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초보자도 구원한다
새해 첫날, 어두운 방 안.
엄마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오복이의 울음소리에 기쁨의 아침을 맞았다.
작년 마지막 날 저녁 11시 45분부터 열정적으로 깨웠지만 '잘게요'라고 했던 오복이다.
"왜 안 깨웠어요, 이제 내년 타종 기다려야 돼요?"
연인과 헤어진 사람처럼 이불을 푹 덮어쓰고 통곡을 한다.
말을 할까 말까 하다, 그칠 무렵에 스치듯 말해본다.
"오팔이는 봤어." 2차 울음보가 터진다.
놀리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지만 오팔이가 자랑하기 전 알려줘야 했다.
이런 일을 예상하고 11:59분부터 영상 촬영을 해놓았다.
'오복아, 일어나야지. 이제 종 쳐. 카운트 다운한다. 빨리빨리!' 영상 속에는 누워서 손흥민 동생의 경기를 켜놓은 휴대폰을 들고 있는 최애씨와 홀로 열과 성을 다해 쇼를 하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소원을 빌고 싶었어요. 엄마, 내년에는 꼭 일으켜 세워주세요." 다행히 오복이는 금세 웃음을 찾았다.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놀러 갈게요." 아이들은 인사 자판기가 된 듯 연거푸 같은 말을 반복한다.
"오팔이, 새해 복 많이 받았어요? 몇 개 받았어요?"라는 할아버지의 질문에 주저 않고 답한다.
"세 개요. 아빠, 엄마, 오빠. 세 개나 받았어요." 자그만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세 개의 복들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팔이를 안아준다.
최애씨와 마주 앉아 잔을 부딪히며 악수를 건넨다.
"작년에도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하시고,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정 멘트 같지만 마음만은 진심 어린 따뜻한 덕담을 나눈다.
"오빠, 올해 성취하고 싶은 일들 불가능해도 질러서 말해봐. 많이 말씀하셔도 됩니다." 소원을 말하라며 지니가 된 듯 이뤄줄 것처럼 표정에는 인심이 가득하다.
"나는 글 쓸 거야. 오빠가 돈 많이 벌어서 출판해 주면 좋겠다." 새침하게 먼저 던져본다. 최애씨는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모르지만 여러 개의 오픈 채팅방을 보고 '작가가 되고 싶은 모임'에 참여 중인 것으로 꽤나 잘못 알고 있다.
"잘 되려면, 웹툰 소설을 써야 돼." 끔찍하게 다정한 남자의 조언에 '응'으로 간단하게 넘겨 본다. 차마 글을 발행하고 있다고는 말을 못 하니 입의 근질거림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오빠는, 주식? 이직? 진급?" 대답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남의 편에게 답답고 급한 사람은 먼저 객관식으로 풀기 시작한다. - 현재 최애씨는 차장을 달고 있다. 실장 자리가 공석일 때 임시 실장을 하기도 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화환도 받았었다. 평소에 일 잘한다고 생각했던 알고 지내던 분을 실장으로 추천하기 전까지 2개월 정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임원과 실장에게 부장 직급을 달라고 했단다. 참으로 당당한 사람이다. 본인 입으로 말하다니. 아무리 타당한 이유를 대며 말해도 내 성격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른 진급해서 퇴사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최애씨와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기업의 변호사였다. 신입으로 입사하여 몇 년간 일하며 한국 회사의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퇴사한다. 미국에서 외국 기업의 변호사로 일하다, 본인의 옛 상사가 사장으로 취임한 소식을 접하고, 한국으로 출장차 머무는 기간에 사장과 미팅을 한다. 본인을 전무 직급으로 사장님 옆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는 전무가 되었다. 그도 역시 타당한 이유와 진지함 플러스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신기했다.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분들을 보며 감사히 많이 배운다. 비록 똑같이 실행은 못할지라도 나와 전혀 다른 이가 있기에 간접 뿌듯함과 든든함이 있을 뿐이다 -
"아니, 100억 벌기." 대답을 들으니 박수가 절로 쳐진다. T와의 대화는 올해도 어려울 예정이다.
"그래, 꼭 이루실 겁니다. 로또 삽시다." 이런 류의 수많은 대화는 이따금 뚝 말이 끊어지고 휙 하고 외면할 상황이지만 나의 빅 데이터를 발동시켜 가뿐하게 새해의 넓은 선의로 그를 예뻐하며 넘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오복이는 로또라는 단어에 꽂혀 아빠에게 부탁한다.
"아빠, 로또 어떻게 하는 거죠? 하고 싶어요."
"번호를 적어주면 아빠가 살게."
로또 설명을 들은 후, 오복이는 갑자기 머리를 싸맨다.
"이건 불가능해요. 너무 어려워요. 어떤 숫자를 써야 할까요?" 수학 문제도 언젠가 저렇게 오래 붙들고 생각할 날이 오겠지.
꿈에서 누가 알려준다는 엄마와 아무거나 찍으라는 아빠의 엉뚱한 조언을 듣고 한참을 고심하는 오복이.
잠들기 전 종이 한 장을 아빠 컴퓨터 앞에 놓는다.
모두에게 365개의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눈 깜짝할 새 또 한 해가 지나가겠지. 조금씩, 날마다, 꾸준히를 잊지 말자.
올해는 열정을 단련하며 넘어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고, 용감하게 나아가자.
글로 인생의 찰나를 붙들어 보자.
될 때까지 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믿고,
내가 믿는 일을 위해 노력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 내것이 된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