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과 부산 : 외지 사람이 마음의 고향처럼 여기는 곳
여러 가지 생각이 얽히는 일상을 비껴 나고 싶으면 바다가 생각난다. 정확하게는 해변에서 바라보는 광대한 풍경. 멈추지 않는 파도를 흔들리는 촛불 보듯 응시하며 세찬 바람을 맞는다. 속이 포카리스웨트 음이온이 퍼지듯 개운해질 것 같은 기대는 도착 5분 후에 흩어진다. 아무래도 광야와 같은 펼쳐진 공간에서 오히려 헛헛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해변은 아름답다. 내륙에 사는 외지인은 원하는 이미지만을 건져내고 돌아간다.
강릉에 어릴 때 자주 갔다. 묵호역에 내려 이모가 이끄는 대로 조용하고 예쁜 해변에서 놀았다. 하얗고 고운 모래가 얕은 물길을 이루었고, 어린아이가 발목만 담그고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안목항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길을 봉고차 타고 지날 때는 차창에 닿을 듯 솟구치는 파도에 희열을 느꼈다. 비 오는 날이었을 것이다. 어린이라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자연에서 오는 어떤 부딪침은 책과 영화와 음악보다 평생 가는 무언가를 내게 새겼다. 원시적인 감성 같은 거였다. 섬세하고 웅장한 강릉 앞바다는 내게 아름다움과 슬픔이 함께 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었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굳이 택한다면 강릉은 겨울에 가겠다. 눈 내린 강릉은 한계령과 함께 떠올라, 이전에 느린 속도로 강원도를 오갈 때 높은 고개에 올라 바라본 풍광 또한 겨울이 어울린다고 내 멋대로 정했다. 그렇다면 여름에는? 여름 바다는 부산이다. 나는 부산을 떠올리면 남쪽이라서 겨울에도 온기가 도는 느낌이다.
부산을 따로 기억하게 된 것은 <북해의 별> 작가 김혜린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자율학습을 빠지고 선생의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작은 체구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그분은 작품 속 '아라'와 닮아있었다. 처연하고 안쓰러운데 결국은 스스로 살아남아 판을 뒤집는 에너지가 꽉 차 있던 만화 주인공들! 정말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것과는 다르다. 부산에서 오신 김 선생님은 내게 부산 그 자체였다. 부산은 우리나라 최후의 땅이면서 절대 꺼지지 않는 불이 켜져 있는 것 같다. 음, 그래서 부산은 여름이 어울린다고 느낀 걸까?
나는 20대를 서울 달동네에 살았다. 비탈을 빼곡하게 채운 다세대 주택은 생물체처럼 지표를 덮고 있었다. 한밤중에 작은 창문으로 내다보면 네모난 노란 불빛이 촘촘하고 불규칙해서 풀벌레 가득한 숲 같았다. 지금도 복잡하고 경사 급한 좁은 도로를 매일 오간 마을버스가 진기하다. 운전한 분은 정말 최고의 드라이버. 아무튼 서울의 달과 부산의 달을 보고 다른 느낌을 받는 것 역시 바다 때문이다.
서울 달동네에서 사는 동안 약간 위기의식이 있었다. 생활하기 편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면 벽을 짚고 살금살금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도 무궁화 기차를 타고 처음 부산에 입성했을 때 넓은 창문을 가득 채운 달동네 풍경에 반하고 말았다. 하늘색 페인트로 비슷비슷하게 칠해진 담벼락 때문인지 올망졸망한 그 집들이 탁 트인 바다를 내 집 정원처럼 품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외지사람은 그냥 낭만으로 받아들였다. 부산은 바다를 향한 산꼭대기부터 남다른 에너지가 흐르는 것 같다고. 그 에너지는 역동적이어서 절대 사람 마음을 가라앉지 않게 할 것 같다.
사람은 땅의 기운을 매일 받고 산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바라본다면 둥지를 틀고 싶은 곳은 부산이다. <북해의 별>을 읽고 간직한 변혁, 혁명, 개혁 이미지를 부산과 합치시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부산은 그런 아우라가 있다.
그래서 왜 부산 바다를 좋아하느냐고? 그것도 여름날 부산 바다를. 바다를 오래 바라보면 오히려 마음이 산란해진다 했지만, 부산만큼은 흩어진 의지를 맺히게 하고 오늘을 박차고 나가게 하는 기운이 있다. 아늑하면서도 마음먹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요새 같다. 꼭 밀면이 커피가 부산어묵이 맛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