아침놀]은 평화로운 시골 같아요. 의도하신 부분일까요?

- 아마 제작 시기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놀]은 봄, 여름에 집중적으로 만들었고, [소거로]는 가을, 겨울 넘어가는 계절에 주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방면으로는 저라는 인간 자체가 조금 더 따뜻한 소리를 필요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이번 앨범에서는 ‘곡’처럼 만들고 싶다 보니까 더 그렇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소리적으로는 확실히 이번엔 녹음을 많이 하고 싶었어요. 어쿠스틱 녹음을 많이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따뜻해진 거 같기도 해요.


Q. 그러면 [아침놀]이란 제목 같은 경우도 곡을 먼저 만들고, 따뜻하단 감성을 느껴서 자연스럽게 붙이신 건가요?

- '아침놀'이라는 키워드는 옛날부터 갖고 있었어요. 평소에 ‘아침’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정했다가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아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아침이라는 게 꿈의 시간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요. 몽롱함이 가시지 않아 주변이 기괴하게 눌러붙어 있는 느낌들… ‘놀’이란 글자는 '놀이' 같기도 하고 '타이레놀' 같은 약 이름 같기도 했어요. 그럼, 누가 이 ‘아침의 약’을 처방받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죠. 여러 생각들이 담겨 이 단어를 언젠가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앨범 전체적으로 ‘조이고’ ‘푸는’ 다이나믹한 완급조절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항상 거추장스러운 꿈을 꾸고’는 물론이고, ‘송가’와 ‘비 오는 날’도 트랙 자체가 조이는 트랙과 푸는 트랙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런 완급조절을 추구하신 이유도 앞서 말씀하신 그런 재미를 추구하신 건가요?

- 그렇죠. 제가 곡에 그런 구조를 넣는 걸 좋아하고, 곡을 듣는데 계속 흥미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Q. 모든 트랙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도 한 번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요?

- 네네. 그렇게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아침놀]을 관통하는 키워드, 포인트가 있을까요?

- 제 대답이 앨범의 모든 주제를 말하는 것처럼 보일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한 키워드가 있다면 일종의 양가성이 아닐까 싶어요. 빛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따뜻함이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방향성, 그런 긍정적인 요소로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것 같아요. 때로는 그 빛을 피해 숨기도 하고요. 그래서 특정 사물이 가진 두 가지 속성을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앨범 전체에서도 그런 포인트가 많아요. 온도감으로 말하자면 앨범에서 차가운 트랙이 있고, 따뜻한 트랙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각 트랙 안에서도 어떤 부분은 차갑고 따뜻하고, 이게 나눠지는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느끼기에 ‘비 오는 날’은 차갑고, ‘송가’는 따뜻하거든요. 비와 빛 등으로 이어지는 어떤 온도의 경계, 그리고 그 사물들이 갖는 이면들을 보이고 싶었어요.


Q. ‘우리는 항상 거추장스러운 꿈을 꾸고’에서는 유모레스크 멜로디가 등장합니다. 어떤 영감에서 시작됐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요즘 바이올린을 열심히 연습 중인데,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면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 같은 책으로 주로 연습해요. 그 책 3권인가에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7번 악보가 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울 때는 바이올린이 너무 싫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이상하게 유모레스크는 마음이 갔어요.


khc - '우리는 항상 거추장스러운 꿈을 꾸고'


Q. 3번 트랙 ‘송가’, 5번 트랙 ‘오후’에 삽입된 대화와 웃음소리도 인상 깊었습니다. 출처가 궁금합니다.

- 그건 제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예요. 누구 놀러 오면 녹음 같은 거 도와달라고 하고, 녹음기 켜두기도 하거든요. 그런 경우도 있고, 제가 필드 레코딩 하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등산객들이 떠드는 소리나, 아기가 우는 소리 등, 일상적인 소리를 많이 녹음해서 사용하는 것 같아요.


