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지원메일이 '읽지 않음'일 때

나의 마음을 읽어 본다.

by Iro

취업난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구직공고가 가뭄에 콩나듯 올라온다.


그중 몇 주 전부터 재공고가 올라오던 곳이 있다. '뭐지? 왜 자꾸 다시 올라오는 거지? 일이 많은가? 6명의 장기근속자가 근무하고 분위기도 좋다는데, 이상한 사람이 있나?'


다른 한 곳은 호흡기 중환자의학과다. 과 특성상 예기치 못한 이상반응이 자주 있고, 데이터 입력 업무가 많다고 들어 제외시켰던 곳이다.


허나 지금은 따지고 말고 할 때가 아니다. 일단 첫 번째 공고에 나온 메일로 서둘러 입사지원서를 보냈다.


그런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 수신확인을 해보니 '읽지 않음'이다. '그래, 아직 안 본 거니 차라리 낫지'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며칠을 더 기다려 봐도 연락이 없다. 시간이 꾀 흐른 것 같아 날짜를 세어보니, 이제 이틀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이 유독 빠르게 느껴지건 조바심 때문이었다.


'아직 쓸 곳이 더 있으니 괜찮아'라고 조용히 되뇌이며 업무에 집중해 본다.


인수인계를 생각하니 은근히 정리할 것들이 많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던 스스로가 새삼 대견하다. 신규를 뽑는다는데 과연 이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중간에 나가겠다고 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된다.


이미 마음이 떠났기에 일이 손에 잡히진 않는다. 수시로 들어가서 메일을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본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다.




퇴근 후 여전히 읽지 않음인 메일 보며 방법을 찾아본다. 똑똑한 GPT는, 수신확인을 위해 연락을 해봐도 된다고 알려준다. 카페 댓글은 수신확인 설정을 표시되지 않게 해 두었을 수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한다.


연락이 오지 않은 것 뿐인데 마음이 가라앉는다. 기다림에서 기대를 덜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책에서 이런 내 기분을 보는 듯한 문장을 만났다.


생각이 실재가 되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지만 우리 머릿속에서는 이런 마법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어떤 생각을 붙잡고 놓지 않으면 마음에 남아 계속 ‘반복 재생’되면서 불어나기 때문에 마치 세뇌당하는 것처럼 사실이라고 믿기 쉽다. ‘부족하고 만만한 나’라는 지현의 생각도 붙잡지 않고 놓아주어도 될 생각의 하나일 뿐이지, 지현의 존재 자체는 아니다.

‘나’와 ‘나의 생각’은 새로운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나와 나의 생각이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건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건강한 거리 두기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생각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을 말하는데, 마음 다이어리를 통해 연습할 수 있다.

마음 다이어리를 쓰는 과정에서 마음을 괴롭히는 생각을 포착하고 기록했다면, ‘나는 부족하다’가 아닌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형태로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를 지키는 관계가 먼저입니다 | 안젤라 센 저


- 나는 부족하다.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나는 서류 탈락한 사람이다.

이번 지원에서 서류 전형을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우울하다.

오늘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다.




취업에서 낙방한 것은 나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그곳에서 연락이 안 온다고 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안맞는 곳이었고, 시기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은 더이상 추가지원 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든 여기보단 나을거라는 생각으로 도망치듯 옮기지는 않으려 한다. 당분간 차분히 때를 기다려보자. 그때가 되면, 나를 인정해 주는 딱 알맞은 자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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