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덴마크 호이스콜레를 만났을 때
사람들이 내게 '그 먼 덴마크까지 가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냐'라고 물을 때,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혜를 배웠다'라고 답하곤 한다. 그에 관련해 내가 다녔던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에서 있었던 아주 사소하지만 이에 관해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학교 내의 큰 강당에서 연극 선생님이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려고 게임의 룰과 방식을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지금 막 친구 한 명이 화장실에 가서 자리를 잠시 비웠으니 조금 있다가 그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게 좋겠다'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모두가 당연하다는 태도로 기다렸고 금세 그 친구가 돌아왔다. 다시 수업이 재개되었다.
'까짓 화장실 간다고 우리가 다 기다려야 해?'
'쉬는 시간에 저 녀석은 대체 뭘 한 거야?'
내 마음속에 이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험 범위도 아니고, 고작 게임 규칙 설명하는 것일 뿐인데도 덴마크인 친구는 잠시 자리를 비운 친구가 설명을 들을 기회를 잃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다. 태연하게 손을 들어 선생님께 그 사실을 전하는 그 친구의 태도에서 선생님이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잠깐만 기다리자고 했다.
이 평범한 장면이 왜 유독 기억에 남느냐는 물음을 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한국에서의 입시경쟁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한창 입시공부에 열을 올리던 18세 무렵의 나는 선생님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주변의 친구가 졸고 있거나 자리에 없으면 외려 남몰래 기뻐했더랬다.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입시를 벗어나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이어지는 취업전쟁은 청년들로 하여금 '친구이기 이전에 경쟁자'라는 계산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다. 뒤떨어지는 사람들을 쉽게 배재한다. 낙오된 사람들의 수긍도 빠른 편이다.
그렇기에 내게 이 순간은 특별하게 여겨졌다. 내 생각엔 단순히 친구를 배려하는 것 이상의 감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얻는 기회만큼 다른 사람도 같은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것, 또한 다른 사람의 기회만큼 나의 기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생기는 감각이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믿고 있을 때 생기는 평화로움이었다.
나의 의견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도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의견이 중요한 만큼 나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덴마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나아가 나의 존엄이 중요한 만큼, 남의 존엄도 중요한 것을 인지하는 것, 남의 존엄만큼 나의 존엄도 중요하다는 것.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위대한 시민’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를 어슴푸레하게나마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처럼 사소한 것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북유럽 국가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다 알게 된 '얀테의 법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태도에 대한 약간의 힌트가 되었다.
You’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 (네가 우리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as good as we are.(네가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smarter than we are.(네가 우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You’re not to convince yourself that you are better than we are.
(네가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you know more than we do.(네가 우리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more important than we are.(네가 우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good at anything.(네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마라)
You’re not to laugh at us.(우리를 비웃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anyone cares about you.(모두가 너를 신경 쓴다고 여기지 마라)
You’re not to think you can teach us anything.(네가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보다 더 특별해야만' , '남보다 나아야 만' 학교 생활을 잘하는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과 '얀테의 법칙'은 정 반대였다. 이후 나의 학교 생활은 비로소 편안해졌다. 더 이상 새우눈으로 비교하고 재고 따지려 하지 않았다. 왜냐면 비밀은 숨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흔해서 어디에나 있었다.
덴마크에서 만났던 학생들은 본인이 어떤 방면에서 다른 이보다 나아야 한다던가, 어서 빨리 진로를 찾지 않으면 도태된다던가 하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보이는 학생이 현저히 적었다. 교사들은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라’고 채찍질 하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저 단 하나, 수업이 일어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와 있으라는 것뿐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눈물 나는 일이기도 했다. 평범함을 공부하는 슬픔이라고 해야 하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저)이 아니라.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