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시작된 온라인 독서모임의 2번째 책으로 장강명의 '표백'이라는 소설이 선정되었다. 사실 장강명의 소설은 지인들에게 여러 번 추천을 받았음에도 왜인지 흔쾌히 찾아볼 만큼 끌리진 않았었는데, 이 기회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독서모임은 이렇게 편향된 개인의 독서취향에서 탈피하여 책의 반경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곤 한다.
'표백'은 전자책으로 보았음에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혔을 만큼 몰입도가 높은 책이었지만, 그가 던진 주제는 굉장히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치 있는 논의이기도 해서 복잡 미묘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때문에 어느 소설보다도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다. 오늘의 독서노트에는 감상의 글 형식보다는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간단히 목록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 소설은 감상보단 분석이 더 어울리는 소설인 것 같기 때문이다.
-스포 포함-
<좋았던 점>
1.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과 좌절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그 실망 혹은 변화의 메시지를 어떻게 의미 있게 표출할 것인가 화두를 던지며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취업과 장래에 대한 고민과 좌절, 대학가의 모습, 공무원 시험, 언론고시 등 졸업반의 색깔들을 곳곳에 옮겨내어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소설이다.
2. 전자책으로 읽었음에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혔을 만큼 몰입도가 높고 흥미로운 구성을 갖추고 있다.
-> 실제 이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와 닉네임으로 대화하는 에피소드를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하고 미래에 대한 복선을 깔아 둔다거나 소크라테스 등 이름으로 압축파일의 암호를 설정한 것도 신의 한 수 인 것 같다. 케네디 암살이라는 실마리도 매우 신박했다. 소설의 재미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매우 적절한 장치였다.
3. 이단이나 다단계의 수법이 이런 식일 수 있겠구나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왜 멀쩡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 빠지는지 의아했는데, 세연 같은 매력적인 인물을 이용해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꼬드기고 세뇌시키는 과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조금은 예상이 되었다. 또한 인간을 설득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정신적으로 나약한 부분이나 원하는 부분을 건드려 치밀하게 접근하면 맹목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게 참 쉬울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인간의 나약함이 실감되어 무섭고도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아쉬운 점>
1. 주인공 세연을 남성편력이 있고 문란한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개혁가이자 변혁가로서의 그녀의 면모에 당위성과 설득력을 떨어뜨렸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즉, 지성 있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철학을 아주 의미 있게 풀어놓았음에도 굳이 주동인물을 문제가 많은 인물로 설정하였기에 우리 사회의 답답함과 젊은이들의 좌절에 집중하기보다 그녀의 정신병과 특이함에 집중되어 그저 한 미치광이의 이야기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 그래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묻힌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물론 이 또한 작가의 특별한 의도일 수는 있으나 주동자인 그녀를 결점 투성이에 문란한 인물로 그린 것은 주제의 의미가 퇴색되고 아쉬운 측면이 많다.
2.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자살을 미화하는 듯 하지만 최후까지 읽어보면 자살이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역설하고 있다. 이 부분은 다행이고 바람직한 결말이라고 생각하여 칭찬하고 싶다. 다만, 맨 끝이 아닌 중간 3분의 2 분량까지는 자살이나 자살사이트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과 묘사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자살을 종용하거나 동조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등 파급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때문에 읽는 내내 터질까 봐 조마조마한 폭탄을 들고 있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위험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쉬운 점도 많이 갖고 있는 장강명의 '표백'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젊은이들의 좌절을 그려냈고 시대상도 현실적으로 비춰내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한 번쯤 읽어 볼 가치는 있는 소설이다. 다소 어둡지만 한 번쯤 기존 소설들에서 벗어나 조금 새로운 소설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에 관심이 많은 누군가에게 추천해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