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덴마크 호이스콜레를 만났을 때
기억하는가?
90년대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꼭' 한 권씩 있었던 책.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할머니 댁 전화기 아래에 화석처럼 놓여있던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기억하고 있다. 덴마크에도 이런 존재가 있다. 바로 Song book (Melody book 이라고도 불린다)이다.
대대로 물려오는 Song book 덕택에 덴마크에는 할머니-어머니-딸, 3대가 모여 부를 수 있는 공통의 노래가 여전히 많다. 시나 노래가 잊히지 않고 보존되려면 '널리 그리고 자주' 불려져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리지 않는 노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끝내 생명을 다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기에 덴마크 포크하이스쿨이 갖고 있는 문화 중 가장 핵심적인 문화는 '함께 모여 노래 부르기'다.
노래를 좋아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크하이스쿨답게, 모든 학기에 합창수업이 개설되어있을 뿐 아니라 아침모임을 노래로 연다. 특히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에는 매우 훌륭한 합창 수업이 있는데 교장선생님이신 쇠렌 라운비에르 (Søren Launbjerg)가 그 수업의 숨은 조력자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유명 애니메이션의 성우로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속적으로 뮤지컬이나 연극, 각종 공연 무대에 오르는 '현역' 뮤지션이다. 음악을 너무나 즐기고 사랑하는 분으로, 밤늦게 거실에 모인 우리들을 위해 몇 시간이고 지친 기색 없이 무슨 노래든 유려한 반주를 레드카펫 깔듯 깔아 주시곤 했다. 인간 자동 반주기....
합창 수업은 가창실기 수업하던 때를 떠올리면 안 된다. 음정이 어긋나거나 음치인 자신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전체가 내는 소리의 하모니를 느끼며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울림을 보태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쩐지,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는 좋아졌다. 가창력이 있는 친구가 자진해 손을 들어 솔로 부분을 소화할 때가 있긴 하지만, 특출한 한 명이 주목받거나 특별히 칭찬받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소리가 목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소리를 어떻게 하면 더 나답게, 그리고 제대로 낼 수 있는지 간혹 팁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 고교 시절 음악수업에서 다루곤 했던 이론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전혀 없다. 수업이 시작되면 바로 목을 풀고 새롭게 몇몇 곡을 배운 후, 그 노래를 반복해 성부(알토, 메조,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별로 연습했다. 성량이 크지 않거나 정 자신이 없으면 립싱크도 OK다.
덴마크 사람들의 노래사랑은 연말을 맞이해 학교 밖으로 공연을 다니면서 더욱 크게 체감하게 되었다. 주말이나 방과 후를 이용해 학교가 있는 Helsingør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공연을 하곤 했는데, 노래 부르기는 포크하이스쿨 안에서 만의 문화가 아니라 덴마크 전체에 뿌리 깊게 내려진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마을의 특별한 행사가 열릴 때면 꼭 가곡을 부르는 지역 가수를 불러 음악을 즐겼다. 한 번은 연령대별로 나뉜 노래 부르기 동호회가 한자리에 모여 노래 발표회를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머리가 온통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세련되고 건강한 취미로서 합창이 굉장히 좋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노래를 듣고, 부르며, 커뮤니티가 끈끈해지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내 몸이 악기이니, 악기 구매를 위해 흔히 발생하는 초기 비용도 없다.
나는 봄학기 이후 한 학기를 더 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가을학기에 학교를 찾은 학생들의 적응을 돕고 밤마다 온 캠퍼스를 돌며 방범을 담당하는 학생 조교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들과 스태프들의 정기회의에도 참여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출국 후 1년 뒤인 2016년 1월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 교육은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작은 변화의 흐름을 맞이하고 있던 차였다. 덴마크에서 일 년간 보고 배운 것을 어떻게든 사용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시교육청과 한국의 대안교육현장이 덴마크 교육의 영향을 받아 만든 '오디세이 학교'에서 17세 청소년들을 만나 강사로, 길잡이 교사로 일했다. 오디세이학교는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와는 달리 기숙형 학교는 아니지만 1년간의 '자유학년제'모델로 기존 학교 시스템 속에서 쉼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살리고 싶었던 문화는 바로 '모여서 다 함께 노래하기'였다. 처음에 부딪힌 복병은 다름 아닌, 선곡이었다.
1. 모두가 다 같이 아는 노래
2. 어렵지 않은 노래
3. 합창하기에 걸맞은 노래
4. 가사가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에 어울리는 노래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노래를 찾다 보니 세대를 아울러 다 같이 기쁘게 부를 수 있는 곡의 폭이 굉장히 좁았다. 아이돌 문화에 푹 젖은 우리 학생들이 갑자기 한국의 가곡을 부르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선정해서 부르다 보면 반드시 랩이 나오고, (교사인 내가 같이 부르질 못한다) 영어 가사가 '갑툭튀' 하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노래방처럼 디지털 음원이 나오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다 함께 입을 모아 노래 부르는 시간이 처음에는 영 어색했다. 그럼에도 오디세이에서는 아침에 모여 먼저 노래를 불렀다. 나부터가 IPC에서 매일 아침 모여 노래를 부를 때마다 머리보다 영혼이, 마음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래해본 사람은 안다. 노래는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배꼽에서 시작해 흉골을 지나 마음가를 휘돌아 입 속의 온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노래는 영혼이 하는 일이다. 국적, 인종, 언어, 생김새, 성장환경이 달라도, 같은 멜로디 위에서는 하나가 된다. 악기나, 도구 등 별다른 장치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노래고, 합창이다. 혼자 부르는 것보다 함께 부를 때, 영적인 느낌은 커진다. 각기 다른 톤과 높낮이가 어우러져 각 성부가 조화롭게 섞여 들어갈 때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내 곁의 친구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비일상적인(?!) 경험을 한다.
다음 편에는 노래를 좋아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최애' 작가, Halfdan Rassmusen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