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몬을 좋아하나요

뜨겁게 달아오른 향과 함께 하는 잡담

by Gomsk

공지영 작가는 천재 요리사다. 한식 명장의 요리는 따라 할 엄두가 안 나지만, 공 작가의 레시피는 바로 꺼내 쓸 수 있다. 재료도 간단하지만 딸과 대화하듯 쓴 글이라서 기억이 잘 난다. 계절 무관, 몸이 으슬으슬해서 따끈한 디저트가 딱 필요할 때 꿀바나나 레시피는 정말 유용하다. 그녀는 정말 천재 작가다.


어릴 때 바나나를 먹고 체한 적이 있어서 생바나나는 먹지 않았다. 그랬던 바나나를 두 눈 번쩍하는 맛으로 변신시켜 준 가루가 있으니 바로 시나몬이다. 책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나오는 대로 바나나를 프라이팬에 굽는다. 접시째 작은 오븐에 넣어도 된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시간 맞추고 기다리면 어느 순간 빵 냄새가 난다. 쿠크 선장이 구하고 싶었던 남태평양의 빵나무 열매가 이런 냄새였을 거란 생각이 스친다. 나무에서 빵이 열리다니! 두근거리며 읽었던 모험담에서 궁금했던 그 향과 맛이 바로 지금 이 냄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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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띠디! 빵이 아니, 바나나는 지글지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잘 익었다. 프라이팬을 쓰면 군만두처럼 겉이 바삭하게 구워지지만 뭐 뜨겁게 익었으면 됐다. 꿀을 핫도그 장식하듯 바나나에 짜고, 대망의 시나몬 가루를 톡톡 뿌린다. 옛날 삼각으로 접힌 하얀 종이에 들어있던 가루약 냄새 같기도 한 시나몬은 이글이글 오븐에서 살아 돌아온 바나나를 만나 오묘한 향을 터트린다. 진한 홍차를 부르는 뜨끈한 디저트. 홍차는 아쌈을 좋아했다. 강해서 밀크티로 만들어도 좋지만 만화 <홍차 왕자>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아쌈이었기 때문.


만화 주인공 승아는 속상한 일이 있던 날 마시던 홍차를 남긴다. 홍차 왕자 아쌈은 남은 홍차로 밀크티를 만들어 건네며 승아를 위로한다.(밀크티 아닐 수도 있음) 다양한 홍차 캐릭터가 쏟아져 나온 복숭아색 표지의 만화였다. 아무튼 이 만화는 읽는 사람을 살찌우려 한 게 분명하다.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도 함께 소개되었으니까. 하지만 집에서 쉽게 만드는 꿀바나나가 최고다. 이건 뜨거운 시나몬 향 덕분이다. 시나몬이 들어간 모든 것을 싫어했는데 역시 일관성 있는 인생은 없다. 입맛은 변한다.


뜨거운 바나나에 뿌린 시나몬 향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면, 영화 <카모메 식당> 단정한 주방에서 막 구워낸 시나몬롤도 함께 떠오른다. 정말 뇌 속 상상력은 대단한 것이다. 막 구워낸 시나몬롤 겉면의 바삭함도 상상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시나몬롤도 뜨거워야 제맛일 것이다. 따끈한 시나몬롤과 함께 커피나 홍차를 마시면, 축축한 우울감 따위 햇볕에 말리듯 날려 보낼 수 있다.


아, 커피. 시나몬가루 올린 커피, 카푸치노가 있구나.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면 오가며 염탐하다가 방문한다. 첫 주문은 무조건 카푸치노다. 우유 거품에 뿌려진 시나몬 가루를 보고 카페의 흥망성쇠를 몰래 점친다. 넘칠 듯 말 듯 볼록하게 올린 하얀 거품 전체에 얇고 고르게 뿌려진 시나몬 가루가 베스트다. 향이 균일하고 은은하게 퍼지기 때문. 이 고운 작업을 세심하게 완성하는 곳은 다른 메뉴도 정성 들여 만들고, 손님도 많다. 아무튼 시나몬 가루를 어떻게 뿌렸는지 치밀하게 살피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시나몬은 분명 열기를 만나 향이 열린다. 향을 이루는 분자들이 공기 중에 뛰어나와 만세를 부르는 느낌이다. 그 향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꽃향기는 흩어지는데, 시나몬 향은 코끝에 배어드는 것 같다. 향신료란 그런 것일까?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에 나오는 요리는 저마다 어울리는 향신료가 있다. 요리에 녹아들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강렬한 맛을 내는 향처럼, 이스탄불 향신료 가게 손자였던 주인공은 첫사랑 소녀를 잊지 못한다. 향신료 자루가 가득한 창고에서 춤추던 작은 소녀는 소년에게 고유한 향기로 기억되었을 것 같다. 소년의 아련한 추억은 아름답다. 하지만 향신료를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다퉜다는 세계사 한 단락이 떠오른다. 오묘한 향이 얼마나 여러 사람을 홀린 것인가. 향은 사람을 조종한다. 은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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