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팡 Dec 25. 2023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다. 트리 없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가장 설레는 계절은 12월이고 그 이유는 단연 크리스마스 때문이었다. 캐럴도 크리스마스디데이를 세며 11월부터 질리도록 들었는데 어느 새부터 크리스마스는 그저 빨간 날에 불과해져 버렸다. 크면서 그저 무언가에 불과해져 버리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것은 내가 성숙해지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것들에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잊는, 잃는 수많은 것들이 그렇게 끝이 나버린 거라고 믿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아닌 누군가로 인해 의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을 기대한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추억이 담긴 작은 물건 하나하나 상자에 고이 보관했다. 상자에 담길 수 없는 것들도 마음에 보관해 둔다. 내가 크리스마스가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것처럼 상자에 보관하는 물건도 이젠 점점 줄어든다. 내가 뭘 담았더라 잊는 것도 마찬가지다. 잊힌 것들을 두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심한 건 세월이 아니라 나다. 상자에 담아둔 건, 그래서 갇힌 건 나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며 알바를 하고 왔다. 생각난 건 따뜻한 카페에서 그림 그리고 책 읽기, 일기 쓰기. 따뜻하고 조용하게 보내기.


작가의 이전글 빵을 태워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