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undi Panda/STXXCH, KickFlip, LNGSHOT 외
Mila : 호환마마는 공포를 상징하는 단어다. 실제로 마주한 적이 없어도, 그 말만으로 불안이 환기된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인식이 그 공포의 근원이다. [HOWANMAMA]는 바로 그 감각을 사운드와 질감으로 표현한다. ‘WABANGA’, ‘partymonster’, ‘CREEPYPASTA’에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구조를 뜯어보면 미니멀하지만, 희미한 조성감과 쏘는듯한 신스 사운드, 빠르게 치고 달리는 랩은 청자를 계속 몰아붙인다. 반면 ‘boonsinsaba Interlude’, ‘@hatefullmind’에서는 레이백 된 리듬과 일렉베이스, 어쿠스틱 기타로 온도를 바꾼다. 사운드만 놓고 보면 익숙한 질감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이 있지만 가사는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외부로 향하던 공격성은 방향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문제로 삼는 형태로 되돌아오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표면적으로는 쉬어가는 구간처럼 보이지만, 감정의 변화와 온도의 차이는 결국 앨범의 색깔인 공격적인 사운드를 한층 돋보이게 만든다.
피로도를 높이는 과한 전자 사운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이 사운드 덕분에 오히려 앨범의 브루탈한 매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과격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공포’를 끌어올리고 가사로 밀어붙이는 전개 방식은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 느끼게 만든다. 이런 표현 방식은 ‘건축 삼부작’, ‘MODM 시리즈’에서 보여줬듯 주제를 설정하고 그 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운드와 가사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쿤디판다에게서 비롯된다. 결과적으로 STXXCH의 금속적인 작법, 쿤디판다의 스토리텔링, 노골적인 가사가 더해져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며 [HOWANMAMA]라는 한 편의 공포영화를 탄생시킨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오싹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꽤나 잘 만든 영화인듯하다.
실버레드 : 데뷔 1주년을 기념하여 발매된 'From KickFlip, To WeFlip'은 그간의 여정을 함께한 위플립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Hyper Slide’는 드럼 앤 베이스를 기반으로 디지코어 요소를 배치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운 감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난해할 수 있는 디지코어 장르를 청량한 에너지로 풀어내 이지리스닝으로 승화시킨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드럼 앤 베이스의 저음과 디지코어의 고음부가 강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저음부는 약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또한 코러스와 아웃트로의 드럼 패턴이 같이 노래가 갑자기 끊기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하프 타임이나 질감을 달리하는 fx를 사용했다면 훨씬 입체적인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Good Night’는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가스펠이 어우러진 따스한 윈터 송으로, 킥플립의 음악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멤버 간 유닛을 나누어 곡을 가창했다는 점이다. 이는 팬 콘서트를 위한 전략적 접근 또는 향후 유닛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보컬의 강점이 특정 곡에만 집중되면서, 정작 에너지가 폭발해야 할 ‘Hyper Slide’의 브릿지에서 보컬의 부재가 도드라진다. 이는 유닛 체제가 지닌 구조적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기획의 디테일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더불어 전작 ‘처음 불러보는 노래’로 상승 기류를 타기 시작한 킥플립은 이번 싱글에서도 마찬가지로 청량한 이지리스닝 곡을 선보인다. 하지만 케이팝에서 청량과 이지리스닝은 이미 레드오션이며, 다른 5세대 아이돌과 비교했을 때 킥플립만의 차별성을 가져가긴 어렵다. 1년 차라는 기점에 선 지금, 수많은 선택지 중 왜 반드시 킥플립이어야만 하는지를 보여줄 대체 불가능한 무기가 필요하다.
TEN : 명확한 서사나 정교한 세계관보다 직관적인 분위기와 감각적인 무드를 우선시하는 이른바 '느좋(느낌 좋은)'의 시대가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등장한 롱샷(LNGSHOT)은 힙합을 베이스로 한 '느좋' 바이브를 극대화하며 5세대 보이그룹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한다. 이들은 기존의 무겁고 공격적인 트랩 비트 대신 가볍고 리드미컬한 사운드 전환을 선택해 트렌디한 감각을 선보인다. 선공개곡 ‘Saucin'’은 묵직한 베이스라인 위로 쏟아지는 중독성 있는 떼창 파트를 통해 힙합의 야성미와 케이팝의 세련미를 영리하게 결합해 냈다.
