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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몽 Nov 17. 2015

문제적 시간

드디어 정면충돌이다

손끝이 쉴 새 없이 파르르 떨렸다. 입술도 바짝바짝 말랐다. 심장이 사정없이 쿵쿵대고, 불안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던 쓴 뿌리 중 제일 신경 쓰이던 것이었다.


장작 5년 만이다. 5년.

내가 한국에서 일 년 그리고 프랑스에서 사 년, 오 년 동안 온갖 생각과 때때로 찾아오는 악몽에 시달리듯, 그분도 그랬을까. 전화번호를 받은 뒤 많이 생각했다.

아니 사실 사 년 동안 생각했다. 나 그렇게 소심한 사람 아닌데.

일 년은 힘들었다. 이 년째는 상심했고, 삼 년째는 분노하고 서러웠다. 그리고 사 년 오 년이 되니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게 되었다.


참 고마운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까울 때나 멀어졌을 때나 소통했을 때나 않았을 때나 분명히 나의 이십 대의 많은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것도 분명했을 것이다.

‘여보세요’

당연히 내 번호를 모르니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으셨다. 인사를 드렸다.

‘여보세요, 저에요 아무개요.’

그분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다. 나인 줄 알면서도 물으셨던 것 같다. 왠지 적잖이 당황하셨지만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받으셨던 것 같다.

‘무슨 아무개요? 성이 뭔가요?’하고 말이다


하하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옛날 같으면 참 어울리지 않는 말들로 어색한 안부 인사를 나눴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척(처럼 들렸다. 아니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하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래 한번 연락 오나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도 내 느낌일 수 있겠지만) 나도 긴장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또한 미세한 긴장의 떨림이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목이 많이 멨다. 또랑또랑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런 목소리를 또 눈치챘는지 목소리가 변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미술관에서 근무 중이라 그렇다고 말을 돌렸다.
뭘까. 눈치를 채셨을까. 풀죽고 죄송한 내 목소리를 알아채셨을까.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이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많이 죄송했다. 사과드리고 싶었다. 그런 다음에는 섭섭했다. 원망도 많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 또한 그랬다. 어떻게 나한테 그래요? 하고 묻고 싶었다. 그분도 사람인 건 알지만 그래도 사랑을 가르치고 용서를 설교하면서 나는 어찌 그리 오래도록 차단했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프랑스로 돌아오기 , 어느 카페에서 그분을 뵈었다.

에어컨 바람 탓에 온몸이 싸늘했지만 식은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로 어색하고 뻘쭘한 시간이었다. 나는 형식적인 말 외에는 입이 터지지 않았고, 그분은 어색함을 면하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뱉어내셨다.

옛날에 그게 뭐시라고. 하면서 서로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또 다시

나는 이런 저런 사건들로 실망하며

이 관계는 정리가 맞다 판단했다

썩고 있던 쓴 뿌리 하나를 뽑았다. 많이 가벼워졌다.

사람들마다 쓴 뿌리가 있다. 하나가 되었든 열이 되었든 모든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다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중 제일 중요한 건 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 시점은 아무도 모른다. 일 년이 될지 십 년이 될지 혹은 그 이상이 될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는 반드시 온다. 그때까지 그 뿌리를 잡고 견딜 것인가 잘라낼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여러 번의 실수와 경험 끝에 오는 때의 해결이 주는 쾌감을 누릴 때까지 견뎌보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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