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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Jul 17. 2020

그림책 읽기를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독서노트- 황유진, 어른의 그림책

<나, 꽃으로 태어났어>

작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꽃은 많은 일들을 해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사랑과 행복을 전하며, 삶과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한다.  꽃의 아름다움은 비록 열흘 남짓 짧게 유지되지만 인생의 산꼭대기나 골짜기를 조금 더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책장마다 등장해 웃음을 자아내는, 행운을 상징하는 무당벌레처럼 꽃이 건네는 행운은 일생을 통틀어 유효하다. 사람의 쓰임도 그러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홀로 활짝 피어 보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꽃이나 사람에게 가 닿아 한순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면.


<구덩이>

히로는 구덩이 안에 가족도 친한 친구도 초대하지 않는다. 오직 혼자서 고요히 머무를 뿐이다. 시각뿐만이 아니라 촉각,  후각이 은은하게 깨어나는 경험도 홀로 존재하는 순간에 머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구덩이는 내면의 상처를 더듬어가는 탐구의 과정이나 몰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안온한 휴식처의 은유이기도 하다. 히로는 ‘이건 내 구덩이야’라고 거듭 말하는데, 나만의 자유와 고독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이다.


<떨어질 수 없어>

똑같은, 그래서 완벽해 보이는 세계를 벗어나 나와 다른 상대와 어울려보았을 때에야 신발은 비로소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처럼 짝을 일고 벌벌 떨고 있는 초록 양말의 두려움이 보이고,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소녀 리타의 아픔이 보인다.
......
그렇다면 찢어진 신발 한 짝은? 신발로는 더이상 쓰이기 어렵지만, 나와 다른 존재와 만나 또 다른 쓸모가 생긴다. 옆구리에 상처 자국을 그대로 드러낸 신발이 새빨간 튤립을 만나리라고 몇 사람이나 상상할 수 있었을까? 눈 밝은 이를 만나, 각기 다르게 생긴 물뿌리개와 양동이와 신발 한 짝은 꽃을 품은 화분이 된다. 다른 것들이 모여 세상은 조금 덜 지루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진다.


<아주 작은 씨앗>

일단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기까지, 이만큼이라도 뚜벅뚜벅 걸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가능성을 먼저 보고 격려해주었는지 모른다. 땅 위를 덮었던 살얼음을 조금씩 녹여주는 말들이 오래 나를 지탱해주었다. 그러니 나도 눈을 크게 뜨고 채 피지 못한 잎과 꽃을 보아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눈길이 때로는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길을 내어주는 법이다.


<나의 엄마>

자유롭게 각자의 엄마에 대해 털어놓은 이후, 이상적인 모녀 관계를 두고 생각을 나눈다. 이때는 흐미엘레프스카의 [두 사람]을 읽어주고 그중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림을 골라보도록 한다. 모녀라는 관계의 축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이 아니라, 모래가 다 쏟아져내리면 뒤집는 모래시계처럼 서로 번갈아가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수종은 다르지만 뿌리가 얽혀 있는 나무처럼, 서로의 아름다움과 존재를 인정하며 살고 싶다는 대답도 있었다.


<똑, 딱>

그래서 “딱이가 없는 똑이는 똑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딱이가 없어도 똑이는 충분히 멋진 똑이라고. 똑이가 없어도 딱이는 충분히 아름다운 딱이라고. 그렇지만 언제고 지치고 힘이 들 때 기댈 수 있는 짝이 있어 더욱 행복한 둘이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로 각인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대지진이나 해일 피해처럼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는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삶은 자주 괴로워지고 외로워지고 불퉁해진다.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 해도 매일 우리 곁에서 해는 뜨고 달은 지고 꽃은 핀다. 내가 지금 여기에 없다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존재의 이유를 잃고 만다. “산은 오늘도 저기 있고, 나무는 오늘도 여기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그래, 무언가 별다를 것이 없어서 나는 지금 이곳이 좋다. 이유나 목적이 없고,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무사히 눈을 떠 평범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생의 큰 축복이다. ‘여기 있음’으로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삶의 의미를, 소중한 무언가를 잃기 전에 알아차리는 연습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연남천 풀다발>

특히 늦가을 피어나는 꽃 앞에서 “모두가 질 때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는 것이”라고 해주는 말은, 풀이 내 귓가에 직접 속삭여 주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열심히 잘 자라고 있어"라고.


<100 인생 그림책>

그림책과 사람의 힘에 기대어, 혼자라면 감히 가닿지 못할 다른 시공간의 인생에 초대받는 것,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 작가 팔러는 초등학생, 할머니, 중년층, 고등학생, 작가, 시리아 난민 등 나이, 성별, 출신, 직업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이 책을 지었다. 그리고 “삶의 경험이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서 이 글들이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나라는 울타리의 빗장을 열어 보였을 때, 인생의 신비는 좀 더 솔직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용감한 아이린>

하지만 삶이 늘 희망으로 가득하진 않고 때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알고 있다. 절망과 불공평, 불행의 맨 얼굴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어른에 가까워져 간다. 그래도 가끔은 희망에 기대어 살아가고 싶다. 힘을 내어 걸어가지 않으면 겨울을 끝낼 수 없기에, 겨울 속에 오래 갇혀 있다가는 얼어 죽고 말 것이기에. 혹독한 겨울 한가운데가 사실은 가슴 설레는 한 해의 첫째 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해내는 것이다.


   

위에 소개한 글은 제가 <어른의 그림책>을 읽으며 밑줄 친, 내 마음을 울린 부분들입니다.    




<어른의 그림책은> 총 36권의 그림책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과 주제를 소개하고 그림책에 자신의 삶이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또한 어떤 깨달음이나 감정에 머물렀는지를 친구처럼 편안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그림책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누었던 다양한 감상들과 활동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독자는 소개되는 그림책에 하나씩 하나씩 귀 기울여 가면서 “아, 그림책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하며 작가의 감상을 공유하고 내 삶을 반추해 보는 동시에 어떻게 더 의미 있게 그림책을 활용할 수 있을지의 방법들도 배우게 된다. 단순한 그림책 설명에그치지 않고 절반 정도는 그림책 모임에서 함께 했던 장면들을 담아내었기 때문에 감상과 실용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약 서른 가지의 의미 있는 주제를 분류해 두긴 했지만, 딱 한마디로 이 책을 요약하자면 ‘그림책과 함께 어떻게 우리 삶을 더 행복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의 이야기다. 특히 전체적으로 사람과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작가의 세계관이 느껴지기에 이 책은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작가가 책 안에서 자주 쓰는 ‘결이 맞다’라는 표현처럼,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가 나와 ‘결’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덕분에 책을 덮자마자 아이의 책장으로 가서 밤새 그림책들에 빠져 헤엄치다가 내 인생 그림책을 몇 권 만났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한 지인에게도 그림책을 선물하고 이야기 나눌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림책 붐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그림책을 좀 읽어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서 혹시 망설이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이 그림책의 나라에 제대로 착륙할 수 있도록  믿을만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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