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6년 2월 1주)

i-dle, XG, MIKA, no na

by 고멘트

"Simple is the best"


1. i-dle (아이들) - ‘Mono (Feat. skaiwater)’

image.png

이지 : 많은 걸 내려놨다. ‘Good Thing’은 전소연과 Pop Time의 프로듀싱이 더 이상 새로움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외부 프로듀서와의 협업이라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Mono’에서는 기존 아이들의 색채를 확실하게 지워냈다. 바이럴을 위해 설계된 중독성 강한 훅과 강렬한 사운드 대신, 묵직한 딥 하우스 리듬과 절제된 신스 사운드를 채웠다. 이전에 없던 세련된 무드를 보여주며, 키치한 캐릭터를 내세우기보다 무드와 사운드의 완결성을 높여 음악적 설득력을 높이고자 한다. 자극적이고 맥시멀한 사운드가 주류를 이루는 케이팝 시장에서, 덜어냄의 미학을 보여주며 영리하게 차별화 포인트를 만든다. 가사만큼은 기존의 직설적이고 단순한 화법을 유지하며 익숙함을 남겨두었다.


음악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음악적 페르소나를 형성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과거 ‘TOMBOY’, ‘Nxde’, ‘퀸카 (Queencard)’에서 20대 초반의 당당하고 쿨한 여성을 그려냈다면, 이제는 범인류적인 시선에서 정신적 성숙과 깨달음을 노래한다. 2025년 팀명에서 '여자(G)'를 땐 '아이들(i-dle)'로 리브랜딩하며 지향했던 성별 불문의 정체성을 이번 곡을 통해 비로소 성공적으로 구체화한 느낌이다. skaiwater의 피쳐링은 이러한 정체성 강화에 힘을 싣는다. 동아시아, 여자, 아이돌이라는 키워드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국인, 흑인, 논 바이너리, 언더그라운드 래퍼를 곡 중간에 등장시켜, 음악적, 캐릭터 적 다양성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최근 주목받는 씬의 대표 주자를 활용함으로써 트렌디 함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절제된 사운드에 어울리는 모노톤의 뮤직비디오 또한 음악과 통일성을 이룬다. 흰 배경에서 다양한 인종의 댄서들과 보깅을 추는 연출은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KATSEYE 의 GAP 브랜딩 광고를 연상시켜 신선하진 않지만, 익숙함이 주는 맛도 있는 법. 다양성이라는 메시지를 이만큼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없기에 납득 가능하다. 새로운 시작의 첫 단추는 잘 끼웠다. 다만, 매번 skaiwater 같은 아티스트의 피쳐링을 받거나, 검증된 문법의 영상만 인용할 수는 없다. 이번 싱글이 리브랜딩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발판이었다면, 그다음은 온전히 멤버들의 역량으로, 확장된 정체성을 설득해 내는 과정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이 성공했을 때, 비로소 아이들은 꿈꿔온 이상적인 음악의 정의를 완성한 팀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핵을 짚는 선언은 과감했지만, 그 중심에 닿지 못한 트랙들"


2. XG – [THE CORE - 核]

image.png

꼬들 : '핵'은 가장 작은 단위이자, 모든 것을 움직이게 만들어 존재를 규정하는 중심이다. XG는 첫 정규앨범의 제목으로 이 단어를 선택하며 그룹의 본질과 근원에 집중하겠다는 선언을 내걸었다. 이 선택은 멤버 코코나의 논바이너리 커밍아웃 이후 팀명의 의미를 'Xtraordinary Girls'에서 'Xtraordinary Genes'로 변경한 흐름과 맞물리며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K-POP 시스템 안에서 정체성을 확장하고 변형해 온 이들의 행보를 고려하면, 장르나 콘셉트 이전에 팀을 규정하는 최소 단위로서의 '핵'을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선택에 가장 직접적으로 응답하는 트랙은 선공개 싱글 ‘GALA’와 타이틀 ‘HYPNOTIZE’다. ‘GALA’는 메탈릭한 하우스 비트와 강한 베이스, 전자음 중심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런웨이 앤섬의 퍼포먼스를 더하며, XG가 일관되게 보여온 높은 완성도와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집약한다. 데뷔 이후로 타협 없이 밀어붙여 온 실험적 태도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며, XG가 어떤 기준의 퀄리티를 '핵'으로 삼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에 더해 타이틀 ‘HYPNOTIZE’는, 메시지와 태도의 층위에서 '핵'에 닿아있다. 가사만 놓고 보면 단순한 최면의 메타포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뮤직비디오에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주요 장면을 오마주하며 정체성 선언의 언어로 확장한다. 팀명 변경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앨범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름을 설명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하는 감각'을 팀의 언어로 번역하며 이 앨범이 왜 '존재의 중심'을 설명하는 작업인지 분명하게 제시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두 트랙에서 보여준 완성도가 앨범 전반으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GALA’와 ‘HYPNOTIZE’를 제외한 다수의 수록곡은 서정적인 미디엄 템포와 안정적인 댄서블 리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정규앨범이 요구하는 밀도와 긴장감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중 엔딩 트랙 ‘PS118’은 로우파이 질감의 힙합으로 여운을 남기지만, 앞선 수록곡들과의 결이 지나치게 달라 트랙리스트의 흐름 안에서 고립된 인상을 준다. 결과적으로 앨범 전반의 구성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첫 정규앨범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음 단계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원래 정체성을 탐구하고 스스로 증명해 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으니까.