Q. ‘송가’와 ‘비 오는 날’은, 두 트랙이 데칼코마니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혹시 의도하신 부분일까요?

- 의도했다기보다 어떤 부분에서 데칼코마니 같다고 느꼈는지 추측을 한번 해보자면, 둘 다 코러스 부분에서 같은 키에서 상승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아까 말했던 온도적 표현으로 말해보자면, ‘송가’는 따뜻하게 표현이 된 거고 ‘비 오는 날’은 차갑게 표현이 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표현했다고 느끼신 게 아닐까 싶어요.


Q. ‘오후’는 다른 트랙들과는 다르게 다소 정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또, 후반부에 등장하는 개구리 소리도 독특했는데요. 이 곡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오후’가 ‘비 오는 날’ 뒤에 나오는 트랙이라 오랜 시간 내린 비가 그치고 난 뒤를 연출하고 싶었어요. ‘청개구리 이야기’를 아시나요? ‘비 오는 날’ 가사 중에 “개구리도 어미가 떠내려간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면, 청개구리가 엄마 말을 하도 안 들어서, 엄마가 “내가 죽으면 강가에 묻어줘.”라고 유언을 남겼어요. 그래야 반대로 강가에 안 묻을 테니까. 하지만, 청개구리는 엄마의 유언은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강가에 묻었고 비가 오니까 쓸려 내려갔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5번 트랙에서 나온 개구리 소리가 그런 상황을 겪어 구슬프게 울고 있는 거예요.


Q. 저는 이 대목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 아 정말요? (웃음) 그래서 “아, 이거 재밌는데? 이거를 사람들이 알까?”라고 생각했어요. 또, 이 트랙으로 하나의 흐름을 마치고 싶기도 했어요. [아침놀]은 1번에서 5번, 6번에서 10번 이렇게 파트가 두 개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5번 트랙이 끝남으로 인해서 뭔가 1번에서의 5번까지의 얘기가 한번 정리되는 느낌이 있어요. 전반부가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khc - '오후'


khc - '비 오는 날'


Q. ‘캄캄한 곳에서’ 같은 트랙에서, 마지막 노이즈가 터지는 부분은 보통 비슷한 느낌의 장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사운드라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 사용하게 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 moribet 님이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트랙이라서 moribet 님의 흔적이 많이 남은 것 같아요. 그만이 할 수 있는 소리가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상상 속의 사운드를 정말 잘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Q. 이런 노이즈 사운드를 사용하신 것도, 계획보다는 “이쯤에 한 번 이런 게 있다면 재밌겠다.” 싶은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건가요?

- 네네. 그런 걸 하나 해보고 싶었는데, 이런 거를 moribet 님과 같이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죠. 정말, 대단한 청년, 너무나 굉장한 청년.


Q. 마지막 트랙 ‘아침놀’은 7분의 대곡인데, 이 곡의 작업 비화가 궁금합니다. 마지막 트랙이기도 하고, 앨범이랑 동명의 곡이기도 해서 중요한 곡 같아 보여요.

- 그렇죠. 음… 확실히, 조금 긴 트랙을 마지막에 두고 싶긴 했어요. 가장 먼저 만든 트랙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트랙이 앨범을 음악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다 압축시켜서 담고 있는 것 같아요.


Q. 크레딧에 ‘소리를 빌려준 친구들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고, 그 말마따나 앨범 전체적으로 여러 사람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는데요. 이렇게 여러 명의 보컬 소스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혹은 “목소리”라는 소스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보컬이라는 것은 되게 독특한 악기라고 생각해요. 모든 개인이 다른 목소리를 갖고 있어요. 예를 들면, 모든 개인이 다른 브랜드의 신디사이저를 목에 탑재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목소리들을 중첩해서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친구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Q. 특히 코러스 중에서 우희준 님이 참여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곡에 참여하셨는데, 우희준 님과 함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 원래 희준 님 EP 작업을 같이 하다가, 앨범을 만드는 데 도와주실 수 있냐고 제가 물어봤어요. 앨범에 관한 생각을 만들어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고, 2번 트랙 같은 경우에는 작사에도 도움을 주셨어요.


