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미감' 세계관 속에서 살아남기

케이팝 비주얼 디렉터는 절대적인 이득인가

by 고멘트

'미감', '밤티', '짜친다'. 아마 이 세 가지 표현이 최근 트위터(현재 'X')에 가장 많이 쓰인 말이지 않을까. '얼마나 감각적인가'를 따지는 미학적인 평가기준은 이제 비단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콘텐츠를 향한 절대적인 잣대가 되었다. 콘텐츠에 대한 시대의 철학에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는 케이팝 산업에서 미감은 더욱 민감하게 작용한다. 몇 십억을 호가하는 엄청난 퀄리티의 뮤직비디오와 하나의 음반에 부록 된 몇 개의 버전과 구성의 또 다른 피지컬 앨범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며, 시각적 쾌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감각적인 비주얼 아트워크로 승부를 거는 구조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케이팝 아트워크는 이제 '데뷔 전'부터 시작된다. 감도 높은 콘텐츠로 이례적으로 멤버 공개 전부터 여러 커뮤니티에서 '미감 좋은 아이돌'로 주목받은 'DAILY:DIRECTION' (이하 '데일리:디렉션'). 로고 트레일러, 앨범 스케줄러, 멤버 공개 등 일련의 프로모션 과정에서 잘생기고 예쁜 멤버의 비주얼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래픽 아트를 활용한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콘텐츠로 데뷔 프로모션을 전개하여 신선한 기대감을 모았다. 이러한 미감의 핵심에는 에스파, 르세라핌, 제로베이스원 등 굵직한 케이팝 아티스트 크레딧을 필모그래피로 보유한 박소희 비주얼 디렉터가 총괄 디렉터로 자리하고 있으며, 재치 있고 독특한 미감으로 멤버 공개 전부터 '감다살 신인 남돌'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미감 좋은 아이돌'로 데뷔 전부터 인스타그램 각종 유명 매거진 채널에 소개되는 등 관심을 모은 데에 비해 정작 앨범 판매량은 미미했다. 초동 판매량은 단 3만 장에 그치며, 색다른 미감으로 잡은 화제성이 정작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미감'에 죽고, '미감'에 사는 케이팝 덕후들에게 데일리:디렉션의 미감 장사가 통하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감다살 신인 남돌' 데일리:디렉션으로 알아보는 요즘 미감


데일리:디렉션이 주목받은 것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나 모션 비디오 등의 그래픽 아트 콘텐츠로, 이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개인 역량이 가장 두드러지는 방식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활용한 아트워크 자체는 최근 케이팝에서 흔한 작업물이지만 이들의 방식은 조금 색다르고 선구적이다. '컷아웃 이미지'를 콜라주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영상은 마치 디지털 스크랩북처럼 한 땀 한 땀 공들인 듯한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고, 실사 이미지, 그래픽, 텍스트 등 이질적인 요소들을 한 데 합성한 모션 비디오나 이미지를 주요 포맷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계정에서나 볼 법한 AI 작업물 특유의 미감을 케이팝 아이돌 티저 판으로 끌어왔다. 게다가 인터넷 밈 이미지를 티저 콘텐츠로 활용하는 과감함까지. AI, 3D 작업을 기반으로 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박소희 디렉터의 아이덴티티와 전문성이 전면으로 돋보이는 프로모션이다.

image.png 데일리:디렉션 인스타그램 계정 피드 캡처 화면


또한, 이러한 그래픽 아트워크를 일부 콘텐츠가 아니라 프로모션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활용하는 혁신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케이팝 아이돌 콘텐츠와 디자이너의 개인 창작물 그 중간을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것 같은 인상인데, 그 애매한 정체성이 묘한 매력이 있다. 지난 1월 'daily_direction_official'이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의 첫 게시물로 로고 트레일러 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에는 멤버의 얼굴이나 그룹에 대한 어떠한 직접적인 정보도 등장하지 않았고, 두 번째 게시물은 아스팔트 바닥 위 청바지 이미지에 유튜브 페이지 링크로 보이는 텍스트 타이포를 얹은 이미지 1장뿐이었다. 심지어 멤버를 공개하는 콘텐츠로는 멤버로 추측되는 인물의 일러스트 이미지를 새긴 네일팁 사진과 해당 네일이 얹어진 손을 찍은 이미지 2장이었다.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스포일러를 숨겨둔 이스터에그로서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설계된 시각적인 재미로 혁신적인 프로모션의 선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컨셉 포토가 공개된 이후부터 관심이 뜨뜻미지근했다. 프로모션의 막바지 단계로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얼굴이 드러나는 컨셉 포토는 '생각보다'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컨셉 포토와 뮤직비디오, 앨범이라는 메인 콘텐츠가 프로모션 용도의 부가적인 요소인 그래픽 작업물들의 임팩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타이틀 곡 뮤직비디오의 구성은 프로모션 콘텐츠로 보여준 컷아웃 이미지를 콜라주한 CG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등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아프로비츠 장르 기반의 몽환적인 톤의 무난한 전개로 심심한 인상이다. 박소희 디렉터가 앨범 제작기 다큐멘터리를 통해 밝힌 '손맛'이 느껴지는 콘텐츠라는 야심 찬 기획의도가 무색하게 정작 프로모션 외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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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데일리:디렉션 [FIRST:DELIVERY] 앨범의 티저 콘텐츠 / (우)타이틀 곡 'ROOMBADOOMBA' MV

