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6년 3월 4주)

권기백, 윤하, Jack Harlow, James Blake

by 고멘트

"??? : 네 것도 내 거고, 내 것도 내 거야"


1. 권기백 - [KB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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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샘플링과 레퍼런스는 힙합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장르에서 당연해진 방식이 되었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해진 것은 익숙한 재료를 얼마나 새롭게 들리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지다. 이번 권기백의 신보는 이 질문에 좋은 예시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KB 3]는 현대적인 트랩 비트 사이 90년대 웨스트코스트와 재즈 힙합의 질감을 끌고 오면서 이를 본인만의 감각으로 재배치해 냈다. 예를 들어 ‘MPR (feat. MR. NUGGS, Jeremy Quest)’에서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느긋한 바이브를 유지한 채 특유의 뭉개지는 래핑으로 리듬을 자유롭게 조절하고, ‘힙합 친구 (feat. Andy Plager)’에서는 절제된 재즈와 지펑크 소스 사이에서 여유로운 그루브를 비어 보이지 않게 깔끔히 연결한다. 기존 사운드를 크게 변형하기보다는 핵심적인 질감만을 남기되, 자신의 플로우로 밀고 당기며 두 개의 결을 자연스럽게 공존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전반적인 태도에서도 이어지는데, 전작에서는 조금 더 날 것이고 익살스러운 에너지 자체를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이를 한층 정제시켜 여유롭게 분산하는 것에 집중한 듯하다. 비교적 담백해진 결에 맞추어 지펑크 특유의 고음역대 신스를 보다 밝고 악기적인 톤으로 풀어내고, 앨범 커버를 연상시키는 까마귀 소리를 곳곳에 배치해 앨범 단위 흐름을 묶어주는 디테일 또한 자신만의 구성으로 엮어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동시에 이처럼 그의 사운드 소화력이 잘 드러난 이 앨범이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간 받아왔던 평가와도 맞닿아 있다. 자신의 장점을 더욱 내세우며, 자극적인 가사와 여러 SNS 논란으로 음악 외의 요소가 먼저 소비되거나 제작력에 비해 랩의 완성도는 아쉽다는 시선까지 한층 가려낸 점 또한 돋보이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과 감상의 핵심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하나의 질감으로 녹여내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여러 스타일을 고유한 리듬과 흐름 안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권기백의 역량과 음악적 이해도는 이번 앨범을 통해 더욱 분명히 증명되는 듯하다. 나아가 더리사우스, 호러코어뿐만 아니라 서부 힙합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만의 프로듀싱 방식을 탄탄히 구축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다음에는 어떤 사운드를 재해석할지 궁금하게 만든 이번 앨범은 현재의 음악 신에서 가장 강력한 장점이자 가능성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알기엔 너무 아까워서 내놓은 윤하의 알고리즘."


2. 윤하 - [써브캐릭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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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 : ‘써브’와 ‘마이너’라는 수식어는 과연 얼마나 절대적인 개념일까. 우리가 비주류라고 부르던 것들도 결국 누가 어떤 시선으로 발견하고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윤하는 익숙한 명곡 대신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후배 아티스트들의 곡을 골라, 그것들을 자신만의 알고리즘으로 새롭게 엮어냈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윤하가 다시 불렀다."는 사실보다, 잘 보이지 않던 음악들이 지금 다시 새롭게 들리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 방향성은 '소녀 해적단'이라는 MV 콘셉트를 통해 더 또렷해진다. 학교를 배경으로 취향을 발견하고 점령해 나가는 서사는, 잊혀 가던 음악들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이번 리메이크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네 개의 MV와 이를 잇는 합본 영상은 개별 곡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내고, 원작자들이 직접 참여한 코멘터리 구성은 이 앨범이 단순한 커버 모음집으로 보일 위험을 덜어낸다. 아이유의 [꽃갈피]가 선배 아티스트를 향한 헌사에 가까웠다면, 이번 앨범은 후배들을 다시 비추고 연결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자기 이름값으로 원곡을 덮기보다 그들의 음악이 다시 순환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속에서, 윤하는 자연스럽게 취향을 소개하고 이어주는 큐레이터로 자리 잡는다.


이런 방향성은 음악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윤하는 원곡을 과감하게 뒤집기보다, 각 곡이 지니고 있던 감정과 분위기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쪽에 집중한다. ‘염라’는 원곡이 어둡고 날 선 질감에 더 기대고 있었다면 윤하 버전은 악기 구성을 한층 풍부하게 채우고 보컬을 전면에 세우며 보다 또렷하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재정리된다. 그래서 원곡에 익숙한 리스너에게는 다소 불호일 수 있지만, 처음 듣는 리스너라면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는 팝 록 트랙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하다. ‘Sub Character’ 역시 같은 방식으로 흥미롭게 다가온다. 남성 보컬의 원곡이 지녔던 분위기는 윤하의 목소리를 거치며 훨씬 선명하게 전달되고, 원곡에서 흐릿하게 지나가던 가사와 감정도 더 또렷하게 살아난다. 선명한 밴드 사운드와 힘 있는 보컬이 더해지면서 곡이 가진 에너제틱한 서사 또한 한층 직관적으로 부각된다. 좋은 리메이크는 곡 안에 숨어 있던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꺼내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써브캐릭터 원]은 '써브'의 취향들이 윤하를 만나 새로운 의미를 얻는 과정처럼 다가온다. 이 앨범은 윤하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식인 동시에, '써브'에 머물던 곡들이 더 넓은 리스너 앞에 놓이게 되는 하나의 경로로 남는다. 한 사람의 취향이 또 다른 음악의 가능성을 비추는 순간, 우리가 말하는 음악계의 선순환도 바로 이런 장면 아닐까.