"깊어진 생각, 같이 깊어지지 못한 음악"


3. MIKA - [Hyperlove]

이지 : 기존의 따뜻한 기악 사운드 대신 인공적인 레트로 신스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워 SF적 세계관을 구축한다. 깜깜한 우주를 배경으로 현대 사회의 상실과 과잉에 대한 성찰과 해법을 음악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다.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가볍고 몽환적인 전자음으로 표현함으로써 다소 무거운 주제를 미카 나름의 해학으로 풀어낸다. ‘Modern times’에서 반복되는 빠른 드럼 비트와 다양한 악기가 겹겹이 쌓인 과밀한 신스 레이어는 앞만 보고 질주하는 현대인의 압박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처럼 선명한 기획은 앨범 전체에서 설득력 있는 흐름으로 구현되지 못한다. 마지막에 배치된 타이틀곡 ‘Immortal Love’까지 가기 직전, 앨범 후반부 ‘Nicotine’과 ‘Bells’에서 등장하는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밝은 팝 밴드 사운드는, 앞선 트랙들이 구축해 온 차가운 신스 중심의 세계관과 뚜렷한 단절을 만든다. 이는 사운드적 변주라기보다 이탈에 가깝게 들린다. 각 트랙의 앞뒤에 배치된 인터루드 역시 SF적 콘셉트의 무드를 전달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이질적인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고리로 기능하지는 못한다.


대중성 있는 멜로디를 잘 쓰는 아티스트인 만큼 듣기에 어려움은 없지만, 뭐 하나 귀에 꽂히는 음악이 없다. 반복적인 신스 루프에 빠른 비트를 얹은 음악들은 다른 듯 비슷하게 들린다. 레트로한 사운드는 Sci-Fi한 앨범의 콘셉트와 분명히 어울린다. 다만, ‘Dreams’와 ‘Eleven’ 같은 트랙에서 80–90년대 유행하던 신스 웨이브의 레퍼런스 재현에만 그친 것이 아깝다. 오랜만에 글로벌 청중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영어 앨범인 만큼 아티스트만의 음악적 재해석을 통해 트렌디한 감각을 증명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다층적인 기획을 위한 각 방향성은 이해가 되지만, 앨범의 목적과 기획 의도, 사운드가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인도네시아의 무더위 속 끝까지 달아오르지 못한 싱글"


4. no na – ‘work’

image.png

꼬들 : no na는 데뷔 이후 꾸준히 '인도네시아 걸그룹'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왔다. 인도네시아에서 흔히 쓰이는 성인 'no na'를 팀명으로 채택하고, 공식 유튜브 영상 제목에 인도네시아 국가 번호인 '+62'를 반복적으로 삽입하는 방식은 이 지역성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장치다. 이전 싱글 ‘shoot’과 ‘superstitious’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담아내며, 열대 지역 특유의 온도와 여유로운 무드를 강조해 왔다. 다만 이 정체성은 주로 비주얼과 무드의 차원에서 작동했을 뿐, 음악 자체에서는 두 곡 모두 보편적인 팝과 R&B 문법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work’는 이미지와 태도로만 강조되던 지역성을, 음악의 전면으로 끌어올린 첫 시도다. 전통 발리 심벌 악기인 첸첸 리칙 (Ceng-Ceng Ricik) 사운드로 문을 열고, 가믈란 리듬에서 영감 받은 단순한 타악 루프와 날카로운 챈트 훅을 전면에 배치하며 뜨거운 열기를 단번에 각인시킨다. 멜로디보다는 리듬과 타격감이 곡을 주도하고, 반복적인 구조 안에서 에너지를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뮤직비디오 역시 에너제틱한 군무와 고채도의 색감을 통해 음악의 공격성을 시각적으로 증폭시키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음악적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쉬운 입장이다. 가믈란 리듬의 핵심은 여러 타악기 레이어가 미묘하게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밀도에 있지만, ‘work’는 이를 단순한 루프 구조로 축소하며 리듬의 확장과 변주를 제한한다. 그 결과 곡이 의도한 즉각적인 인상은 분명히 전달되지만, 반복 청취를 견인할 만큼의 흡입력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열기를 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는 선명했으나, 사운드는 끝내 그 온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식어버린다.





※ '꼬들', '이지' 블로그


keyword
고멘트 음악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팔로워 399
매거진의 이전글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6년 1월 4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