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의 ‘워너비’가 탄생하는 법
지난 3월 21일~22일,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는 IVE(이하 아이브)의 4번째 팬 콘서트인 <DIVE into IVE>가 열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현장에는 여느 아이돌 공연장과는 다른 이색적인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아기 다이브 대기 공간’이다. 공연이 끝난 후 미성년 자녀를 데리러 온 부모님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 이 공간은, 현재 아이브가 거대하게 점유하고 있는 어린 팬 연령층의 독보적인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아이브의 수많은 오프라인 현장 후기 글에서 초등학생을 마주쳤다거나, 홀로 아이를 보낸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준비한 간식을 주변 관객들에게 돌리며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건 굵직한 함성이 아닌, 높고 맑은 초등학생들의 떼창이다. 90년대생에게 소녀시대가, 00년대생에게 트와이스가 있었다면, 지금의 10대 — 이른바 ‘알파 세대’에게는 아이브가 있다. 대체 아이브의 무엇이 이토록 영리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훔쳤을까? 그 비결은 단순한 인기가 아닌, 멤버 개개인의 강력한 ‘워너비’ 브랜딩이 앨범의 콘셉트까지 완벽하게 결합한 구조에 있다.
특히 아이브가 ‘초통령’으로 명성을 굳힌 분기점은 팬데믹 해제와 맞물린 오프라인 활동의 재개였다. 데뷔 초기 코로나19로 인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들의 압도적인 장신 피지컬과 ‘자기애’ 컨셉의 공주같은 비주얼은, 오프라인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실존하는 바비인형’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특히 화제성이 단순한 외형에 머무는 일부 타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아이브는 노출을 지양하는 대신 그 자리에 자신감과 당당함이라는 가치를 채워 넣으며 독보적인 브랜딩을 구축했다. 이러한 전략은 학부모들에게는 ‘내 아이가 닮아도 좋을 건강한 아티스트’라는 신뢰를,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완성시켰다. 최근 팬콘서트에서 선보인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Genie)’ 커버 무대 역시, 단순히 과거의 히트곡을 재현한 것을 넘어 일종의 ‘워너비’의 계보를 잇겠다는 아이브의 영리하고도 당찬 포부를 증명한 대목이다.
아이브가 알파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현상은 우연이 아닌, 일종의 ‘선망성’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타 그룹들이 데뷔 후 점진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성장형 서사에 집중할 때, 아이브는 시작부터 이른바 ‘완성형’ 이미지를 선점했다. 그 중심에는 이미 거대한 팬덤을 보유했던 IZ*ONE(아이즈원) 출신 장원영과 안유진이라는 강력한 투 센터가 있었다. 이들의 존재는 쌩신인 그룹들과는 다른 출발선을 보장했다. 장원영은 <프로듀서 48> 시절부터 독보적인 비주얼과 끼로 ‘천년돌’이라 불리며 단숨에 센터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안유진 역시 어린 나이가 무색한 안정적인 보컬과 퍼포먼스 실력을 갖춘 ‘올라운더’로서의 확신을 심어주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부수고 나아가겠다는 독기나 극복 서사를 강조하는 LE SSERAFIM(르세라핌), 트리플에스(tripleS)와 같은 동시대 그룹과는 달리, 아이브는 데뷔곡부터 “난 완벽하고, 이런 내가 너무 좋아”라는 나르시시즘적 태도를 선보였다. “너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메시지는 팬들에게 나의 성장통을 투영하는 공감이 아닌, 이미 완성된 존재를 향한 선망이라는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다. 이미 검증된 장원영의 ‘천년돌’과 안유진의 ‘올라운더’라는 별명은, 아이브가 데뷔 때부터 내세운 ‘이미 완벽한 나’라는 키워드와 맞물리며 팬들에게 ‘닿고 싶은 이상향’이라는 선망의 가치를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브 데뷔 후 딸기 먹방이나 실력 논란 등 크고 작은 구설이 뒤따랐으나, 장원영은 감정적인 대응 대신 본업에 충실한 행보로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오히려 이를 기점으로 ‘원영적 사고’, ‘럭키비키’와 같은 키워드를 통해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힘든 기색 없이 새벽 운동을 거르지 않는 모습은, 대중에게 자기관리에 철저한 갓생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틱톡(TikTok) 등 숏폼 플랫폼에서 장원영의 비주얼이 강조된 영상들이 알파 세대 사이에서 자주 바이럴된 점은 결정적이었다. 동화 속 공주가 현실에 실존하는 듯한 영상은 아이들의 동경심을 자극했고, 여기에 앞서 언급한 주체적인 삶의 태도와 결합되며 장원영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닮고 싶은 워너비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영향력은 지표로도 증명된다. 