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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Sep 20. 2020

독서노트- 감정폭력

세상에서 제일 과소평가되는 폭력이야기

독서노트 (감정폭력-베르너바르텐스) 2020.9.18.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감정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실제로 감정폭력은 크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이 있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그냥 넘어가는 것을 어떤 고귀한 미덕으로 삼아 온 문화에서는 더욱 그 색이 짙게 드러난다. 물리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바르고 사람들이 ‘아프겠다’라고 ‘다친 사람’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주기도 하지만, 정신적 상처는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털어놓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위험하다. 설령 털어놓는다고 다고 해도 가시적이지 않고 실체가 없으니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처는 알아서 저절로 아문다고들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주변인들에게 정서적 지지나 공감을 받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든 감정적으로 당한 상처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조치는 꼭 필요하다.


아래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우리가 감정 폭력이라고 인식을 못하는 상황들이 굉장히 많다. 이 책은 사소하고 은근한 감정적 학대와 폭력의 예들을 보여주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내뱉곤 하는 말들 중에도 감정 폭력의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특히 농담과 상처의 미묘한 경계에 있는 말들은 당한 입장에서 항변을 하기에 곤란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참 교활하고 책임에서 빗겨나가기가 쉽다. 말을 하기 전에 늘 피곤할 정도로 철저히 재단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고 상처를 입히는 말들이 무엇인지를 알아 둔다면 그런 말하기 방식을 피하는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일을 돕고,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알 수 있다. 왠지 모르게 그 사람을 만나면 자꾸 기분은 나쁜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면 그는 알게 모르게 감정 폭력을 행하는 사람인 것을 그간 인식을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공지영 작가의 책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어 소개하고 싶다.


어떤 커플(여기서 커플이란 부부나 연인도 되고 친한 선후배 등 붙어 다니는 모든 사람을 이야기해)을 만났을 때 가끔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단다. 분명 둘은 친한 사이고 심지어 사랑하기도 하며 서로 그 사실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커플인데도, 한쪽이 심한 면박을 주거나 모욕적인 언사 혹은 그런 행동을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것을 애정이라고 하며 극언하는 것을 보았을 때 말이야.
"그건 저 사람이 나 좋아서, 혹은 나 잘되라고 그러는 거예요. 저 사람이 말은, 혹은 행동은 그렇게 해도 속으로는 저를 무지 위하고 좋아해요"

"만일 어떤 친구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는데 네 뺨이 싱싱하게 보이고 눈이 반짝이면서 아름다워 보이고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괜찮지?" 하는 생각이 들고 왠지 책상에 앉아 차분히 일기라도 쓰거나 좋은 책을 읽고 싶어 진다면, 그런 친구는 만나거라. 그런데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화가 나고 아이스크림, 짜장면, 라면, 불닭 볶음, 이런 게 막 먹고 싶어 지면서 오늘따라 내가 왜 이렇게 밉지, 하는 생각이 들거든 그 친구하고의 만남을 자제하거라. 이게 엄마가 네게 줄 수 있는 인생 선배로서의 가장 단순한 충고야. "
 
공지영, < 딸에게 주는 레시피> 중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우울한 기분을 전가시키고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것도 정서적 폭력의 일종이다. 당신이 부모라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할 시간과 돈, 취미 등 나를 위한 부분을 남겨둘 때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 아이에게 나의 짜증과 분노, 우울을 투영하거나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체크해 보아야 한다. 훈육에 있어서도 협박의 기술이 이용된다.


 “사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연인관계와 가족관계 모두 감정적 협박 없이 굴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뮌헨 공과대학 심신의학과를 책임지고 있는 마르틴 자크는 이런 문제가 ‘인간관계의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 안에 숨겨진 동기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애정을 볼모로 해서 아이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방법은 협박에 가까운 기술이다. 아이의 순종적인 태도를 지나치게 예뻐하는 태도는 아이의 자유의지를 짓누른다. “
 
('감정 폭력' 121페이지)

   

오래된 지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 수동적 공격’과 ‘감정적 무시’가 많이 일어난다. 말을 할 때 듣지 않고 딴청을 하거나 하품을 하는 일, 집중하지 않는 일도 수동적 무시의 일종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의사 등 전문가라면 더욱 당신의 태도가 중요하다. 환자는 의사의 말 하나하나를 크게 받아들이고 기억한다. 그 파급력에 비해 의사들은 자신의 말과 태도에 신중을 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과 추측성 발언이 정서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책의 말미에는 감정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까지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고 책을 접하기도 전에 흥미가 떨어질 수 있으니 직접 책을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도록 하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서는 이제 매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교육이나 성희롱 예방 금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들을 어느 정도는 배우게 될 기회가 주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폭력'에 대한 교육도 직장 내 괴롭힘 교육 때 비중 있게 다루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은근한 따돌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폭력도 아직까지 직장과 사회에 비일비재한데, 이를 방지하고 감정적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다 같이 주의를 기울이는 노력이 절실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돈, 권력, 명예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타인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공감능력을 갖는 것이다. 그런 가치를 우선시 하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사실은 진짜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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