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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Aug 13. 2020

돈쓰기에 대한 가볍고 유쾌한 단상

독서노트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신예희

와우. 독서모임의 세 번째 책은 제목부터 확실히 트렌디하고 개성이 넘친다. 길어지는 장마와 함께 마음이 무거워진 탓인지 나도 모르게 신영복 교수의 <담론>, 알랭드보통 <불안> 이런 책만 읽고 있던 요즘, 훅 끼어들어온 그녀의 책은 통통 튀는 탱탱볼처럼 가볍지만 발랄하고 참신했다.

일단 책 사이즈가 매우 작아서 출장 가는 KTX 안에서 읽을만한 추천도서로 딱이겠다 라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는 이 책을 아빠에게 꼭 읽게 해야겠다 는 다짐을 했다. 로봇청소기를 산다는 말을 듣고 혀를 끌끌 찬다거나 족발은 뼈다귀까지 쩝쩝 뜯어먹어야 한다고 뼛속까지 강조하는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 부분을 읽을 때는 우리 집 얘기를 쓴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처음 이 책 제목만 보았을 땐 과소비라든지 돈 쓰는 재미에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일 거라 예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의외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이를 테면, 창고형 매장에서 궤짝으로 사 오는 식료품이 단가는 훨씬 싸겠지만 조금 더 비싸더라도 새벽 배송으로 필요한 1인분씩의 재료만 시켜 요리해 먹는 것이 혼자 사는 나를 위해서 더 현명한 돈지랄 일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또 어떤 날은 명품 립스틱 1개 가격으로 저렴이 여러 개를 사본 적도 있지만 정작 그걸 바를 때 기분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해 결국 나중에는 다시 비싼 립스틱으로 갈아탔다는 일화도 있다. 그렇지만 2년에 6번 이상 여행을 가는 그녀도 목표한 일정 금액의 현금을 모으기 전까지는 신용카드만으로는 절대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는 철저한 원칙을 지키는 매우 개념 있는 경제관의 소유자였다.

결국 이 책이 하고 싶은 말은 "과거처럼 기본 의식주의 충족이나 무조건 싼 것에만 기준을 맞춘 소비를 벗어나 이제는 개인의 행복과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소비도 좀 해보자"라는 말인 것 같다. 즉, 예산에 맞는 계획된 지출을 하며 살되, 가끔 일부는 떼어 기꺼이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쓸 수 있는 몫으로 남겨 두고 행복한 기분을 좀 만끽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이미 이런 소비를 넘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이 별로 의미가 없겠고(보여주지 않는 게 나을지도), 돈을 알뜰하게 정직하게 잘 관리하고는 있지만 그저 저렴한 것과 아끼는 것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르는 행복'의 세계를 맛보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ㅡ 이렇게 소소한 주제도 콘셉트를 매력적으로 잘 잡고 자기 철학을 덧입히면 책이 될 수 있구나. 쓸거리는 참 무궁무진 하구나. 누구나 겪고 있고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별 것 아닌' 일상의 소재를 선택해 나만의 색깔을 입혀 '별 것 있게' 버무려 쓰는 것도 작가의 안목이자 능력이구나 ㅡ라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앞으로 무슨 얘기를 써 보면 좋을까 고심하면서 괜히 다이어리를 몇 번 뒤적여 보았다는 쑥스러운 뒷이야기도 전한다.

언젠가 대중교통을 타고 한 시간 넘게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날,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주문하시라. 그리고 돌아와 당신이 뭘 사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부모님께 슬쩍 전해드리는 것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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