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안경 끼고 집중하기

처음 안경 쓰고 눈알이 돌아갔던 경험

by Gomsk

새해를 맞아 안경을 샀다. 생애전환기에 시력 검사할 때만 해도 1.5였는데, 지금은 내가 쓰는 글씨조차 흐릿하다. 종이책 글씨가 갑자기 작고 복잡한 무늬처럼 보인다. 스무 살 즈음 빠져들었던 해리포터 구판을 반가운 마음에 펼쳤더니 종이가 온통 빽빽한 글자 숲 같다. 신체발부수지부모 내가 내세울 건 시력뿐이라 눈이 나빠진 것을 모른 척하고 싶다. 그래서 한동안 큰 글자로 조정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노트북으로 읽었다. 글씨는 긴 허리를 더 곧게 펴서 볼펜 끝과 두 눈 사이 거리를 최대로 늘여서 썼다. 내가 쓰는 글자라서 뭘 쓰고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두 눈으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정밀했던 내 감각이 무뎌진 걸 마침내 인정했다.


노화를 받아들였으니까 안경을 구입하러 갔다. 안경점에서 검사해 보니 시력은 양쪽 0.5였고 독서와 컴퓨터 작업용으로 1시간 만에 첫 안경이 생겼다. 설레는 마음으로 껴보니 우와! 맨 눈에 번져 보이던 글씨가 살짝 확대된 상태로 또렷했다. 나는 즐거워져서 그날 밤 책 읽기가 너무나 기다려졌다. 이건 새로운 물건이 생겼을 때 머무는 일시적인 흥분이었던 것 같다. 안경은 과자처럼 곧장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으니까.


그날 밤 아직 눈에 띄는 집안일을 무시한 채 읽던 책을 펼쳤다. 분명 글씨가 잘 보였고 안경을 통한 시야는 묘하게 실제보다 확대된 채 선명했다. 문제는 아이가 나를 부를 때 드러났다. 아이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 눈알이 돌아가는 느낌에 질끈 눈을 감았다. 내 안경은 설정한 거리에 최적화된 돋보기다. 안구가 자동으로 초점 조절할 때와 달랐다. 안경을 쓰면 고정된 거리의 글자만 잘 보이고, 곁눈으로 내 손끝과 종이에 옮겨지는 글씨를 보면 통증이 인다.


IMG_4169.JPG 눈을 더 쓰게 해 주세요 생명연장의 꿈 (사진 출처. 나 자신)


안경을 끼면 다시 훨훨 날 줄 알았는데! 책을 덮고 잠들었으나 밤새 눈알이 얼얼하게 아팠다.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눈이 아니라 처음으로 안구 전체가 부대껴서 앓는 걸 느꼈다. 그 증상은 안경을 끼지 않고 생활하면서 차츰 사라졌고, 육안의 소중함을 깨닫자 한참 늦었음에도 감사합니다 염불을 외웠다. 내게 주어진 몸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복잡하고, 안 보이는 가운데 끊임없이 순환해서 유지되고 있다. 내가 게을러도 심장은 뛰고 내가 안 닦아도 치아는 잠재된 충치를 버틴다.. 입맛에 맞춰 먹은 밀가루 음식을 힘들여 소화시키는 것처럼.


그럼 이 글은 건강관리에 대한 소회일까? 건강이 무한하게 묻혀있는 자원 같았을 때 내가 내 몸을 무시한 건 사실이다. 나는 조금 겸허해졌다. 안경을 통해 보는 것과 안경을 거치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시야 사이에 내가 몰랐던 세상이 있었다. <해리 포터>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이 왜 안경을 콧등 아래로 살짝 내리고 해리를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셨는지 이해했다. 책이나 서류를 보던 안경 낀 선생님께서 같은 표정으로 학생이었던 나를 보신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돋보기안경을 낀 채로 돋보기 바깥세상을 동시에 집중할 수 없다. 심야에 형광등까지 환하게 밝히고 지구 밖을 여행하는 우주비행사처럼 안경을 낀다. 안경을 낀 채 주의력이 분산되면 눈알이 아프기 때문이다. 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한밤중뿐이다.


어린이일 때부터 안경을 썼던 배우자는 안경 하나에 화들짝 달싹거리는 내게 말했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적응하면 시력은 더 나빠져..." 하나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밀쳐뒀던 루테인을 삼키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시력이 떨어졌어도 맨눈으로 책 읽는 것이 더 편한 이유가 있었다. 어려운 책은 한 글자 한 단어 한 줄 단위로 천천히 읽지만, 해리 포터처럼 가독성 좋을 때는 페이지를 사선으로 가로질러 읽는다. 책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시선의 방향과 속도가 달랐다는 걸 안경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내 몸이야말로 최첨단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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