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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Oct 18. 2020

독서노트 - 이기주 <글의 품격>

글은 가슴으로 쓰는 것

나는 이기주 작가와 성격도, 생각도 굉장히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결이 잘 맞는다는 표현보다도 좀 더 가까운 어떤 단어가 필요한 느낌이다. 사실은 <글의 품격>을 읽다 말고 책장을 뒤적여 맨 뒤의 ‘초판 인쇄 날짜’를 찾아볼 정도였다. 올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노트에 남겼던 메모들, 끄적였던 문장들과 너무 비슷한 것들이 많아서 “아니 혹시 이 분이 내 글을 봤나? ” 혼자 이런 깜찍한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이 책은 글을 쓰고 있거나 혹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론과 형식이 아닌, 보다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관점에서 알려주는 책이다. 다만 글의 60프로가 거의 비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을 만큼 감성적이다 보니, 워낙 오글거리는 문장들도 많은 편이라 간질간질한 걸 딱 질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고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언어의 온도> 보다는 조금 호불호가 갈릴 만한 책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대로 그와 비슷한 감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찾은 나만의 리듬,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서사에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무척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특히 소재 채집과 글감 수렵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는 낮에는 주로 카페에 가거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메모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가에게 메모의 의미에 대해 꽤나 길고 진지하게 여러 일화들을 들려준다. 그의 말대로 역시 메모는 실로 중요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부터 나도 꼭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이 흩어지지 않도록 유리병에 담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여러 편의 글을 써 보며 몸소 느꼈다. 소설가 김영하 씨도 엄청난 메모광인데, 여행 갈 때마다 새 노트를 준비해서 빼곡하게 다 채우고 올 만큼 메모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크다고 들었다. 작가에게는 꼭 필요한 아주 현명한 습관인 것 같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나중에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 옮기는 시점이 되면 그 감성과 호흡까지 오롯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에 인용되는 기자들의 말 "아이스크림은 녹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비유가 참 주옥같다.


그는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디서 글감을 찾고 그걸 집에 와서 문장으로 옮길 때는 집중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자신만의 특별한 팁을 아주 세세하게 읊어준다. 광화문의 어느 카페 실명을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아지트를 소개하는 것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와 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왜 밥이 아니라 빵을 먹는지에 대한 취향까지 들려준다. 독자로서는 ‘아니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글에 집중하기 위한 자신만의 세세하고 개인적인 노하우, 심지어는 특정한 작품을 썼을 땐 어떤 음악을 들으며 작업했는지까지도 소개한다. 마치 남자 주인공의 일상이 주제인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좀 신비감이 없고 너무 일기 같기도 한데, 작가의 문턱에 서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가 그려놓은 그 일상을 쭉 따라가다 보면 잔잔하게 공감도, 응원도 많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왜 그는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다 쓰기로 결심한 걸까.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혹은 독자도 별로 기대하지 않는) 작가의 사생활까지 그림처럼 그려줄 수 있는 건, 아마도 그가 글 쓰는 일을 그만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이고, 다른 이들도 글쓰기와 사랑에 빠지기 바라는 순수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것을 뽐내려는 허세가 아니라, 애정이 담긴 소박한 어떤 것에 대해 속닥속닥 집에 놀러 온 친구한테 구경시켜주는 순수한 다섯 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말이다.


사실 이 글은 나 같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기 쉬운 책이지만, 정작 나와 반대의 성향인 사람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은 수려하게 잘 쓰지만 감동이나 영혼이 빠져있다는 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가슴을 울리는 포인트를 찾아 줄 수 있다. 혹은 크고 실체적인 것들에만 집중해서 너무 생각이 짧다고 오해를 받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책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일생의 자잘한 것들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해 보는 것에 대한 필요와 시도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들은 이 책을 불편해할 가능성이 크기에, 과연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사실, 일상의 작은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작은 것에 연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 타고난 성격상 작은 것에 집중하거나 소소한 것들을 챙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불필요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그 작업이 참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일상의 작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글은 그런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거라 믿는다.   


나에게 이 책을 딱 한 줄로 요약하라면 ‘글은 가슴으로 쓰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하고 싶다. 멋진 단어, 훌륭한 문체와 예시. 모두 좋지만 일단 내 가슴의 울림이 있었던 글감으로 그 감동을 녹여내어 쓴 글은 분명히 다른 이들에게도 그 울림을 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리라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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