현재 대한민국 광고 모델 1위(개인 광고 20개 이상)를 기록 중인 것은 물론, 일본 방송 출연 당시 그의 등장만으로 눈물을 터뜨리던 현지 소녀들의 모습은 과거 수지와 설현이 보여준 ‘시대의 아이콘’으로서의 행보를 더욱 선명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원영이 선망의 정점이라면, 다른 멤버들은 친근함과 개성으로 팬덤의 저변을 넓힌다. 먼저 안유진은 각 세대마다 존재했던 예능돌의 포지션을 4세대에서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 걸스데이 혜리나 러블리즈 미주가 보여준 가식 없는 예능돌의 계보를 잇는 캐릭터가 4세대 걸그룹 신에서 공백 상태였음을 간파한 것이다. 예능 <지구오락실>이나 <에그이즈커밍> 유튜브 등을 통해 민낯을 드러내거나 미숙한 운전에 도전하며 보여준 유쾌한 장면은,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건강하고 쾌활한 이미지로 이어지며 전 세대의 호감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본인 멤버 레이의 활약은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일본 문화 붐’과 타이밍 좋게 맞물렸다.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낮아진 시점에서 레이가 인스타그램 및 개인 유튜브 채널 <따라해볼레이> 등을 통해 보여준 ‘스꾸(스티커 꾸미기)’나 ‘갸루피스’와 같은 포즈는 일본 현지의 트렌드를 레이의 방식으로 녹여낸 결과물이었으며, 이는 국내 대중에게 빠르게 수용되며 하나의 거대한 유행으로 번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레이는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닌 트렌드를 선도하는 아이콘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처럼 단순히 노래를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미디어 중심으로 보여지는 멤버 개개인의 뚜렷한 캐릭터와 SNS 콘텐츠는 어린 팬들이 개별 캐릭터를 쉽게 소비하게 만들고 ‘나도 저런 언니가 되고싶다’라는 동경심을 자극한다. 또한 아이브가 어린 팬덤을 폭발적으로 모을 수 있었던 바탕에는 멤버들의 어린 나이도 한몫했다. 2021년 데뷔 당시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미성년자였고, 이는 비슷한 또래 학생들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며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최근 아이돌의 데뷔 연령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 역시, 케이팝의 핵심 소비층인 10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영리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워너비 심리’라는 키워드는 앨범이라는 그릇에 담기면서 시너지가 폭발한다. 아이들은 화면 속의 언니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환상을 실현해 줄 때 더욱 열광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유튜브 채널 <재친구>에 출연한 이서가 인기 비결로 공주님을 꼽으며 "아이들은 반짝거리고 예쁜 걸 좋아하는데, 그것이 아이브 콘셉트"라고 언급했듯, 아이브는 데뷔 초기 3부작 'ELEVEN' – 'LOVE DIVE' – 'After LIKE'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를 주제로 당당한 공주 콘셉트를 강조해왔다. 특히 ‘LOVE DIVE’의 예쁘게 꾸며진 프레피룩에 화려한 액세서리를 함께한 코디로 초등학생들의 교복 환상을 채워주었고, ‘Accendio’에서 보여준 마법 소녀 비주얼은 아이들의 동화적 상상력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퍼포먼스와 가사 전략 역시 치밀하다. 아이브의 안무는 포인트가 명확하고 반복적이라 저연령도 따라하기 쉬워, 학교 현장의 방송댄스 및 장기자랑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또한, 영문 가사 비중이 높은 경쟁 그룹들과 달리 한국어 가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어린 팬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배려했다. 이는 LE SSERAFIM(르세라핌)이나 aespa(에스파) 등 동시대 아티스트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드러나는 차별점으로, 글로벌 시장만큼이나 메인 무대인 한국 팬덤의 정서를 놓치지 않겠다는 영리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러한 가사와 안무는 아이브만의 음악적 문법과 만나며 아이들의 귀를 더욱이 사로잡는다. ‘I AM’과 같은 곡은 넷플릭스 <KPop Demon Hunters(이하 케데헌)>의 사운드트랙 ‘Golden’과 궤를 같이하며, 2세대 아이돌 특유의 멜로디 중심적이면서도 벅차오르는 감성을 계승한다. 최근에 발매한 [REVIVE+]의 타이틀곡 ‘BLACKHOLE’ 역시 비슷한 사례다. 케데헌의 ‘Golden’ 공개 당시 “아이브스럽다”라는 대중의 열띤 반응을 포착해, 기세를 몰아 웅장한 음악적 정체성을 극대화하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거대한 사운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곡 전개는 아이들이 동경하는 서사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동시에 숏폼 플랫폼에서 빠르게 소비될 수 있는 ‘Baddie’나 ‘Kitsch’와 같은 트렌디한 곡들을 병행하며, 한 문법에만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유연하게 타는 감각까지 증명해 내고 있다.
