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ega Sapien, 문수진, 청하, J. Cole 외
샐리 : 도대체 '로컬'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촌스러운 정취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서구의 트렌드를 적당히 가져와 'K'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관성일까. 오메가 사피엔은 이 논쟁에 대한 답으로 우리를 필리핀의 길거리와 태국의 클럽 현장으로 데려간다. 그가 제시하는 '로컬'은 서구의 시선을 기준으로 재가공한 형태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원초적인 리듬을 음악의 중심이자 출발점으로 삼는 태도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본작 [Leader]에서 구체적인 사운드로 구현된다. 얼터너티브 케이팝을 내세우며 독창적인 결을 구축해 온 바밍타이거의 행보를 넘어,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음악적 좌표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한다. 아시아계 아티스트 ATARASHI GAKKO!, Yaeji와의 협업에서 다져온 감각을 바탕으로, 필리핀의 Budots, 남인도의 Kuthu, 태국의 3 Cha 등 각 지역의 로컬 EDM 장르를 전면에 배치하여 그 방향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모든 트랙은 청각적 쾌감과 즉각적인 반응으로 가득 차 있다. ‘I Get Money’와 ‘Coca-Cola’는 필리핀 Budots 특유의 리듬 위에 구급차 사이렌과 뿅뿅거리는 신스 사운드를 얹어 리스너를 아시아 길거리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다소 과장된 효과음과 정신없는 멜로디가 낯설게 다가오지만, 오히려 그 불친절한 혼란이 날것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하는 앨범의 의도를 그 어떤 세련된 사운드보다 확실하게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Jedag Jedug를 반영한 ‘Hajima’에서는 고밀도의 드럼과 베이스, 기괴하게 변조된 오토튠 보컬을 쏟아내며 정신을 쏙 빼놓기까지 한다. 특히 중독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Krapow’나 만화적인 보컬 변조와 리드미컬한 비트가 돋보이는 ‘Saionji Sauna’에서는 그가 얼마나 유연하고 파격적인 태도로 사운드의 활용 방식을 탐색하는지 체감하게 된다.
그는 이국적인 소리를 차용하는 수준을 넘어, 서구 중심의 전자음악 문법을 아시아적인 에너지로 새롭게 해석해 냈다. 그동안 국내 음악계가 서구의 대중음악을 뒤쫓기 바빴다면, 오메가 사피엔은 시선을 아시아 내부로 돌려 로컬의 문화를 가장 파괴적인 에너지로 치환해 냈다. 처음 듣는 사운드가 당혹스러울 수는 있으나, 이 과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 생동감 넘치는 소란스러움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본작이 기존의 지루한 질서를 효과적으로 부수고 있음을 방증하며, 결과적으로 아시아 음악의 새로운 '리더'로서 자신의 위치를 선언하는 승부수가 되었다. 이렇게 본작은 정해진 방식을 따르기에 급급한 음악 사이에서, 투박하지만 원초적인 음악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준다. 오메가 사피엔이라는 이름 뒤에 '리더'라는 수식어가 붙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그는 이 기괴하고 아름다운 소동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지 : 중저음의 목소리와 끈적한 R&B의 그루브가 매력적인 아티스트. 작년 발매한 EP [Prism Heart]는 hyper pop 트렌드에 초점을 맞춰 빠른 템포와 자극적인 전자음이 목소리의 장점을 가려버려 아쉬웠는데, 이번 싱글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담백한 구성으로 그녀의 목소리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단조로운 구성으로 인한 지루함을 우려한 탓일까. 짧은 곡 안에 욱여넣은 소소한 장치들은 분위기를 환기하기는커녕, 몰입을 방해한다. 코러스에서만 달라지는 기타 세션의 패닝과 믹싱 레벨, 감정이 최고조로 향해야 하는 2절 코러스 시작 전 뜬금없이 등장하는 신스와 DnB 드럼 샘플은 잔잔한 분위기의 산통을 깬다. 1절 벌스의 목소리만 아련하게 남은 채 곡이 끝나버리니 아쉽다.