공식 데뷔 타이틀 ‘Moonwalkin’은 서정적인 기타 라인이 곡의 중심을 잡고, 그 위에 트랩 리듬과 R&B 감성이 겹쳐지는 트랙으로 롱샷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국내외 리스너들의 찬사를 받는 막내 루이의 미성을 곡의 핵심 장치로 세운 선택은, 자신들이 어떤 무기를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를 정확히 인식한 프로듀싱의 결과이다. 다른 아티스트가 불렀다면 다소 어색했을 노래를 롱샷만의 색으로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신인임에도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구현해 낼 줄 아는 팀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연습생 시절의 불안을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에 비유한 콘셉트와, 악몽처럼 반복되는 장면과 비현실적인 공간을 담아낸 뮤직비디오 연출이 더해지며 곡의 몰입감은 한층 강화된다. 다만 ‘Saucin'’이 남긴 즉각적이고 강렬한 훅에 비해 ‘Moonwalkin’은 팝 트랩의 비교적 무난한 흐름을 따르고 있어, 힙합 신인 남돌 시장을 선점한 코르티스와의 경쟁 구도 안에서 화제성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다소 물음표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타이틀은 '성공 여부' 이전에, 롱샷이 앞으로 어떤 결의 음악과 서사를 펼칠 팀인지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캐릭터성의 근본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롱샷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의 캐릭터성이 무대나 앨범 콘셉트에 그치지 않고, 롱샷의 태도와 행보 전반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인 그룹의 전형적인 설렘이나 풋풋함 대신, 패기를 넘어선 과감한 욕설 제스처와 속옷이 드러날 만큼 과장된 새깅을 통해 아이돌의 안전한 문법을 의도적으로 비트는 '날것의 감각'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 데뷔 전 공개한 믹스테이프의 다채로운 구성을 통해 멤버 전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자체 프로듀싱 그룹'으로서의 실력을 입증하며 트랙별 비디오에 담긴 가공되지 않은 일상은 이들의 언더독 이미지를 단순한 설정이 아닌 실질적인 행보로 보여주며 설득력을 더한다. 결과적으로 루이의 보컬이 주도하는 세련된 R&B 무드라는 '확실한 무기'와 B급 감성의 '과감한 태도'가 맞물려 만들어낸 이 캐릭터성 이야말로, 롱샷을 단번에 각인시키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TEN : 매디슨 비어는 분명히 잘 부르는 가수다. 음역과 컨트롤, 감정 전달까지 갖춘 보컬리스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뛰어난 보컬이 어떤 음악적 얼굴을 대표하는지에 대해서는 늘 명확하지 않았다. [Life Support]와 [Silence Between Songs]에서부터 그녀를 따라다닌 가장 큰 숙제 역시 정체성의 확립이었다. 안정적인 보컬 실력을 갖추고도 앨범 전체를 대표하는 오리지널리티가 선명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전형적인 팝의 안전한 범주에 머문다는 인상을 남겼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그 목소리가 표현해 내는 고유한 얼굴이 또렷하지 않다는 점은 리스너에게 내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이에 이번 앨범은 본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세우기 위해 대중의 귀를 즉각적으로 사로잡는 선명한 훅과 그간 강점으로 평가받아온 정교한 프로덕션을 전면에 내세운다. 보컬을 중심에 둔 안정적인 사운드 설계와 깔끔하게 마감된 믹싱은 듣기 쉬우면서도 세련된 ‘웰메이드 팝’의 질감을 구현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yes baby’는 클럽 비트를 전면에 내세운 직선적인 훅으로 앨범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make you mine’은 단순한 후렴 멜로디와 반복 구조를 중심으로 한 번 들으면 쉽게 각인되는 훅을 통해 곡의 인상을 강렬히 남긴다.