아이브가 점유한 알파 세대 팬덤은 단순히 어린 팬들이 많다는 현상을 넘어, 그 이상의 확장성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케이팝의 핵심 소비층인 10대는 결집력이 높을 뿐 아니라, 구매력을 쥐고 있는 부모 세대를 덕질의 현장으로 유입시키며 아이돌을 인식시키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까지 수행하기 때문이다. 아이브는 이 틈을 영리하게 파고들어 저연령층의 인기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전 세대로 확산할 수 있도록 하는 치밀한 이중 브랜딩 전략을 구사했다.
우선, 알파 세대의 충성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의 생활 반경 속 접점을 극대화했다. 멤버 리즈가 초등학생들의 최애 애니메이션인 <프린세스 캐치! 티니핑>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거나,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유튜브 채널 <odg>와 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경쟁 그룹들이 난해한 세계관이나 해외에 집중할 때, 아이브는 오히려 가장 낮은 연령대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 ‘동경하지만 친숙한 언니’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한 셈이다.
동시에 아이브는 부모 세대와의 거리감도 좁힐 수 있는, 이른바 ‘세대 통합 전략’을 병행 했다. 주체적인 당당함과 자기 사랑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앞서 말했듯 부모 세대에게도 ‘내 아이가 즐겨도 괜찮은 아티스트’라는 신뢰를 구축했다. 여기에 음악적으로는 ‘After LIKE’에서 1979년 최다 방송 기록을 보유한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을 샘플링하거나, 1987년 발매된 Suzanna Vega의 ‘Tom’s Diner’의 도입부 및 리듬을 차용하는 식으로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했다. 실제로 음반 판매 플랫폼인 알라딘의 구매자 분포를 살펴보면, 최근작 [REVIVE+]의 40대 구매 비율이 약 40%를 상회한다. 이는 자녀의 부탁으로 지갑을 여는 소비도 있겠지만, 부모 세대 역시 아이브의 콘텐츠에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기에 가능한 일로, 자녀의 덕질을 적극 후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저연령 팬층을 확보하는 것이 곧 대중성으로 직결되는 시장의 원리를 이용해, 아이브는 특정 타겟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대중형 걸그룹’이라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가장 낮은 연령대부터 그들의 보호자까지 아우르는 영리한 전략을 성공시킨 셈이다.
과거에 모모랜드 (MOMOLAND) - ‘뿜뿜’, 크레용팝 - ‘빠빠빠’, iKON - ‘사랑을 했다 (LOVE SCENARIO)’처럼 저연령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사례는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 노래 한 곡의 반짝 인기에 그쳤던 반면, 현재의 아이브는 아티스트 자체를 깊게 덕질하며 오프라인 공연 참석과 실질적인 구매력까지 이어지는 팬덤 기반의 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분석한 전략들과 멤버 개개인의 강력한 워너비 브랜딩을 결합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팬덤 구조를 구축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아이브는 결국 기존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강력한 미덕인 선망성을 브랜드의 핵심 동력으로 선택했다. 누군가에게는 소녀시대가, 누군가에게는 EXO가 청춘의 상징이었듯, 지금 ‘아기 다이브 대기 공간’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기 다이브들에게 아이브는 그 시절 세상의 전부이자 가장 닮고 싶은 ‘나의 모습’으로 각인되고 있다. 반짝 뜨고 사라지는 트렌드와 달리, 유년 시절의 화려한 아이콘으로 깊게 자리잡은 브랜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브는 현재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를 발판 삼아 미래의 잠재적 핵심 소비층까지 예약해 둔 셈이다. 어쩌면 아이브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은 활동 기록을 넘은, 한 세대의 기억 속 가장 화려한 첫 페이지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유년 시절에 기억될 선망의 환상은,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그 시절의 전부’이자 아이브라는 브랜드를 오랫동안 지탱할 강력한 뿌리가 될 것이다.
by. J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