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 대구에서 보내온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반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참고로 대구는 준전시 상황입니당~~
코로나가 북상하지 않도록 진지방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오백 명을 넘었다. 누적 인원은 이천삼백서른일곱 명. 여당 수석대변인이 "대구·경북 봉쇄 조치"를 언급하여 사흘째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쪽지는 "이전에 계획서를 만들어 보낸 학교폭력 예방 홍보는 중단하고, 코로나19와 관련된 홍보에 힘써주세요" 하고 공지한 데 대한 답장이었다. 웃는 표정과 물결표를 마주하니 '물정도 모르고 뭘 하다 이제야 지침을 주느냐'라고 핀잔 들을까 봐 조마조마하던 일이 무색했다. 그러나 "진지방어"라는 표현은 전장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라야 쓸 수 있는 것이다. 문장 끝에 찍힌 마침표의 의연함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출근해 인트라넷 메신저를 켜면 밤 사이 도착한 쪽지들이 작업 표시줄을 빼곡히 채운다. 쪽지들은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줄지어 서서 저마다 다른 속도로 깜빡거린다. 흡사 하객이 많은 결혼식에서 사진을 찍는듯하다. 뒤에 온 쪽지가 앞서 자리 잡은 쪽지를 은근하게 밀어대는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사실 쪽지는 하객이 아니라 전날 있었던 코로나19의 공세와 경찰이 그에 맞서 무얼 했는지를 전하는 전령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전면전이다. 각급 경찰관서가 전격 폐쇄되고 직원들이 격리될 경우 어떻게 업무를 처리할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졌다. 하루에만도 지역경찰관서가 몇 개나 폐쇄되었다가 업무를 재개하곤 한다.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수용한 우한 교민 중에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상황이 종결되겠거니 섣불리 헤아린 일도 어느새 까마득하다. 과연 지금 코로나19는 우리 세대가 겪는 전쟁이다.
의료진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경찰은 사람과 싸우고 있다. 소재 확인에 불응하고 동선을 거짓으로 통보해서 지역에 불안감을 더하는 사람. 자가격리 조치를 무시하고 바이러스를 흩뿌리고 다니거나, 금지된 집회를 강행하겠노라고 떼쓰는 사람. 악의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가공해 퍼뜨리는 사람. 있지도 않은 물건을 팔겠다고 하거나 물건을 남몰래 쌓아두며 혼돈을 가중하는 사람들 말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는 의사 리유와 신문기자 랑베르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리유)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랑베르)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리유)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랑베르) 아! 나는 어떤 것이 내 직분인지를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사랑을 택한 것은 정말 잘못일지도 모르겠군요.
(리유) 아닙니다.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_ 2018, 민음사, 알베르 카뮈, <페스트>
랑베르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페스트가 창궐하는 봉쇄된 도시 오랑을 탈출하려고 한다. 그리고 리유가 이끄는 보건대의 활동을 '영웅 놀음'이라고 비난하지만, 위의 대화를 나눈 뒤 보건대에 합류하게 된다.
나는 이 때 랑베르가 연인에 대한 사랑을 유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승적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켰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을 헤쳐나가기에도 공무원이나 의료진이 직분을 완수하는 것보다 보통 사람이 사랑을 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만큼 스스로 지침을 준수하고 내 이웃도 나처럼 온 힘으로 견디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지.
곁의 누군가 기침을 했을 때 찌푸린 표정으로 돌아보거나 조마조마해 하지 않고 스스로를 염려하지도 않으며 빠른 쾌유를 빌어줄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어서 나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