지난 3월 싱글즈 잡지 인터뷰를 통해 '프롬프트 몇 줄로 찍어낸 이미지는 인터넷을 떠도는 해양 쓰레기와 다르지 않다', '인간의 터치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비추어보면, '손맛'이란 실사 이미지를 활용하는 등 디자이너의 수고스럽고 아날로그적인 제작 방식을 의미하는 듯하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 엄청난 스케일의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과열된 케이팝 시장 속 데일리:디렉션이 내세운 무기이자 정체성은 '휴먼 터치'라고 하는데, 아날로그적인 질감과 작업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 데일리:디렉션의 콘텐츠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탄생해서 입혀진 형태일 뿐 여기서 아티스트의 개성이나 손맛을 느낄만한 지점은 없다. 그리고 애초에 손맛과 정제된 미감은 양립할 수 없고, 디자인적으로 잘 다듬어진 미감 자체만으로는 핀터레스트 무드보드 이상의 감상을 이끌어내긴 어렵다. 즉, 아티스트 브랜딩으로서 디자이너의 아날로그적인 터치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미감만으로는 브랜딩을 할 수 없다


데일리:디렉션이 디자이너의 미감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것은 신선한 브랜딩을 위한 기획의도로 풀이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사연이 존재한다. 데일리:디렉션은 멤버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데뷔를 한 적이 있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적이 있는 '경력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이미지를 덮고 완전히 새로운 브랜딩을 위한 독특한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미감'만 기억에 남고, 정작 멤버는 누구인지 이들이 무슨 음악을 하는지는 까맣게 잊혔다는 점이다. 단편적인 미감만으로는 아티스트와 서사를 브랜딩 하기 어렵다.


이러한 피로감 속에서 지난해 4월 데뷔한 'CLOSE YOUR EYES' (이하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강렬한 힙합 사운드와 반항적인 이미지를 표방하는 당시 저연차 남자 아이돌 씬의 메인스트림과는 반대로 서정적인 감성의 R&B 장르와 한국어 네이밍으로 '문학 소년' 이미지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었다. 물론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그룹으로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었고, 키스오브라이프를 제작했던 이해인 디렉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 등 팬덤 기반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데뷔 앨범 초동 판매량 31만 장이라는 성과를 단지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이라고만 하기에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미 흔한 마케팅 장치이고, 그 당시 다른 그룹들과 엄청나게 차별화되는 지점도 아니었다. 이들이 내걸었던 '문학 소년' 컨셉은 당시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고, 문학 키워드의 단편적인 차용이 아니라 음악 장르와 비주얼이 모두 서정적인 문학 소년의 무드를 따른다는 점에서 이전의 숱한 '문학 컨셉' 정도와는 명확하게 달랐다.


물론 독창적인 브랜딩이란 단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브랜딩이 선명했던 이유는 '눈을 감고 들었을 때도 깊은 감동을 주는 팀'이라는 그룹의 정체성이 음악, 비주얼, 멤버 이미지와 하나의 방향으로 명확하게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작자의 미감이 돋보이는 작업물이나 디렉터의 부연 설명 없이도 이 그룹이 어떤 이미지이며, 누구인지 개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결국 앨범의 플레이어는 비주얼 디렉터가 아니라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즉,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는 구조에서 브랜딩이 더욱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체 제작을 하는 싱어송라이터 수준이 아니더라도, 일련의 컨셉이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사실 콘텐츠 미감이 독보적이었다기보다는, 이해인 디렉터의 인터뷰 내용처럼 맑고 밝은 면을 가진 소년미와 남성미가 공존하는 퓨어한 인상을 '문학 소년' 컨셉으로 붙여서 음악과 비주얼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드러냈다. 그러나 데일리:디렉션의 경우 그래픽 디자인 콘텐츠가 아티스트의 캐릭터와 연결되는 지점이 없다 보니 그에 비해 멤버, 음악이 너무나 평이하다고 느껴진다. 미감이 아티스트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콘텐츠의 시각적인 때깔과 만듦새에 치중하는 순간 비주얼 디렉터의 본질적인 의미는 사라진다.


image.png 마리끌레르 코리아 2025년 1월호 이해인 디렉터의 인터뷰




진짜 '날 것'의 정체성을 추구하기


이제는 하늘 아래 더 이상 정말로 새로운 것이 없는 듯 보이는 세상에서, '미감'은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무기다. 많은 기획사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비주얼 디렉터를 영입하며 '브랜딩'을 추구하는 흐름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이 '절대 미감'을 추앙하는 세계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실 이보다 더 손쉬운 대책은 없다. 그러나 제작자가 만들어낸 단편적인 미감만으로 아티스트의 창의성과 매력을 대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정제되지 않음'이 필요하다, 최근 코르티스는 'YOUNGCREATORCREW' (일명 영크크)라는 선공개 곡을 공개하였는데, '테판야끼 on my Mac', '요를레이히 말고 영크크'라는 파격적인 가사로 믿기 어려운 당황스러운 수준의 날 것의 음악을 가져왔다. 밤티라는 반응과 갖가지 잡음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어리고 철없는 10대 젠지 소년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지점으로 작용했고, 영크크는 하나의 밈이 되기까지 하며 'Young Creator Crew'라는 그룹의 슬로건을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이처럼 완벽하게 만들어진 세련됨보다 아티스트 본체의 자연스러운 개성이나 미숙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확실하고 강력한 정체성을 구축한 코르티스의 '영크크'는 영리한 선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직 케이팝이 아티스트 본체의 매력과 음악이 가장 주요한 요소로, 본질은 여전히 아티스트에 있기 때문이다. 미감 좋은 콘텐츠가 호감을 살 수는 있으나 결국 '입덕'을 결심하게 되는 지점은 팬 사인회와 음악 방송 등 실제로 대면하게 되는 '아티스트 본체'에서다.


미감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미감 절대주의의 굳건한 명제를 한번 더 되묻게 만든다. 과연 지금 케이팝에 필요한 것은 더 '세련된 비주얼 디렉터'인가.





by. 샤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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