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치는 글쓰기

안갯속에서 등신춤을 추는 것 같아도 쓰는 이유

by Gomsk

글은 무기다. 그리고 임금 앞까지 보고된 글이라면 대단한 문장이었겠지. 사극에 등장하는 권력자는 상소문을 읽고 두 팔을 부들부들 떨거나 눈을 질끈 감는다. 그 글을 입체 영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상소문은 잘 벼려진 칼이 목을 겨누고 있는 모양새 일거다. 논리에는 빈틈이 없어 글 쓴 자를 먼 땅으로 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 임금이 분노하는 이유를 알겠다.. 글은 사람을 뒤흔든다.


경기도 박물관에서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전을 특별히 하고 있다. 지석이 뭔지 구경이나 할까 전시장에 들어갔는데 디테일한 동네(?) 역사를 보는 건 예상보다 의미 있었다. 왕과 왕실을 기록한 역사처럼 극적인 면이 있다. 풍양 조씨 가문의 조병현 선생은 정조대왕 때 태어난 사람이고 이후 순조·헌종 대에 벼슬을 지냈다. 30대 중반에는 암행어사를, 마흔 무렵엔 어린 세자를 측근에서 보필한다. 어린이 왕이었던 헌종이 스물한 살에 서거하자 오열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정치 상황도 복잡했던 것 같다. 50대에 병조판서와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던 그는 철종이 즉위할 무렵 한양과 멀리 떨어진 섬에 유배되고 결국 사약을 받는다.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은 죽음을 맞기 전 이 분이 남긴 기록이다. "인생무상" 만약 산간벽지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평생 실천한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면 감흥이 달랐을 것이다. 게다가 사약이 내려졌다고 미리 알린 이가 있어 그 짧은 말미에 쓴 것이다. 전시관 유리 너머로 본 글씨에 흔들림이 없다. 콧날이 시큰했다. 조병현 대감은 단단한 도자기에 그의 생몰과 치적이 기록되어 생애가 글로 보존되었다. 읽을 수 없는 한자로 쓰인, 말없는 지석을 보니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차분하게 글로 신변을 빠르고 침착하게 정리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생면부지 조선시대 양반의 최후에 경건해진 것은 글쓰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할 수 있다는 점과 글에 자신이 그대로 담긴다는 감동 때문이다. 나의 글은 나의 그릇이다. 나라면 사약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데 차분하게 글씨를 쓸 수 있었을까? 단정한 교육을 받고 총명한 두뇌로 사회생활을 했던 엘리트가 아깝게 목숨이 끊어진 것을 보고, 얼마나 수많은 이들이 기록조차 없이 사막의 모래처럼 쌓여있는 것인지 마음이 묵직해진다.


"격조가 있어야지" -조커 <다크 나이트>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르는 건 왜 인가? 글쓰기는 내게 인간증명 폐인방지책이다. 내 말주변은 바람에 한꺼번에 흩어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두서가 없다. 갑자기 반응하고 급격하게 식는다. 유려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이를 보면 기가 죽어 말문을 닫는데 그러다 보니 곤란하게 부푼 밀가루 반죽처럼 내면에 무언가 뭉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가 될 작정을 한 것이 아니요, 일억 개 라이킷 따낼 욕망을 지녀서도 아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면도하고 세수하려 애썼다는 선생님께 남은 필살기도 글쓰기였을 것이다. 종이와 펜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머릿속에서 글을 썼을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윤복 선생처럼.


영화 <미스트>에서 안개가 시야를 차단한 꽉 막힌 느낌이 떠오른다. 글쓰기는 그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움직이는 만큼 시계가 확보된다. 지금 내가 그 지경이니 언제든 날카로운 괴생물체의 촉수가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포에 움츠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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