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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Feb 01. 2021

연극 ANAK3

일종의 작품 소개서

     

이 글들은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 공연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공유하는 일종의 작품 소개입니다. 실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대본 앞 쪽에 배치하여 첫 리딩 때부터 함께 공유했었습니다. 이 글을 올리는 지금도 그때처럼 조금 떨리네요.    


“왜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나요?”


항상 받는 질문이지만, 항상 앞이 아득해지는 질문입니다. 이 희곡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2012년이었고, 이 기획 의도의 초안을 썼을 때로부터 지금 약 3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다르지만 같은’ 죽음들이 반복되었습니다. 많은 말들이 입을 맴돌지만, 아래의 글들로 마음을 전달해 보고자 합니다.        



기획의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해 아파트서 결혼이주여성 생후 2주 딸 안고 투신… 딸은 숨져(2020-01-03) - 연합뉴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시부모 갈등·우울증에 투신자살 시도(2015-08-17) - 시티 21

베트남 이주여성, 두 자녀와 투신자살(2012-11-23) - 이투데이  


타국에서 온 그녀는 왜 자신의 아이들을 끌어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을까. 이 기사를 읽다가 문득 ‘메데이아’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떠난 여자.

우리나라에는 결혼을 통해 정착한 수많은 이주 여성들이 있고, 이들과 이들의 자녀들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인식된다. “우리” 대부분이 “그들”을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여기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혹은 그들을 보아도 듣지 않고 침묵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내러티브가 포장한 이미지를 쉽게 믿고 안심하기도 한다. 여전히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현실은 쉽게 묻혀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결혼이주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ANAK>은 욕구와 정서를 온전히 지닌 하나의 인간이자 권리와 의무를 가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방법을 찾아가고자 한다.     


“2세대를 함께 키워나가는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하여”


결혼이주여성이 1세대라면, 결혼을 통해 태어난 2세대의 경우는 어떨까? 다양성에 대한 시선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2세대는 과연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동등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표면적 시선 너머 새로운 시선을 갖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2세대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함께 키워야 할 것인가, 어떻게 힘을 길러 스스로 성장하도록 이끌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ANAK>에는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주여성과 2세대 자녀를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함께 가기 위해 기다려주고, 자신의 시선이나 편견에 가두지 않으려 하고, 물러서기도 한다.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과 반응, 노력을 통해 관객 역시 자신의 시선을 확장하여 깊이 있게 이 사건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시선은 언제나 상호적인 것”


사람은 사람을 본다. 우리만이 결혼이주여성과 그 2세대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주여성, 2세대 만을 보는 우리의 시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도 이 사회 곳곳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 역시 그 나름의 의미와 깊이를 갖고 있다.

그 시선, 그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시선 아래 관객을 포함한 우리를 두는 실험을 하고 싶다.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경험, 마주함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게 되고, 떠올리게 되고, 듣게 되고, 함께 마음 아파하거나 어쩌면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시놉시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여자가 죽었다.

자기의 아이를 끌어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렸다."    


바다 가까이에 있는 서해안의 작은 도시. 휴가 차 고향에 내려온 호윤은 일주일 전 발생한 필리핀 다문화 가정 모자 추락 사건의 주인공이 동창 재형의 형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호윤은 재형을 찾아가 위로한다. 만취한 재형은 자신이 형수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호윤은 재형의 집에서 조카 한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초음파 사진을 발견한다. 무언가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 그는 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려 하는데..    



등장인물     


호윤

30대 중반, 느긋한 외모와 달리 예민하고 불같은 성질의 외주제작사 PD. 재형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서울에서 일하다가 선배 PD와 시비가 붙어 휴가차 고향에 잠시 내려왔다. 고향에 다문화 가정 모자 추락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재형 가족의 일인지는 몰랐다. 장례식 후에 알고, 위로차 재형을 찾아갔다가 예상치 못한 말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취재를 시작한다.    


재형  

기간제, 정성 재단 중학교 교사. 30대 중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발달 장애가 있는 염전 잡부인 형과는 다르게 아주 하얗고 귀공자처럼 생겨 어릴 적부터 인기가 많았다. 가족이라면 껌뻑 죽는 그는 형의 결혼을 위해 직접 필리핀까지 날아가 결혼 상대자로 나온 메디를 직접 설득해서 한국에 데려온다.  그녀를 데려오고 나서 어떤 일이 생길지 알지 못한 채.   


승아

재형과 호윤의 동네 후배. 중학생 시절 학폭력의 피해자였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재형의 도움과 증언으로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재형은 그녀의 첫사랑이자, 오랜 짝사랑이었다. 재형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멀어졌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경찰이 되었다. 여성청소년계에서 상담과 교육을 하고 있으며, 메디와 전화로 상담한 일이 있다.

