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하루가 마감되고, 하루가 시작된다.
이렇게 살아지는 게 기적 같다. '어떻게 살아야지' 보다 '어떻게 먹고 살지'가 여전히 훨씬 크다. 삶을 계획하고, '그래, 이제 시작해보자'라는 느낌인데 이미 내 삶의 시간은 오십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간다. 스타트 선에서 출발을 준비하는 마음인데, 이미 반을 넘어 도착점을 향하고 있으니 살짝 허탈하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살아지고 있다.
생각의 흐름대로, '이것이 주신 마음이다'라며 순종하듯 길을 열어간다. 그나마 그 길을 택한 게 다행이다. 돌아보면 내 계획대로 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매 순간 현명하게 판단하고 싶어도 싶지 않다. 내 모습이 내 생각과 달리 비쳐질 때도 많았다. 그래도 그냥 봐 줄 만 하다.
지금, 그렇게, 살아지고 있다.
오십이 되었을 때 나를 위한 선물을 했다. '그래, 20년 가까이 애 썼는데 오직 나 만을 위한 선물 하나는 해도 되잖아?' 그렇게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골프를 시작했다. 지금도 잔디를 밟을 때면 항상 두 생각이 교차한다.
'이래도 되나?'
'그래도 될만큼 살고 있구나. 참 다행이다'
골프는 숙제 같다.
투자한 시간만큼 결과가 있다. 그리고, 시간을 투자했다고 결과가 항상 좋지도 않다. 매 번 새롭고, 매 번 다르다. 어쩌다 좀 좋다고 교만해지면 금새 다음 결과가 다르다. 프로선수들이 하루 종일 훈련해도 뜻 대로 안되는데 어쩌다 한번 연습장 가는 수준에 뜻 대로 되면 그게 이상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숙제가 더 많아진다. 그래도 하나씩 깨닫고, 내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 인생 사는 것이랑 비슷하다.
'부캐 있어요?' 누가 묻는다.
부캐, 부캐릭터, secondary character. 본래의 나(본캐, 본캐릭터)와 구분되는 또 다른 정체성, 역할, 페르소나. 게임에서 쓰이던 말이 일상 용어가 되었다.
직장에서 팀장이 퇴근 후에 골프 인플루언서를 하거나, 회사 대표가 동시에 커피 브랜드 크리에이터가 되기도 한다. 유재석씨가 트로트 가수 유산슬, 힙합 프로듀서 싹쓰리가 된 것 처럼 본캐로는 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를 부캐로 한다. 이젠 본업 하나로는 채우기 힘든 시절이 되었나 보다.
구지 생각해보니 나도 부캐가 4 개다. 글 쓰는 '차향노트', 본캐가 되었으면 하는 나의 부캐다. 시절에 따라 본캐는 달라지리라 싶다. 생각이 이끄는 대로 밀어내지 않고, 시간에 충실하며 그렇게 가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본캐, 부캐가 섞여 나름 기특한 모습으로 채워지겠지..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아지고 있다.
기적 같다.
삶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