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머무는 자리

시애틀의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맞이한 53일째의 기록

by KIM

Day 53. 시애틀의 찬 바람은 뼈를 깎고, 희망은 마른 침처럼 삼켜진다


11월 8일, 처음 거리에 나앉았을 때만 해도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애틀의 겨울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손마디는 이미 감각을 잃어 굳어버렸고, 낡은 점퍼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심장을 후벼판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화려한 불빛은 나를 비추지 않고, 사람들의 무심한 발걸음은 내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임을 매일 확인시켜 준다. 가장 괴로운 건 배고픔도 추위도 아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가 사라졌다는 것.

53일. 눈앞이 흐릿해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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