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NA, 이영지, Gorillaz, Nettspend
이지 : 신선함보다는 확실한 성공 공식을 반복한 안전한 선택이다. 앨범 전반에서 2세대 케이팝 레퍼런스를 직접적으로 호출하며, 그 시절 감성을 기반으로 바이럴에 성공한 ‘너만 아니면 돼’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 간다. 타이틀곡 ‘캐치 캐치’는 중독성 강한 케이팝 구조에 오토튠을 씌운 톡톡 튀는 보컬, 직관적인 신스 베이스로 소위 '뽕삘'을 더해 티아라식 문법을 재현했다. 이를 통해 ‘네모네모’로 만든 서브컬처 기반의 키치한 캐릭터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20~30대의 추억을 소환한다. 앨범 전반에 적용되는 이러한 전략은 캐릭터 정립과 대중성 확보에 효과적이지만, 레퍼런스가 지나치게 명확해 앨범이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케이팝 플레이리스트 같은 인상을 남긴다는 점이 아쉽다. 윤마치, 폴킴 등 다양한 피쳐링을 활용해 다채로움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이 마저도 다른 목소리를 빌려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그친다. 예술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고 '아는 맛이 가장 맛있다'고 하지만, 리메이크가 아닌 이상 반복적으로 레퍼런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은 아티스트만의 서사와 감각을 희미하게 만든다. 예나의 음악을 설명할 때마다 다른 아티스트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상황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이미 5장의 미니앨범과 4장의 싱글로 안정적 포지셔닝을 확립한 만큼, 정규 앨범을 앞두고 이제는 검증된 감성과 캐릭터에 기대지 않고 예나만의 음악을 확장해 나갈 시점이다.
꼬들 : 힙합 씬 안에서 성과를 증명하라거나, 타 장르를 시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ROBOT’의 문제는 이영지가 이 곡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삐걱대는 마음을 로봇이라는 메타포에 얹는 설정은, 이영지가 줄곧 유지해 온 직설적 자기 고백의 연장선으로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ROBOT’에 부여할 수 있는 맥락의 전부다. 코러스에 반복 배치된 '삐걱 ROBOT'은 후킹한 포인트 가사라기보다 장난스럽게 꾸며진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하며, 곡 내 중심 장치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사운드 디자인 전반은 이영지 특유의 무게 있는 딜리버리와 내내 충돌한다. 결과적으로 이영지의 캐릭터는 확장되지 못하고, 여러 요소가 등장함에도 곡의 방향성은 잡히지 않는다. 결국 ‘ROBOT’은 [16 Fantasy] 이후 이영지의 솔로 작업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 힙합 씬에서의 포지셔닝과 대중 팝 사이에서 명확한 선택을 유보한 채 양쪽에 걸쳐 있는 형국인데, 이 싱글은 그 유보를 해소하기는커녕 심화시킨다. 커리어 전환점도, 높은 음악적 완성도도, 이영지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표출도 아닌 작업. 디스코그래피 안에서 뚜렷한 좌표 없이 부유하는 트랙으로 남는다.
이지 : 기존 고릴라즈의 '얼터너티브'는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음악적 정의에 한정되었다면, 이제는 장르를 넘어 문화적 혼종성과 실험성을 포괄하는 더 큰 창작의 틀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틀 위에서 흔히 무겁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해석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삶을 등산에 비유해 정상, 즉 죽음에 가까워지는 여정을 단순히 비극으로 보지 않고 그들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해 초월적이며 다면적으로 앨범 전반에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최근 몇 년간 사이키델릭, 신스팝 중심으로 수렴하던 사운드의 정체에서 벗어나, 강점이었던 시니컬한 감각과 사운드적 실험성의 균형을 회복한 점이 반갑다. 인도의 전통 악기인 반수리와 시타르의 낯선 오리엔탈 사운드, 그리고 시리아,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국가의 언어와 창법이 신스팝 기반의 기존 구조와 자연스럽게 융화되며 장르와 문화의 경계를 부수고, 죽음이라는 주제가 가진 복합성과 초월성을 음악적으로 설득력 있게 확장한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앨범의 서사에서도 이러한 주제가 통일성 있게 구현된다. ‘Damascus’는 경쾌한 힙합 리듬에 중동적 색채를 더해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며 슬픔에 국한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제시하고, 고(故) 토니 앨런을 비롯해 고릴라즈와 협업했던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활용한 시도는 죽음을 단절이 아닌, 시간과 관계를 가로지르는 '지속'의 형태로 재해석해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정서적 여운을 만든다. 데이먼 알반 특유의 건조하고 냉소적인 보컬이 두드러지는 ‘The Sad God’에서는 신이라는 새로운 시점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노래하며 기존의 시니컬한 캐릭터를 강화한다. 고릴라즈의 25주년 앨범은 이러한 '대안적(alternative)'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며,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꼬들 : 흔히 말하는 'midlife crisis'를 비틀어, 10대의 정체성 혼란과 인터넷 세대의 불안을 이야기하겠다는 선언. 물론 10대 역시 나름의 혼란과 불안을 겪는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개념처럼 선언하려면 그만큼의 자기 인식과 통찰이 뒤따라야 한다. Nettspend는 ‘Drankdrankdrank’ 바이럴, 믹스테입 [BAD ASS F*CKING KID] 발매 이후 빠르게 주목받았고, 레이지 씬의 신예로 자리 잡았다. [early life crisis]는 그 연장선상에서 정식 데뷔 앨범의 무게를 짊어지는 작업이다. 문제는 Nettspend의 이번 작업이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깊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운드는 트랩 장르 문법을 충실히 따르며 기본적인 완성도를 유지하지만, 21개 트랙 전반에 걸쳐 구조적 전개가 크게 달라지지 않고 Nettspend 특유의 웅얼거리는 랩 스타일 역시 강렬한 비트를 넘지 못한 채 묻힌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순간들은 검증된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트랙이다. 프로듀서 Rok의 ‘crack’은 일그러진 신시사이저 아르페지오 위에 날카로운 하이햇을 층층이 쌓아 올리며, Crystal Castles 특유의 전자음악 질감을 트랩에 접목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을 만들고, 프로듀서 Legion의 ‘ce’는 비트가 데이터센터에서 폭발하는 듯한 질감 위에서 Nettspend의 보컬이 비트와 맞붙는 순간을 만든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위 두 곡을 포함, 앨범 전 트랙에 단 한 곡의 자체 프로듀싱도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혼란을 이야기하는 곡들이 기성 프로듀서들의 비트에 기대어 가장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masked up’에서 피쳐링으로 등장한 YoungBoy Never Broke Again의 벌스가 트랙 위에서 훨씬 선명하게 착지하는 장면은, 이 간극이 결국 Nettspend의 역량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early life crisis]는, 개인적 서사나 통찰이 강하게 드러나는 날 것의 작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압도적인 천재성을 보여주는 작품도 아니다. 장르의 외형은 갖추었지만 그 안을 채울만한 서사나 아이디어는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 트랙 ‘lil bieber’에서 Nettspend는 스스로를 저스틴 비버에 빗대며 자의식을 드러내는데, 그 비교가 바이럴로 소비되는 자신의 위치를 냉소적으로 인식한 자조인지, 포스트 저스틴 비버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겠다는 선언인지조차 불분명한 채로 종료된다. 10대의 치기가 유효할 때는 그것이 날카롭거나 무모할 때인데, [early life crisis]는 그 어느 쪽도 아닌 흐릿한 지점에 놓인다.
※ '꼬들', '이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