검정 생머리에 헐렁한 흑백색 그래픽 티셔츠, 하얀색에 ‘you’라는 기본 타이포만 적힌 앨범 커버는 모두 심플하게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운드도 확실하게 덜어 내야 했다. 프로덕션을 더한 일반 버전과 어쿠스틱 버전을 구분해 발매했으면 메시지가 더 선명해졌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세련된 비트도, 화려한 피처링도 덜어낸 자리에서 남은 것은 결국 목소리다. 문수진은 분명 매력적인 보컬이지만, 이번 싱글은 그 가능성을 온전히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꼬들 : 좋은 선물을 고르는 일은 어렵다. 받는 이의 취향에 맞아야 하면서도 지나치게 식상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과하게 낯설어 쓰지 못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의미와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더해지면 선택은 더욱 복잡해진다. 청하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본인과 팬들에게 주는 선물처럼 발매한 싱글 ‘Save me’ 역시 이런 균형을 완벽히 잡아내지 못한 채 애매한 지점에 머문다.
지나온 시간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하며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었던 이들에 대한 고마움은 메시지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접근한다면, 2010년대 중반 유행했던 전형적인 일렉트로닉 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익숙한 감각에 기대는 인상이 강하다. 예측 가능한 빌드업-드롭 구조, 큰 변주 없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신시사이저 레이어와 리듬 구성, 무난하고 단정하게 정돈된 보컬 운용까지 모든 요소가 안전한 선택 안에서 작동한다.
이 아쉬움은 전작 [Alivio]에서 보여준 높은 완성도와 비교되며 더욱 선명해진다. 생일을 기념하는 의미로는 충분할 수 있으나, 아티스트 청하의 다음 장을 예고하는 곡으로 보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이벤트성 싱글이라는 전제를 고려하더라도 '청하'라는 이름이 쌓아온 에너지와 반짝임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트랙이다.
이지 : J. Cole 다운 마무리다. 동부 힙합 씬을 대표해 온 그는 깊은 성찰과 시적인 언어로 자신의 내면과 시대를 기록하며 정상에 섰다. 그곳에서 존경하던 우상들의 하강을 지켜보며 빠르게 세대가 교체되는 흐름 속 순환의 이치를 배웠고, 정상을 지키기 위한 소모적인 경쟁 대신 자발적인 하강을 택했다.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에서 차분히 20년 간의 자신의 음악적 레거시를 되짚어 본다.
사운드는 여전하다. 미니멀하고 따뜻한 붐뱁과 소울, 재즈 위에 또렷한 딕션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다양한 플로우와 유려한 펀치라인은 여전히 날카롭고 단단하다. 화려한 사운드 없이 랩핑만으로 충분히 음악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향에서의 일상적인 이야기, 아티스트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29 Intro’의 총성에서 ‘Two Six’의 묵직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전환, ‘SAFETY’의 음성 메시지가 ‘Poor Thing’의 아웃트로로 맞물리는 등의 구성은 앨범 서사의 완결성을 높인다.
1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피로감이 크지 않다. 29살과 39살을 기점으로 디스크를 나눈 구성은 시기별 아티스트의 세계관에 더 집중하게 하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한다. 자극 대신 밀도를 택했기에, 귀에 남는 후킹한 멜로디는 없어도 가사를 읽으며 앨범을 다 듣고 나면 공허함 대신 여운과 감동이 남는다. 언제나 그랬듯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메이저 씬에서 자신이 힙합을 지켜온 방식으로 마무리한다. 정상에서 건네는 마지막 인사는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품격 있다.