"앨범을 다시 들어볼 이유가 가수의 이름값뿐이라면"


3. Jack Harlow -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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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하나의 스타일에 정착하지 않고 정반대의 결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는 많다. 맥 밀러처럼 에너지 넘치는 랩에서 특유의 서정성을 살려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사운드로 확장하는 경우도 있고, 포스트 말론처럼 대중적인 라인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장르를 감쪽같이 넘어가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변화의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좋은 평가를 받는 이들은 그 방향을 설득력 있게 연결해 낸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기존의 장점을 새로운 장르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거나 반대로 과감히 덜어내더라도 그 공백을 뛰어넘는 차별점을 제시할 때, 이는 비로소 완성도 있는 결과물과 아티스트의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은 아쉬움을 남긴다. 잭 할로우는 ‘WHATS POPPIN’으로 XXL 프레시맨 클래스에 이름을 올린 이후, ‘First Class’와 ‘Lovin On Me’ 같은 히트곡을 통해 랩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 ‘First Class’가 수록되었던 2집의 ‘Side Piece’ 같은 트랙에서는 재즈 소스를 가볍게 얹어내기도, 전작인 [Jackman.]에서는 재즈 힙합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지만 그 흐름은 어디까지나 힙합을 중심에 둔 확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심축이었던 힙합을 걷어내고, 보컬 중심의 R&B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도했다. 이에 랩이라는 핵심 캐릭터를 덜어낸 만큼, 다채로운 사운드나 색다른 보컬 같은 요소는 그 빈자리를 밀도 있게 채워낼 설득력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열쇠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는 전곡이 유사한 질감과 온도로 연속되며 흐릿하게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재즈 사운드가 돋보이는 ‘Trade Places’나 잔잔한 소울 코러스의 ‘My Winter’ 등 유사한 분위기의 반복뿐만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로 개별 음의 텍스처를 살리려고 시도한 ‘All Of My Friends’마저 앞선 사운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며 트랙이 전개되는 힘과 신선함은 끝내 확보되지 못했다.


즉, 이번 앨범은 구성의 완성도와 변화를 즐길만한 지점이라는 두 요소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목적이 단순 포지션 변화의 도전이라면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고유한 차별성이나 오랜 공백기를 메울 만큼 반가운 복귀작으로 느껴지기에는 부족했다. 이미 이 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다른 앨범이 많은 상황에서 [Monica]는 잭 할로우만의 개성을 느끼기에도, 인상적인 R&B 곡으로 선택하기에도 그렇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닌 듯하다.





"블레이크가 블레이크를 이겨 낸."


4. James Blake - [Trying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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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 : 블레이크만큼 서로 다른 두 결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자기 음악으로 설득하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싶다. 초창기 덥스텝과 클럽 기반의 실험적인 전자 사운드에서 출발해, 이후에는 피아노와 보컬을 중심에 둔 서정적인 송라이팅으로 확장해 온 그는 한쪽으로 완전히 이동하기보다 두 방향을 동시에 끌고 가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이번 앨범 [Trying Times]는 그 두 결이 따로 드러나기보다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다. R&B와 소울의 부드러운 멜로디 위에 일그러진 신스, 넓게 비워둔 공간감, 그리고 섬세하게 변형된 보컬이 겹치면서 익숙하면서도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질감을 만든다. 그래서 이 앨범은 특정 시기의 스타일을 반복한 결과라기보다, 그동안 블레이크가 쌓아온 사운드와 감각이 가장 안정적으로 정리된 작품처럼 들린다.


특히 인상적인 건 블레이크가 사랑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감을 집요하게 붙든다는 점이다. ‘Death of Love’는 관계가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식어가며 무너져가는 과정을 길게 비춰주고, ‘Through the High Wire’는 위태로운 균형 위에 놓인 관계를 마치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바라본다. 여기에 ‘Trying Times’는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애써 버티는 시간을 담담하게 꺼내놓으면서, 사랑이 결국 마음먹는다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야 하는 시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음악은 스토리와 서사에 깊이를 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곡마다 무너짐, 흔들림, 버팀의 시간을 서로 다른 분위기와 리듬의 흐름으로 펼쳐내기 때문에 이 앨범은 들을수록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좋았던 건 몇몇 트랙만 도드라지고 나머지가 배경처럼 흘러가는 식이 아니라, 각 곡이 앨범 전체의 흐름과 밀도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앨범은 사운드를 빽빽하게 쌓기보다 여백을 살리고, 그 위에 보컬과 가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그래서 블레이크가 원래 잘해왔던 전자적인 질감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이번에는 더 직접적이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결국 이 앨범은 블레이크가 잘하던 것을 단순히 반복한 결과라기보다, 그 장점들을 한층 더 깊고 또렷하게 밀어붙인 앨범처럼 들린다. 그래서 [Trying Times]는 2026년 지금까지 나온 어떤 앨범보다도 더 오래,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다.





※ '제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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