우희준 - '두 발로 움켜쥐기'


Q. 국내에서 인디트로니카, 포크트로니카라고 분류되는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아무래도 ‘공중도둑’이라는 빅네임이랑 연관이 많이 돼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khc 님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공중도둑의 부캐가 아니냐,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렇죠. 제 부족이죠. 그거는… (웃음) 공중도둑 님의 음악을 워낙 옛날부터 좋아했어서, 그게 제 안에 크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Q. 앨범 커버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또 직접 만드신 커버라고 하셨는데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 여름에 찍은 사진인데, 제가 산에 자주 가거든요. 아침에 산에 갔는데 그냥 태양을 찍은 사진 들 중, 손가락이 카메라를 가려서 약간 흐릿하게 찍히는. 그런 사진들 중 하나였어요. 그 사진이 앨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사진이라 생각했어요. 앞서 말한 “빛의 양가성”으로 봤을 때, 손가락이 그것을 오히려 막고 있는 거잖아요. 빛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데, 그럼 “나는 그 중간에 어디에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거죠.

만든 과정을 설명해 보자면, 이 사진을 인쇄하고 오려서 붙이는 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음악 작업에서 하는 방식들을 종이로 가져와서 그대로 한 것 같아요. 앨범 커버 만드는 과정이 진짜 재밌었어요. 후보도 엄청 많았는데, 이걸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거기 들어가 있는 그리드 같은 것들도, 결국 어떤 선 안에 갇혀 있는 듯한 이중적인 느낌도 좋았던 것 같아요.


khc의 수제 앨범 커버


Q. 그럼 혹시 책이나 영화에서도 영감을 받으시나요?

- 책 혹은 글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나 구절이 보이면 메모해 두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것 같아요. 아니면 어떤 매체에서든 제가 봤던 그 풍경의 향기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걸 기억했다가 언어로 옮길 때 그거를 적용하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도 좋아하는데, 다른 분들에 비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워서…


Q. 가사나 제목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 네, 확실히 생각하는 건 “이 말이 그 곡을 담보하는가?”, “이 곡에 정말 맞는가?”, “어울리는가?”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산’은 그런 게 있어요. 이 곡이 산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곡 구성에서도 (종이에 산을 그리며) 이렇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다이나믹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마치 같이 산을 오르고 같이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곡이 진행되는 동안 그러한 듯한 경험을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그런 식으로 제목을 짓는 편이죠.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면, ‘캄캄한 곳에서’는 ‘캄캄’이란 말이 재밌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앨범에서 전체적으로 어떤 밝음과 어둠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캄캄한 곳에서’라고 하면은 사람들은 그 제목을 머릿속에 가지고 곡을 듣게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어둡다’ 대신 ‘캄캄하다’고 귀엽게 말해버릴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죠. 저는 고속도로 같은 걸 생각하기도 했는데,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오는데, 나는 차에서 잠들었는데 차는 계속 달리고 있고.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는데 계속 어두운 어딘가를 지나고 있고. 그냥 그런 이미지들이 떠오른 것 같아요.


Q. 최근에 인상 깊게 들은 음악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 최근에 [caroline 2]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1집도 들어봤는데 그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확실히 제가 요즘 잘 녹음된 관현악기 소리에 꽂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확실히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녹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기도 하고요. “녹음을 잘 해보고 싶다.” “좋은 녹음이란 뭘까?” 같은.

옛날에는 그런 거에 대해서 정말 생각을 안 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거든요. “파형일 뿐이다.” 이렇게 바라볼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에는 전통적인 엔지니어링 같은 식으로 정말 잘 녹음된 어떤 소스를 다루는 방식도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caroline - 'Tell me I newver knew that'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앞으로 음악 열심히 또 만들어야죠. 확실한 건 녹음하는 걸 더 해보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 악기 연습도 많이 하고 싶구요. 아직은 그냥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 음악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D 많이 사주세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by. 르망



by. 베실베실


by. 루영


by. 태휘


by. 카니


keyword
고멘트 음악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팔로워 392
매거진의 이전글"진짜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았어요" 히피쿤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