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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맞나요?

한국인이 덴마크 호이스콜레를 만났을때

by 이한나

2015년 1월 도착한 덴마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겨울의 한 가운데 있었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난히도 계속되는 동안 ‘하루 종일 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던 나는 이내 실망감에 휩싸였다.

청년 실업이 최대치를 찍고(물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실업률은 계속 갱신중) 또래들 사이에 ‘탈조선’,'헬조선'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불안한 시기였다. 게다가 전 해인 2014년 4월, 진도 앞 바다에 세월호가 가라앉던 시각, '너는 무얼했냐'며 서로 다투던 시기. 온 국민이 더 깊은 침통함에 빠지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연일 약 올리듯 '덴마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했다. 행복한 나라라니. 로널드 달의 <찰리의 초컬릿 공장>에서 가난한 소년 찰리가 '초컬릿 공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의 느낌이 이랬을까? 호기심을 넘어 질투가 솟았다. 누구나 다 딱 한번 태어나 살다 가는 인생인데, 지옥(a.k.a.Hell Joseon)과 천국(a.k.a.The Happiest nation)이 동시대에 공존하다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사실 원래 그만두려던 참이었다는 것은 안 비밀) 덴마크에 있는 작은 학교, IPC (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국제시민대학)의 봄학기(Spring term)에 등록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행복감이 가을운동회 박터지듯 빵빵 터질 것 같았건만, 초반 한-두달간은 내내 심각한 표정을 유지했다. 난감했다. 돌아가야하나? 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일단 수업이 영 밍숭맹숭하고, 뭔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지도 않은 월급(엉엉)을 3년 가까이 모아 만든 소중한 기회였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비장함이 잔뜩 가미된(비장함은 건강에 해롭다) 20대 후반의 야심있는 여성(?!)이었기에 어떻게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 ‘해야만’ 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나를 울적하게 한 것은 덴마크의 악명높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부풀린 '기대' 때문이었다.

IPC의 Manor House. 100년이 넘게 이 자리에 있었던 건물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태양이 반가워 찍은 사진.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당시 내게는 덴마크가 지구상에서 가장 윤택한 나라이니 만큼 온갖 멀티 장비를 갖춘 번쩍이는 건물에서 최첨단의 교육을 할 것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 내앞에 100년이 얼추 다 되어간다는(IPC는 1921년 개교했다) 오래되고 지붕이 낮은 자그마한 학교 건물이 서 있었다. 그러니 시작도 전에 김이 팍 샐 수 밖에.

2019년 2월. 멋모르고 떠난 덴마크에서 돌아온지 어느덧 꽉 채운 4년이 넘어 가고 있는 이 시점. 잠시 멈추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 사이 북유럽 국가, 특히 덴마크라는 국가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도 많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 (IPC도 이제는 한국인 지원자가 굉장히 많아져 인원제한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곳에 다녀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즐겁게 써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온-오프에 많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흐름 속에 내 이야기도 한토막 슬쩍 흘려보내고자 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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