하지만 다양하고 야심 찬 시도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완성도는 여전히 물음표를 남긴다. 훅과 프로덕션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이는 모든 대중 팝이 지향하는 공통된 지점이기도 해 오리지널리티로 내세우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일관성 없는 톤 앤 매너가 충돌하며 흐름이 깨지고, 개별 싱글을 무작위로 엮어놓은 히트곡 모음집처럼 산만한 인상을 준다. ‘bad enough’ 같은 일부 발라드 트랙은 관성적인 팝 문법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angel wings’가 보여주는 실험성 역시 마무리에서 갑작스러운 사운드 전환으로 소비될 뿐 아티스트의 과감한 선택이라기보단 장식적인 장치에 머문다. 또한 가사 측면에서도 기존 앨범에서 반복되어 온 이별과 자아 탐색의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해 서사의 확장은 제한적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Selfish’나 ‘Reckless’에서 증명했던 보컬 중심의 호소력을 더욱 밀어붙였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캐릭터는 한층 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결국 오리지널리티를 찾기 위해 배치한 여러 장치들은 매디슨 비어를 상징할 아이코닉한 이미지로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본연의 색깔을 확립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다음 단계로 남게 되었다.
Mila : 스트리밍 시대가 본격화하며 3분 내외의 곡을 발견하는 일은 흔해졌다. Slayyyter 역시 최근 몇 달간 ‘BEAT UP CHANEL$’, ‘CRANK’ 등을 통해 강한 톤과 즉각적인 쾌감을 앞세운 3분 내외의 트랙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싱글의 5분에 근접한 러닝타임은 다소 무모한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곡은 '다음 곡' 버튼을 유혹하는 대신, 누를 생각을 잊게 만든다. 하이햇으로 시작해 공간감 있는 킥과 라이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기다림을 기대감으로 전환한다. 이 긴장감은 벌스의 웻한 보컬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신스 베이스로 이어지고, 중간중간 삽입되는 오버드라이브 톤의 일렉 기타가 코러스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결과적으로 지루함 대신 오히려 '터지는 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조바심 속에서 5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3월 발매 예정인 정규 앨범의 첫 트랙으로 이 곡을 배치한 선택 역시 영리하다. 초반부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보다, 청자를 일부러 붙잡아 두며 다음 트랙을 궁금하게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2019년 일렉트로팝, 하이퍼팝, 버블검 베이스를 앞세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연상시키던 Slayyyter는 정규 앨범 [STARFUCKER]에서 신스팝, 댄스팝으로 영역을 넓히며 자신의 대담한 정체성을 구축했다. 이번 싱글이 암시하듯 다가올 정규에서는 기존보다 한층 더 다크한 무드를 내세우며 Slayyyter라는 이름의 크기를 한층 더 키우지 않을까.
실버레드 : 인디 아티스트가 거대 자본의 팝스타로 발돋움할 때, 그 과정은 누군가의 선망이 될 만큼 화려하고 반짝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Zach Bryan의 이번 앨범은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숨겨진 내면의 불안과 파편화된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앨범 전반에 걸쳐 전작 [Streets of London]의 스타일은 유지하되 브라스와 현악기의 비중을 높여 아메리카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했다. 초기작의 거친 컨트리 질감을 살린 ‘Miles’ ,‘Plastic Cigarette’, ’Runny Eggs’는 공허함과 불안을 직선적으로 느끼게끔 하며, 빅 밴드 구성이 돋보이는 ‘All Good Things Past’, ‘Always Willin’, ‘Appetite’는 스타디움급 공연을 소화하는 그에게 맞는 웅장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이 밖에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추모곡 ‘DeAnn's Denim’,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회상을 담은 ‘Bad News’ 등이 수록되어 있다.
앨범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선택과 집중'이다. 78분이라는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은 리스너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벌스 - 코러스 - 벌스 - 코러스의 단순한 구성을 가진 ‘Camper’. ‘Sundown Girls’, ‘With Heaven On Top’은 앨범 후반에 접어들수록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자가복제 식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곡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각각의 곡을 집중력 있게 완성했으면 더욱 밀도 높은 앨범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초반엔 흥미로웠던 그의 자전적인 서사 또한 갈수록 그 빛을 잃는다. 더 나은 미래나 희망 없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신세 한탄하듯 뱉어내어 공감보다는 피로감을 누적시킨다. 이는 ‘Slicked Back’의 "You're so cool”이라는 유치한 가사에서 정점을 찍으며, 아티스트가 쌓아온 '진정성'마저 자기 방어적인 '투정'으로 비치게 만든다. 결국 방대한 일기처럼 쓰인 이번 앨범은, 무수한 감정의 과잉 속에서 진심을 보기도 하지만 갈무리 없는 나열이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만다.
※ 'Mila', '실버레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