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ink, 고스트클럽, Doechii 외
제트 : 15년의 시간을 정리하며, 과거의 에이핑크를 다시 소환한 듯하다. 특히 타이틀곡 ‘Love Me More’는 그룹이 쌓아온 음악적 문법을 환기하며, '익숙한 향수'를 무기로 삼는다. 정은지의 시원한 고음 애드리브로 시작되는 인트로나 빈티지한 신스로 연출한 따뜻하고 아련한 분위기, 직선적인 킥과 스네어 중심의 리듬 구조는 ‘내가 설렐 수 있게’ 같은 과거 에이핑크의 감성적인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수록곡에서는 다양한 장르가 이어진다. 재지한 사운드와 고음역대 신스 샘플링 등 웨스트코스트 힙합 무드의 ‘Fizzy Soda’, 청량한 밴드 사운드의 ‘Sunshine’, 피아노 및 스트링을 앞세운 발라드 트랙 ‘손을 잡아줘’ 등 다채로운 모습을 담아내려고 한 시도가 엿보인다.
에이핑크는 그동안 '아련 청순'과 '복고 성숙'이라는 두 콘셉트를 반복하며 정체성을 쌓아왔다. 그렇기에 어느덧 16년 차에 접어든 현시점에서 이들은 파격적인 시도로 음악적 확장을 노릴지, 활동의 지속 자체에 의미를 두고 안전한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무거운 딜레마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15주년이자 3년 만의 컴백이라는 맥락 속, 타이틀곡은 이전 사운드를 재현하고 수록곡으로 이를 보완하는 전략은 다소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이해되는 선택이다. 그룹의 색깔을 설득력 있게 되새기며 리스너와의 정서적 유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다지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표적이 분명한 만큼, 한계 또한 분명하다. 장르적 변주가 팬층 중심으로 소비되는 수록곡에 집중된 구조인 만큼, 음악적 도전이 대중적 이미지로까지 확장되기에는 다소 제한적이다. 이뿐만 아니라 차분한 트랙과 에너지 있는 트랙을 단순하게 교차 배치한 구성은 5곡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앨범 단위의 서사적 몰입을 방해하며, 장르가 달라졌음에도 일부 곡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 보컬 처리 또한 아쉬움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RE : LOVE]는 에이핑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미래의 방향성을 명쾌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차를 떠올리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판단이자 위치를 차분히 재정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휘 : 그간 Ghvstclub은 하드코어한 트랩과 이모 랩을 빌려 자기혐오를 읊조리는 독백을 써 내려왔고, 마이너한 정서가 짙게 깔린 힙합과 락을 교차시키며 처절한 생존의 기록물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번 4집 [Boogie night]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인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인디 락으로 5SOS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팝 사운드에 청량한 락 요소를 가미하여 냉소적인 태도를 키치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해피 데스데이’는 00년대 델리스파이스 스타일의 락을 소환하지만 사운드적 특색을 확보하지 못했고, 특히 훅에서 단조로운 음으로 구성된 멜로디는 곡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또한 앰비언트 사운드와 의도적인 레이백으로 불안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포착해 낸 ‘White’의 성취가 무성하게도, 후반부의 ‘랍스터’는 아쉬움을 남긴다. 보컬 톤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려고 한 점은 색다르나, 인스트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겉도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전개는 결과적으로 Ghvstclub의 노래 중 가장 인기가 좋았던 ‘여신’과 ‘Misfits’의 가졌던 대중적 코드를 앨범 전체로 확장하려 했던 시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중적인 형식을 빌려와 정작 대중적이지 않은 서사를 팔려고 했던 이러한 모순적인 스탠스가 결국 앨범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게 빛나는 스타의 옷을 탐내어 몸을 맞추려 노력했지만, 그 과정에서 Ghvstclub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본연의 색채와 날 선 정체성은 오히려 무뎌지고 흐릿해졌다. 과감한 변신을 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로서 고유한 매력보다 시장과 어설픈 타협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Boogie night]는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공허한 발자취로 기억될 듯하다.
태휘 : Doechii는 2024년 [Alligator Bites Never Heal]를 공개한 이후 힙합 씬의 온갖 관심과 찬사를 독식했다. 특히 장난기 넘치는 나래이션과 여유로운 플로우가 돋보인 ‘Daniel is a River’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단순히 '잘하는 신예'에 머물지 않고 각종 시상식을 장악했으며, 그 기세를 몰아 ‘Anxiety’로 2025년 그래미 어워드와 빌보드 올해의 여성상을 거머쥐어 하이 커리어를 달성했다. 하지만 찬사 뒤에는 늘 시기 어린 후문이 따르는 법. 갑작스레 정점에 올랐다는 의구심과 함께 날이 갈수록 불거지는 루머들을 향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음악'으로 내놓은 이 결과물은 그 무엇보다 가장 살벌한 대답으로 느껴진다.