꼬들 :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 트랙 ‘Croak Dream’의 뮤직비디오는 암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게임 화면 속 'New Dream'에 접속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꿈은 어떤 꿈일까. 게임 속 캐릭터들은 비현실적으로 뒤틀린 세계를 배회하며 죽음을 직면한다. 실제로 앨범에는 종착, 소멸, 죽음에 대한 은유와 사유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Puma Blue가 얼터너티브 R&B와 로우파이 질감을 중심으로 꾸준히 구축해 온 어두운 멜랑콜리는, 이번 앨범에서 마치 가위눌림처럼 더 무거운 형태의 정서로 응축된다.
사운드의 큰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트랙 전반에 노이즈와 디스토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기존의 절제된 무드에 균열을 낸다. 일렉트로닉 기타의 거친 마찰음과 길게 번지는 리버브가 뒤엉키며 불안정한 공기를 형성하는 식이다. Puma Blue의 기존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이는 단순한 사운드의 변화라기보다 '죽음을 암시하는 꿈'이라는 키워드를 음악적으로 구현하려는 끈질긴 시도로 읽힌다. 보컬 또한 전면에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믹스 안에 묻히듯 배치되며 하나의 악기처럼 연출된다. 의식은 또렷하지만 몸은 잠겨 있고, 소리는 점점 멀어지는 악몽의 감각이다. 특히 귀에 띄는 트랙인 ‘Hush’는, 로즈 톤의 피아노, 절제된 베이스, 위태로운 색소폰을 사용해 타 트랙보다 클래식한 사운드를 강조하면서도, 앨범 전반이 담고 있는 정서를 전혀 해치지 않았다. Puma Blue가 이전에 꾸준히 보여주었던 재즈의 무드를 호출하면서도 이전보다 더 낮고 깊은 어둠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장르적 확장이나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앨범은 아니다. 대신 이미 구축된 세계를 더 어둡고 깊은 층위로 가라앉히며, 본인이 구축해 온 사운드를 정교하게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이어간다. Puma Blue는 이번 작업을 '유한성(죽음)을 자각한 이후의 삶에 대해 사유한 앨범'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많은 경우 깊은 사유는 음악적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정서적 호소나 자가 반복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Croak Dream]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단순 정서에서 나아가 사운드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침잠의 과정을 성장으로 환원해 분명한 진전을 보여준다. 죽음이 기다리는 악몽을 꾸고 있는 Puma Blue를 굳이 깨우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샐리 : 그동안 드림팝과 인디팝을 넘나들며 몽환적인 감성과 클래식 전공자라는 배경을 살린 웅장한 사운드로 신비로운 세계관을 구축해 온 아티스트다. 이번 [Fleeting]은 그녀가 익숙하게 다뤄온 정서를 80년대 신디사이저 중심의 신스 팝 사운드로 더욱 선명하게 강화한 작업이다. 반짝이는 신스 레이어와 공간감을 살린 고혹적이면서도 절제된 보컬은 팝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긴 하나, 매끈하게 정돈된 음악은 역설적으로 본작의 가장 큰 함정이 됐다. 피아노를 시작으로 다양한 악기 사운드를 쌓는 ‘Reverie’와 ‘After All’을 비롯하여 앨범 전반에서 유사한 리듬과 질감이 반복된 탓에 뒤로 갈수록 감흥이 무뎌졌고, 정교하게 짜인 팝의 문법 안에서 그녀만이 가졌던 개성과 서늘한 긴장감은 지워졌다. 기술적 완성도와 본인의 독창성을 맞바꾼 대가는 결국 자신의 한계를 증명하는 꼴이 됐다. 앨범 제목처럼 음악은 순식간에 흩어지고, 안정된 사운드 뒤에 숨어버린 아티스트의 매력은 찾기 힘들다. 만약 장르적 선회가 불가피했다면, 그녀가 여태 지켜온 공식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과감함을 선보이는 건 어땠을까. 그녀의 다음 단계를 기대하기에는, 안전지대에 머무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 '꼬들', '샐리', '이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