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MX, SAY MY NAME, Marina Sena 외
루영 :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팝 펑크의 전성기는 찬란했지만 짧았다. 빠른 템포의 경쾌한 드럼 비트와 반복되는 단순한 코드 진행은 누구나 쉽고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이루는 요소였지만, 비슷한 노래들을 양산하는 자가복제로 이어지면서 결국 대중적인 인기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이와 같이 쉽게 진부해질 수밖에 없는 장르의 고유한 문제점은 '한국 팝 펑크의 시작'으로 소개되는 국내 팝 펑크 밴드 GUMX (검엑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 앨범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동결' 상태의 음악이다. ‘Are You Ready To Go Now’, ‘Oh Oh Oh’ 등 정규 5집의 수록곡들은 지난 1집~4집에 수록된 곡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발전했거나 차별화되었다고 느껴지는 점이 없었다. 그마저도 GUMX (검엑스)가 만들어낸 고유한 사운드라기보다는, Green Day, Sum 41, Blink-182 등 대표적인 해외 팝 펑크 밴드의 히트곡들이 따르던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nce Again’이 그나마 기억에 남은 곡이었지만, 그 또한 일본의 팝 펑크 밴드 Ellegarden의 음악적 색깔이 더 크게 느껴졌다. 국내보다 일본에서 그들의 음악과 공연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국내 팝 펑크 씬이 해외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은 탓에 일본을 포함한 해외 리스너들에게 초점이 더 맞춰질 수밖에 없는 점은 이해하지만, 노래를 들었을 때 GUMX (검엑스)라는 밴드보다 해외의 레퍼런스가 먼저 생각나는 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한편으로는 GUMX (검엑스)가 왜 한국에서 인지도가 현저히 낮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밴드 붐은 온다"라는 수식어와 함께 인디락 씬이 재부흥하고 있는 지금에도 루시, 한로로와 같이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팝 락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에 비해 팝 펑크 씬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럼킥스처럼 해외 활동에 치중하게 되면서 음악도 국내 리스너의 공감대와 다소 멀어지고, 결국 국내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GUMX (검엑스)가 이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고 한국 밴드로서 국내 음악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높이려면, 기존의 투박하고 단순한 구성을 답습하기보다 극동아시아타이거즈와 같이 팝 락의 캐치한 멜로디를 조금씩 차용하는 방향, 혹은 초록불꽃소년단처럼 밴드의 컨셉을 분명하게 잡는 방향으로 음악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과거 일본에서의 활동에 집중하던 초창기와 달리, LOVE CHIPS, 펜타포트, 부산 락 페스티벌과 같은 국내 페스티벌 무대에도 꾸준히 서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 펑크 밴드의 교류를 위한 Loud Bridge 기획 공연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는 GUMX (검엑스)의 현재 행보를 보면, 한국 펑크락 씬의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장기적인 목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한국 팝 펑크의 조상'이라는 수식어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
TEN : 수줍게 이름을 불러 달라던 소녀들은 이제 주체적인 자아를 형성한 뒤, 멤버들이 직접 들려주는 비밀스러운 걸스나잇(Girl's Night)으로 리스너를 초대한다. 이번 앨범은 데뷔 초 Y2K와 청순 컨셉, 그리고 고양이 캐릭터 등 이미 주류 걸그룹들이 소화해 다소 흐릿했던 정체성을 선명히 정리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상징처럼 사용되던 고양이 캐릭터를 한 발 물러나게 하는 대신, 멤버들의 사진을 앨범 커버 전면에 세우며 '우리 자체가 중심'이라는 인상을 분명히 남긴다.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 역시 귀여움에만 기대지 않고 성장해 나가겠다는 태도로 이어지며, 팀의 서사를 이전보다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음악적으로는 8인조 체제로 자리를 잡은 이후,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 변화를 시도한다. 타이틀곡 ‘UFO (ATTENT!ON)’는 팝 펑크 특유의 당찬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워 수줍었던 초기 이미지와는 다른 에너제틱한 모습을 전달하고, 승주와 도희의 보컬, 카니의 랩을 중심으로 멤버들의 존재감을 비교적 고르게 배치한다. 이러한 구성은 히토미 원톱으로 보이던 인상을 완화하고,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8인 세이마이네임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곡의 완성도는 이러한 변화를 온전히 뒷받침하지는 못한다. 첫 트랙 ‘Bad Idea’는 트랩 비트와 신스 사운드로 당당한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곡의 전개는 익숙한 클리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트랙 ‘SAY MY NAME’ 역시 거친 기타와 드럼 사운드로 강한 에너지를 밀어붙이지만, 그 위에 얹힌 보컬의 바이브가 사운드와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못하며 힘이 분산된다. 타이틀곡은 이미 시장에서 여러 차례 소비된 장르를 선택해 음악적으로 신선함이 부족하고, 곡 구성 또한 대중적 문법에 치중한 나머지 독보적인 킬링 포인트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앨범 기획 전반에서도 아직 정돈되지 않은 인상은 존재한다. 