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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Oct 02. 2020

또 하나의 인생드라마 '나의 아저씨'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

인간은 입체적이다. 어느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인간의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악인도 분명히 그의 몸 어딘가엔 따뜻한 구석이 있는 법이고, 좋은 사람도 어느 곳에서는 검은 그림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동훈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동훈은 언제나 바르고 성실하고 깨끗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까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 윤희에게 동훈은 늘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먼 존재였고 만인의 연인과도 같은 동훈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여갔다. 그녀에게 동훈은 그녀의 가족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가족, 혹은 가족 바깥에 겉도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특히 동훈은 그의 원가족인 어머니와 형제들에게서 온전히 독립하지 못했고 그에게 "식구"는 아내와 아들이 아니라 원가족이었기에, 윤희는 자신의 존재에 갈피를 못 잡고 부유하다가 결국 다른 남자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동훈은 분명 모진 풍파를 겪고 자라 온 '지안'을 치유하고 지안에게 따뜻함을 가르쳐 준 참 좋은 어른이었다. 그 자체로도 물론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는 그를 단지 뻔하게 이상적으로 미화시키지만은  않는다. 좋은 어른의 이면에는 아내를 힘들게 한 남편의 모습도, 우유부단하고 용기 없는 스스로에 대한 곪은 상처와 내면의 갈등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많은 여운을 남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생드라마로 각인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인간결코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인 존재로 그려진 것을 보며 시청자는 현실적이라고 느끼게 되고 사유에 잠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곱씹게 된다. 그렇게 이 드라마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질 발판을 제공한다.

주인공은 동훈과 지안이지만 결코 주인공만 돋보이는 구성이 아니라는 점도 '나의 아저씨'의 또 한 가지 매력이다. 상훈, 기훈, 광태, 유라, 정희 등 열명도 넘는 다양한 인물들의 캐릭터를 꽤나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어느 하나만 유독 더 폼나고 멋있는 인생으로 포장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인생이 다 고민이 있고 자신만의 무게도 있고, 또 무게만큼의 즐거움도 있다는 걸 그냥 이 드라마는 무심하게 보여준다. 나는 그중에서도 실패한 영화감독에서 청소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기훈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악에 받 광태의 모습에서도 연민이 느껴져 마음이 짠하고 자꾸 눈물이 났다. '정희네'서 다 같이 모여 실없는 농담을 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참 정겨웠다.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한동네 사람들이 요즘은 보기 힘든 광경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눈물을 흘리면서 보다가 또 깔깔 웃다가를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여운도 참 깊고 오래간다.

이틀 남은 명절 연휴 동안 혹시 정주행 할 드라마를 찾고 있는 누구라면,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를 찾고 있는 누구라면 '나의 아저씨'가 좋은 선택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대신 마음이 아릴 준비는 단단히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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