메디의 자살이 재형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호윤의 말을 모른 척하고 재형의 결백을 믿고 싶지만, 점점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재형의 가족

재구

재형의 . 40. 발달장애가 있는 염전 잡부다. 홀어머니 손에 컸고, 어머니 연자가 고군분투하며 홀로 돈을 버는 사이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 그저 말이 조금 느린가 보다 했을 뿐이다. 발달 장애라는 것을 알게  후는 이미 10 반쯤이었고,  뒤로는 동생 재형과 시모의 극진한 돌봄과 지지 속에서 자랐다.  먹는 , 자는 , 모든 욕구는 바로바로 채워져야 속이 시원하다. 힘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 서툴다.

 

연자

메디의 시어머니. 재형과 재구의 엄마. 객사한 남편을 두고 두 아들을 홀로 키워냈다. 최선을 다했지만 늘 한계가 있었다. 시간도 물질도 부족했다. 재구와 재형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한이 있다. 재형이 똑 부러지고 똑똑한 것이 큰 기쁨이었지만, 재구가 발달장애인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뭐든 구해주고 다해주고 싶었다.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도망쳐서 재구를 슬프게 할까 봐 그녀는 메디의 발목에 방울 끈을 매단다. 복덩이니까, 도망치지 않게 하려고. 오래 곁에 두려고. 단지 그뿐이었다.


메디

30대 중반. 한나의 엄마. 갓 스물, 가장 예쁘고, 아무것도 모를 때, 필리핀에서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 오면 밥 걱정도 없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살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다친 언니 대신 결혼을 하게 된 것도 두 번 다시없을 인생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데리러 온 재형의 따뜻하고 다정한 말투에 메디는 남편도 그와 같은 사람일 거라고 착각했다. 발목에 방울이 매달리기 전까지는.


한나

정성중 3. 메디와 재구의 . 처음에는 다문화 가정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대가 되고, 제법 아가씨 티가 나자 이국적인 외모에 늘씬한 몸매로 학교에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들도 한나에게는 지겹기는 매한가지.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 말이 통하지 않는 아빠, 같은 학교 교사로 와있는 삼촌도 감시자 같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은 남자 친구 신우에게 사랑을 느낀다. 신우를 향한 학교 폭력의 화살이 자신을 노리는 줄은 몰랐다.    


재형의 주변인    

교감

재형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교감. 실권을 쥐고 있다. 신우의 아버지이며, 학교폭력 예방선도학교로 몇 년 동안 지정되어 언론에 오르내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아들인 신우가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가해자 학생들을 지도하고, 용서하며 합의한 것으로 큰 존경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학생을 위한다며’ 시끄러운 모든 것을 덮고 지우려 하는 위선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신우

17. 3. 유급을 한번 했다. 왕따를 심하게 당해   동안 입원해있기도 했다. 퇴원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합의가 되어 있었다. 교감이자 보호자인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팠던 엄마는 오래전에 신우와 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일중독인 아버지는 오직 일에서 인정받으려고만 한다. 교육감의 꿈이 있는 모양인데 신우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나는 처음에 예뻐서 눈이 갔지만, 알수록  매력적인 여자애다. 여친이  것도 좋고 이제 괴롭히는 녀석들도 없는데, 한나가 유명해지고, 한나 남친으로 자신이 거론되자 ‘ 자식들이 다시 나타나 한나까지 괴롭히려고 한다.    


호윤모

호윤의 엄마. 언젠가 위대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겠다며 서울로 상경한 아들이 흥신소나 다름없는 프로를 맡고 있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찾는 것을 잘한다는 녀석이, 집 나간 외숙모 좀 찾아달라는데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이 괘씸하다.      


셀리나

호윤의 외숙모.  다른 이주 여성. 그녀는 술만 먹으면 화를 내던 남편이 점점 심해져 나중에는 칼을 들자 살기 위해 도망친다. 조카인 호윤이 찾는 줄도 모른 .


해설자

해설자는 이 모든 연극의 상상력을 돕는다. 모든 것은 말로 상상될 것이다.



우리는 무대에서 수많은 시선이 교차되는 것을 보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시선을 발견해야  것인가?

가장 가까이 우리 곁에 숨겨져 있는 시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시선일 것이다.         





다음에는 길고도  창작 과정과 공연 취소  연기의 역사(?) 대해 수다를 늘어놓겠습니다. <ANAK> 공연되기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과 상황들. 좌절-감사-좌절-감사-좌절-감사의 무한 콤보라고나 할까요. 역시 인연은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다음 글에서 만나요!



연극 <ANAK>

2021.02.03.~07. 연희예술극장

*추가 공연 02.07(일) 포함 전회차 마감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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