이번 싱글은 SZA, Doja cat, Tyler, the creator 등과 협업하며 다수의 알앤비와 힙합 앨범을 제작한 프로듀서 Jay Versace와 Doechii의 첫 작품이다. SZA와 함께했던 전작 ‘Persuasive’는 비교적 통통 튀는 무드였다면, 이번 곡은 Jay Versace만의 로파이한 감각이 돋보인다. 그는 The Neptunes가 제작한 Birdman의 ‘What Happened to that boy’의 샘플을 드라이하게 눌러버리고, 그 위에 몽환적인 신스를 가미함으로써, Doechii와 SZA가 가진 세련된 음색을 깊이 있게 부각한다. 특히 SZA는 훅에서 공간감 있는 보컬 톤으로 따뜻한 무드를 이어가며, 유려하게 흘러가는 멜로디는 성공에 목매이지 않는 여유로운 자세를 대변한다. Doechii는 이 노래를 통해서 흑인 여성에 대한 특정 차별(미소지누아)를 저격하며, 자신의 성공이 요행이 아닌, 인고의 결과라고 말하며, '인더스트리 플랜트' 루머를 향해 대놓고 "구리다"라고 반박한다. 흥미로운 점은 도이치는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노래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적으로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감정을 쏟아내며 대응하지 않는다. 대신 정제된 비트 위에서 진실을 직설적으로 내뱉으며, 그 절제된 태도만으로 압도하는 매력을 가진다.
비록 큰 다이나믹 없이 진행되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운드는 Doechii의 랩핑이 가진 힘을 극대화하고, 화려한 장식이 없는 이 미니멀한 구성은 오히려 그녀의 실력이 기획이 아닌 본질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태도는 지난 커리어의 상징이었던 비즈 장식을 잘라낸 앨범 커버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는데, 이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뛰어넘어 성장하겠다는 독한 의지로 읽힌다. 결국 이번 싱글은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마련한 발판이며, 다음 챕터로 폭격하겠다는 강력한 경고장과 다름없다.
제트 : 가볍게 리듬 타는 고갯짓과 빠르게 재촉하는 걸음, 이 앨범을 듣는 누군가를 상상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산뜻한 무드와 빠른 속도감의 전개는 이 앨범의 전반을 지휘한다. 게임 효과음 같은 8비트 사운드의 ‘Netemo Sametemo’, 스타카토 포인트와 반복적인 외침이 인상적인 ‘JO-DEKI’ 등은 이러한 사운드 방향성을 쉽게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현란한 기타 리프와 하이햇 중심의 드럼 비트가 돋보이는 ‘BLACKBOX’나 ‘OUT’은 템포를 끌어올리면서도, 보컬은 가볍게 이어가며 경쾌함을 유지해 내기도 한다. 소리의 여백은 최소화하는 동시에 일정한 완급에서 오는 피로도를 낮추는 방식도 인상 깊다. 분위기는 차분하게 끌어내리고 탁성 포인트로 킥을 노린 ‘anone.’이나 허밍과 가성 처리의 ‘MAMONO’로 텐션감을 밀고 당기며 일정했던 걸음에 자연스럽게 변주를 끼워 넣었다.
좀 더 날 것의 생동감이 느껴지고 풋풋했던 1집 [Capacity(전지전능)]와 2집 [Uchoten(유정천)]에 비해 확실히 통일성 있는 질감, 다듬어진 사운드는 여유롭고 성숙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는 과도하게 엇비슷해진 구성과 떨어지는 트랙 개별성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당장 전작의 넓었던 사운드 스펙트럼 혹은 ‘hide and seek’ 같은 곡 속 일렉트릭 사운드의 급격한 전환 구간을 생각해도, 확실히 좁아진 트랙 선택지이다. 희석된 곡 단위의 날카로움 대신 눈에 확연하게 띄는 색다른 점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명쾌한 대답을 내놓기도 어렵다. 전반적으로 비슷한 결을 유지하는 선택은 앨범의 톤앤매너는 효과적으로 정리하며, 유려한 악기 활용이라는 이 밴드의 장점을 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확장된 개성을 남기지 못하였다는 아쉬움 아래, 8비트 같은 포인트 사운드 소스를 다양하게 활용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제트', '태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