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기타를 연주했다
서른 살 총각 선생님은 대구에서 대학을 나오신 것 같다. 그리고 1993년, 탄광촌 중학교에 부임하셨다. 그분은 여타 선생님들과 조금 달랐는데 규칙을 살짝 깨는 분이었다. 이를테면 오늘은 이런 노래가 어울린다며 즉흥적으로 기타를 연주하셨다. 선생님은 도덕을 가르치셨다. 기타 줄을 고르며 풀썩 의자에 앉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양복을 입고 계셨지만 의자 먼지 정도는 개의치 않는 모습에 나는 반했다. 반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 M은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토론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을 반쯤 제쳤다. 그리고 교과서 글줄 사이에 들어갔어야 할 세상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선생님이 운동권 세대임을.
도덕 선생님은 학생 몇몇에게 카세트테이프를 선물했다. 선생님이 직접 골라 녹음한 테이프에는 노찾사 노래와 뉴에이지 음악, 팝송이 들어 있었다. 그즈음 아빠가 각종 액자와 전축에 이어 사온 일제 aiwa는 내 차지였고, 나는 선생님이 주신 테이프를 넣어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같은 가사가 흘러나오면 잠이 확 달아났다. 저항의 정서는 사춘기 중학생에게도 맞춤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방해받지 않는 건 예전에도 마찬가지. 다만 노래를 들으며 돋아나는 충동을 부모님에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테이프를 들을 때 공부하는 척 위장했다. 선생님이 운동..하는 대학생였는지 여쭤본 적 없으니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도 세상이 흉흉(?)하여 아빠는 자식이 데모하러 다닐까 봐 걱정했다. 절묘하게도 세기말이란 타이밍에 그런 일은 없었다..
선생님이 20대였던 시대를 몰랐기에, 그분의 뚜렷한 실루엣을 이해한 것은 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영화 <1987>을 보고서야 알아차렸다. 그 시절 의식이 높은 젊은이가 많았다는 것을. 그런 시대를 거친 선생님만의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어떤 기질은 학생들에게도 전해졌다. 한점 아쉬운 기억은 있다. 쉬는 시간에 벽돌책을 읽고 있던 나를 보고 반색하던 선생님 표정이 급격하게 식었는데, 그 책은 하이틴 로맨스였다. "○○아, 다른 책도 읽어 보렴." 선생님은 내가 읽던 책을 넘겨보시고 돌려주셨다. '학생이 학교에서 연애소설을 읽냐!'며 책으로 머리를 내리치거나 혼내지 않으셨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그나마 읽던 책도 안 읽는 이유 없는 반항을 했을지도. 그때 내가 빠져있던 책은 김용 무협소설과 마이클 크라이튼 <쥬라기 공원>, 그리고 에릭 시걸 <닥터스>였다. 공부를 파고든 사람들은 좀 이상한 것 같고, 부자 중에는 못 말리게 미친 사람이 많다는 얕은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책은 <피타고라스의 대 점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은 정현웅 <마루타>였다. 선생님이 권하고 싶었던 책은 뭐였을까?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내내 유효한 질문으로 남았다.
나는 선생님의 지적인 세계와 연결되지 못했지만 그분은 내게 반골 기질의 표상이 되었다. 그건 '다르게 생각해 볼 것. 좀 더 생각할 것. 가능하면 끝까지 파헤칠 것'같은 무언의 메시지였다. 찌르르 바람이 차가워질 때 운동장 청소를 맡은 중학생들은 까르르 웃으며 교정 한쪽에 모은 부스러기를 태우고 있었다. 축축한 낙엽은 더디게 탔고 그 내음에 카세트테이프에 빼곡하게 녹음된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찬찬히 얹어졌다. 그것은 15세 인간의 정서에 온전히 스며들었다. 지금도 카세트테이프 첫 순서로 흘러나온 첼로 연주곡을 기억한다. Toute Une Vie. 어떻게 읽는지는 모른다.. 다만 제3세계로 데리고 가는 듯한 그 선율은 도덕 선생님과 함께 송곳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