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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Feb 28. 2019

배소고지 이야기_작업일지①

2018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2019.03.01-10 대학로 예술극장


첫 번째 이야기 : 다시, 그곳으로.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곳,
내가 사랑한 나의 동네, 나의 공간.
먼 곳을 돌아,
다시 그곳으로부터 초대받았습니다.

나를 부른 그 이야기는 “배소고지”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연극 ‘배소고지 이야기’를 쓰게 된 여정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른한 오후, 전주의 한 카페에서 나른한 대화를 나누던 중 친구가 문득 카페 티슈 한 장을 건넸습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나 적어보자.”
제일 첫 줄에 쓴 것은, 한예종 극작과에 지원하는 것.
아주 어리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에 다만 지원만 해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 어 하는 사이, 예상치 못하게 2015년, 처음으로 전주를 떠나 그렇게 다시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극작 수업을 받은 것도 처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게 된 것도 처음. 새로운 동료, 생경한 작업은 엄청난 자극과 도움을 주었지만, 언제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은 외로움이 늘 있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야 전주에 대해서 계속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전주’ 자체라기보다는, 지역 출신이라는 것, 지역 언어를 쓴다는 것의 의미들이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수도권 출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제가 가지고 있는 ‘지역색’에 대해 생각할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거든요.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표현들이 대화 중에 ‘아, 이거 사투리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라든지, 역사나 지역, 전통문화와 관련하여 각자가 갖는 온도 차라던지..


원래도 사투리를 찰지고 맛있게 쓰는 편이 아니라, 다들 제가 전주 출신인 것을 잘 몰랐고,  특별히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창피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한계로 작용할까 봐 일부러 쓰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주에 있을 때도 한 번도 사투리가 나오는 작품을 쓴 적이 없었는데, 뜻하지 않게 서울에 올라와 학교 워크숍에서 단편과 판소리 대본을 쓰면서 처음으로 사투리를 전면적으로 사용하는 작품들을 쓰게 됐습니다.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전북 이서로 옮겨 「이화원」으로 재창작하여 학교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녹아있는 언어에 대한 어떤 느낌들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는 정체성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특히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소외된 ‘전북’ 지역 출신이라는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경계인,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고, 소소하고, 조용하고, 소외되고 잘 들여다봐야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그마하고 소박한 제가 태어난 동네와 지역의 공간을 매우 좋아하는데, 정말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야 지역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조사하고 찾아보면서 알아가는 중이니까요.


다시 돌아가서,
2015년 가을, 대학원에서 분량과 상관없이 매주 1편의 희곡을 완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습니다. 의욕에 불타는 한 달을 보내고, 머리가 불타는 두 달 쯤이 지나자 이제는 대체 뭐에 대해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쯤 친한 작가 선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지역 스토리 랩 특강이 있으니 같이 들으면 어떻겠느냐는 말이었죠. 전북 디지털 산업진흥원의 지역 스토리 랩은 모교의 학과 교수님들과 선후배, 동료들이 진행하던 사업이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기웃거리기로 했습니다.  


몇 달에 걸쳐 지역 관련 민담, 설화, 인물, 공간에 관련된 특강이 연이어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10월 즈음, 함한희 교수님의 구술사 강연을 듣게 되었죠. 지역 여성의 구술사와 관련된 강의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당시 전북대 고고 문화인류학과에 재직 중이셨던 함한희 교수님은 무형문화연구소 소장님이기도 하시고, 지역 전문가이시기도 한 분입니다. 거기서 듣게 된 구술사 강연에서 ‘배소고지 이야기’의 씨앗을 만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한 남자, 가장 믿었던 그 남자가 나를 외면한다면-”


그 이야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배소고지 이야기-기억의 연못

:2019.03.01-10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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