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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임을

한국의 공교육 교사분들과의 만남

by 이한나

7월경, 이곳 브런치에 올려둔 글을 보신 선생님 한 분의 연락을 받았다.

본업에 바빠 덴마크와 관련한 활동을 잠시 잊고 지냈던지라, 꽤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브런치의 내 글을 읽고 공명해 준 이를 만난 것이 참 반갑고 감사했다. 게다가 브런치에서 날아온 강연요청 메일이 스팸함으로 들어가 있어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연락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덕분에 메일을 받고 며칠이 지나서야 답을 했는데, 다행히 연락이 금방 닿았다. 연락해 주신 선생님은 초등교사로 근무 중인 P선생님이셨다. 하반기에 떠날 덴마크, 독일 교육현장 방문 연수에 앞서 선생님들이 모여 공부를 하시던 차에 이곳에 올려둔 글을 발견하게 되셨다고 했다.


올 초에도 교육청 관계자 분으로부터 강연 섭외 전화를 받았었지만, (브런치의 글을 읽고 전화를 주신 것은 아니었고, 4-5년 전쯤 있었던 포럼에서 나의 짧은 강연을 보신 어떤 교수님이 추천을 했다고 하셨다. 그것도 참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때는 하고 있던 일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이제는 꽤 시간이 지나버린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어 주저되는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만남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엔 단박에 수락을 했다.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고, 3년 전에 했던 이야기와, 지금 내 안에서 나올 이야기가 분명 달라져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몇 주가 흐른 뒤, 드디어 선생님들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며칠간 손을 본 자료들을 담은 랩탑을 가방에 넣고 약속을 한 성수동의 호이(HOE) 공간을 향해 가는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후에 이런 이야기를 하니 나의 여동생은 "역시 언니는 나와 정말 다른 성격이야. 나는 사람들 앞에 설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가 느껴지는데, 언니는 설렌다고 하잖아?"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풀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팬데믹 기간 내내 개인 작업실을 오가며 최소한의 사람들만 마스크를 끼고 만나다 보니,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더 기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동생의 말대로 이런 나의 기질이 강의를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약속 장소였던 성수동 골목에 핀 나팔꽃 봉우리. 곱게 접힌 봉우리 안에 설레임이 가득 고여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선생님들이 모여 각자 사전 조사하고 공부해온 내용들을 열띠게 발표하고 계신 와중이었다. 뒤에서 잠시 지켜보다가 드디어 P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연수를 앞두신 선생님들 모두와 대면할 수 있었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다양한 연령대로 보이는 열여섯 분 정도 되는 인원이 앉아계셨는데, 소속은 같은 서울시교육청이셨지만, 초등, 중등 교사들이 모두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또 담당하고 계신 교과도 다양했다.


2시간을 쉬지 않고 덴마크에서, 정확히는 호이스콜레(HØjskole)에서, 더 자세히는 호이스콜레 중에서 내가 다녔던 IPC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나누었다. 처음 덴마크에 다녀온 직후(2016년)에 했던 강의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많은 부분이 '나의 언어'로 정리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강연 내용을 스스로 버겁게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경험과 과거의 기억들이 이제는 시간이 오래 지나 '유통기한이 지났다'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강연 요청을 받을때마다 나보다 더 최근에 그 문화를 겪었던 사람들을 찾아 강의를 요청하는 편이 상대에게도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꾸준히 덴마크와 관련해 관심을 갖고 오며 숙성된 자료들과 생각들이 꾸준히 잘 무르익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다.


1년간 '연구년'을 갖고 계신 선생님들이셔서 역시 학구적이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겠다는 열린 마음이 느껴졌다. 게다가 조만간 직접 방문할 덴마크에 대한 이야기였던 만큼 몰입도가 엄청났다. 그래서인지 강의를 하면서도 힘이 빠지지 않았고, 집중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었다. 2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강연을 끝낼 즈음엔, 잊지 않고 강의에 대한 피드백을 주셨다. 내가 많은 강의를 해 본 것은 아니지만, 강의의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조금 아쉬웠는지에 대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에 대해 의견들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그런 것에 대해 코멘트 하는 것이 쑥스럽거나, 구태여 그런 피드백까지 줄만큼 여유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배움과 가르침에 대해 오래 실천해 오신 분들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유익한 피드백을 주셨다. 그리고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나도 그 시간들이 정말 기분 좋게 느껴졌다. 어쩜 강의의 고수들을 앞에 두고 힘을 지나치게 주지 않았던 것이 이번 강의가 즐거웠던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 내 마음을 찰떡같이 잘 알아보아 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강연자였던 나의 입장에서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선생님들이 불러 주셨던 노래였다.

강의를 끝내고 곧 연수를 떠날 선생님들이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여쭈었더니, 노래를 한곡 준비하셨다고 했다. 강연 안에도 덴마크 호이스콜레의 중요한 문화중 하나인 '노래하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지라, 더 반가웠다. 선생님들이 불러주신 곡은 <I Danmark er jeg født>. 번역하자면, '나는 덴마크에서 태어났다(I was born in Denmark).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안데르센이 작사가로 올라가 있다. 덴마크의 제2의 국가라고 불릴 만큼 대중적인 노래로, 덴마크의 비공식적인 국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노래라고 한다. 덴마크에 대해 갖고 있는 덴마크 사람들의 자부심과,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정서가 풍부하게 시적으로 녹아 있는 노래이다. 나는 정작, 덴마크에서 덴마크어로 된 노래를 불러본 경험이 많지는 않았는데, 선생님들은 이 노래를 몇 번이고 유튜브에서 듣고 발음을 한국어로 옮겨 악보 아래에 적어두고, 연습을 해오셨다고 했다. 선생님들의 맑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향기처럼 모임공간에 삽시간에 울려 퍼졌다. 선생님들의 노래를 듣자마자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을 박제해 두고 싶을만큼.


사실, 덴마크 호이 스콜레에 다녀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문화'가 한국의 교육현장에도 녹아들어 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이 아주 컸었다. 그래서 당시에 일하던 '오디세이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매일 아침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가졌었다. 몇 년이 흘러, 음악 선생님의 수려한 지도로 열여섯 분의 공교육 교사분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계신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어쩜 그런 그림이 한국에서도 충분히 실현될 수 있고, 어쩌면 이미 실현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꾸는 꿈은 정말 꿈이구나.


지금쯤이면 독일-덴마크를 모두 둘러보고 한국에 도착하셨을 선생님들. 잘 다녀오셨는지. 그리고 열심히 연습해가셨던 <I Danmark er jeg født>를 덴마크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모아 불러보셨는지 궁금하다. 분명 처음 본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덴마크의 교육현장이 선생님들의 교육 여정에 언제, 그리고 어떻게 영감을 가져다주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만만치 않을 교육현장에 다시 뛰어들기에 앞서 충분한 쉼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셨기를 바래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nlj1nNIuN2Q

*덴마크 국영방송에서 방영된, 덴마크 국립 여성 합창단과 Phillip Faber가 함께 부른 버전
이 노래는 2020년 개봉된 덴마크 감독의 영화 '어나더 라운드'영화 속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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