아기자기하고 비밀스러운 '걸스나잇' 테마와 'UFO'라는 제목은 완전히 결합되지 못한 채 다소 겉도는 인상을 주고, 새로운 시도를 담은 트랙(1,2,5번)들과 기존의 감성을 유지한 트랙(3,4번)들이 혼재되며 앨범의 유기성을 약화시킨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의 의미는 완성도 그 자체보다, 기존의 안전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선택에 있다. ‘WaveWay’와 ‘ShaLala’로 고착화되었던 소녀스러운 틀에서 벗어나, '첫 외박', '밤새 이어지는 대화', '우리만의 바이브' 같은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우리의 밤'이라는 정서를 중심에 세웠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친구들과의 우정, 엉뚱한 선택, 자유로운 태도를 '걸스나잇'이라는 설정 아래 묶어내며, 세이마이네임은 누군가가 기대한 이미지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우선하려는 방향을 택한다. 이 앨범은 완성된 답안이라기보다, 앞으로 세이마이네임이 어떤 팀이 되고자 하는지를 예고하는 단계에 가깝다. 이제 여덟 소녀는 '이름을 불러 달라'는 수동적인 외침을 넘어, 자신들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루영 :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라틴팝 음악으로 브라질의 차기 팝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Marina Sena가 보여주는 정열의 에너지는 추운 겨울에도 유효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레게, 삼바, 보사노바 등의 브라질 스타일의 음악을 사용하여 브라질 삼바 축제와 같은 화려한 광경을 연출하면서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들을 수 있는 팝적인 요소 또한 갖추고 있다. ‘CARNAVAL’의 베일리 펑크, ‘Lua Cheia (Remix)’의 아프로비츠, ‘que delícia o verão’, ‘Saí para ver o mar’의 레게 박자와 잘 어우러지는 퍼커션 사운드, 몽환적인 신스와 멜로디가 그러하다.
이 앨범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2025년에 호평을 받았던 정규 3집 [Coisas Naturais]의 기존 수록곡을 보다 역동적으로 재해석한 트랙들이다. 3집의 후반부에 짧게 등장했던 ‘CARNAVAL’은 곡의 길이를 늘리고 전체적으로 퍼커션의 변주와 랩, 합창을 추가함으로써 화려한 축제 분위기의 도입부 트랙을 만들어낸다. ‘Lua Cheia (Remix)’ 역시 원곡보다 묵직한 힘을 가진 신스 사운드와 드럼, 퍼커션을 더하여 앨범의 중반부에서 분위기를 다시 고조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CARNAVAL’과 ‘Lua Cheia (Remix)’, ‘Maravilhosa’와 같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유한 트랙은 ‘que delícia o verão’, ‘Saí para ver o mar’, ‘tá quente’ 등의 다소 서정적이고 부드럽게 진행되는 트랙과 어우러져 그 존재감을 더욱 발휘한다. 차분하게 진행되는 부분에서 역동성이 감소되는 흐름에 대한 아쉬운 평이 있었으나, 해외 리스너인 입장에서는 브라질의 특유의 축제 분위기와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강약을 잘 조절하였기에 안정감 있게 즐길 수 있었던 앨범이라고 생각된다. 그가 청각적으로 재현하는 브라질 라틴팝의 에너지와 열기를 전달받는 데에, 언어의 장벽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TEN :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좋았던 기억은 손댈 수 없는 추억으로 남고, 그렇지 못했던 순간들은 후회의 형태로 현재를 붙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This Is Lorelei(이하 본명 네이트 에이모스)는 과거를 반복하거나 미화하는 대신, 이미 써 내려간 음악의 일기장을 지금의 시선으로 고쳐 쓰는 길을 택했다. [Holo Boy]는 과거 자신의 명곡들을 다시 정리한 컴필레이션 앨범이지만, 예전 노래를 그대로 다시 부르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향상된 프로덕션 감각으로 곡의 밀도와 완성도를 끌어올리며, 노래가 가장 잘 드러나는 형태로 다시 다듬어냈다. ‘Name the Band’는 원래의 가벼운 인디 팝 결을 유지한 채 두터워진 기타와 힘이 실린 보컬로 중심을 잡고, ‘SF & GG’와 ‘Money Right Now’는 눈에 띄는 변화를 앞세우기보다는 사운드의 결을 차분하게 다듬는 쪽을 택한다. 원곡의 감정선과 구조는 그대로 두고, 거칠게 튀던 부분만 정리해 앨범 전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트랙 사이를 잇는 완충 역할을 해 앨범의 흐름을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네이트 에이모스가 창작의 즐거움을 보다 편안하게 만끽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Mouth Man’은 그의 본진인 Water From Your Eyes의 스타일을 잠시 불러와,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어쿠스틱 중심의 흐름에 확실한 반전과 재미를 더한다. 장르와 톤을 넘나드는 이 곡의 존재는, 그가 여전히 실험적 감각을 잃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 실험을 억지로 과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워졌다는 신호처럼 들린다. 이처럼 [Holo Boy]를 감싸는 여유롭고 자신감 있는 무드는 예전의 감성을 답습하기보다, 한층 발전한 기량 위에서 지금의 자신을 보여주려는 네이트 에이모스만의 방식이자,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가장 멋진 방식이다. 그래서 이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묘한 안도감이 남는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지금의 나는 과거를 더 멋지게 끌어안을 수 있다는 것을 앨범으로 보여주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