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줄 치는 CEO의 독서노트 : UnderMark ]
당신이 옳다
: 정혜신, 해냄
Key Word
: 공감
"금명아, 잘 할 수 있지? 수 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알지? 아빠 여기 있어. 그러니까 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너 하고 싶은대로. 아빠 맨날 여기 있어. 알지?"
넷플릭스 '폭삭 속았수다'.
금명이의 결혼식에서 아빠가 딸에게 건넨 말이다. 결혼식 신부 입장 전에 이런 말 한다고 울고불고 했지만, 딸은 알고 있다. 자신의 뒤에는 언제나 든든한, 언제나 자기 편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절박하고 힘든 순간에 내린 결정을 "너가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거야." 라고 공감하고 지지해 줌으로써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결정적인 위로다. (p14). 이런 마음 치유 방법이 저자 정혜신 박사의 '적정심리학'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치유자. '일상적 고통은 전문 치료가 아니라, 안전한 연결과 공감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심리치유 패러다임을 제안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되지." (p10)
'당신이 옳다'는 말은 현실적 수준의 잘잘못이 아닌 더 근원적 차원에서의 명제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p49)
아이들 어릴 적에 '거절감'이라는 단어에 깊숙이 빠진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한 번, 두 번 거절 당하다 보면 아예 무엇이든 시도부터 포기할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어릴 적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웠다. 아이들 인생의 밑그림에 '거절감'을 두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깨달음이 있어줘서 아이들의 삶에 큰 피해를 주진 않았구나 싶다. 다행이다.
그랜드 피아노를 혼자서 들어올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철옹성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정확한 한 지점도 그랜드 피아노처럼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알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지점이 바로 한 개별적 존재로서 그 사람의 고유한 '자기'다. (p46)
아이를 키우면 어릴 때는 다 천재 같아 보인다. 옹알거리다가 "아빠, 엄빠, 맘마"만 제대로 발음해도 너무 행복하다. 기어다니다가 한 발짝 걷기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쁘다. 그런 행복과 만족은 아이가 커 갈수록 부족한 면만 보이게 된다. 비교할 대상이 많아져가기 때문인가? 어느 순간 아이들도 안다. 부모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 지. 아이들이 마음 다치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
실력이나 재능이 뛰어나지 않고 비상한 머리, 출중한 외모가 없어도 그것과 상관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사람은 살 수 있다. 생존의 최소 조건이다. (p93)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좌절은 이해할 수 있지만 꿈을 이룬 사람의 좌절은 도대체 무엇일까. 꿈을 이뤄도 좌절하고 못 이뤄도 좌절을 피할 수 없다면 꿈의 실현 여부와 좌절은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p36)
얼마 전 친한 후배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난 지 20년이 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인데 전혀 몰랐다. 드러나지 않은 고통들이 주위에 많은 듯 하다. 하긴, 나에게 "대표님은 정말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는 분 같아요. 부러워요. 뭐 없어요? 문제 같은 거 있으면 좀 이야기 해봐요"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말 하기 전엔 모르지. 뭐든.. 누구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 중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힘이 '공감'이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이다. (p116)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당신'이 궁금하다고 '그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공감적 대화의 과녁은 언제나 '존재 자체'다. (p133)
우울은 병이 아니다. 그냥 우리 삶의 한 조각이다. (p85)
저자 정혜신은 세월호 등 수십 년 동안 사회적 트라우마 현장에서 활동하며, 공감의 힘이 얼마나 효과적인 치료법인 지 깨달았다고 한다. 공감을 통한 마음 치유. 공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나 지지를 통해 그 사람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렇다. 스크래치 난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 준 것은 결국 나에게 건네진 진정 어린 공감과 응원이었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p59)
결론적으로 해줄 말이 별로 필요치 않다. 그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 존재에 주목하고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존재를 그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p107)
나이 만큼이나 관계로 인한 상처가 다양하다. 그냥 응원의 말 한 마디면 충분할 터인데 주저리 주저리 감을 놓고, 배를 놓는다. 나를 밀어냈으면서도 왜 멀어졌느냐고 되레 묻는다. 내 맘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 관계를 걸러내는 기준이 많아져가는 것이 아무래도 혹여나 받을 상처에 미리 연고를 바르는 것 같다.
'당신이 옳다'는 이 짧은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아마도 나는 '무조건적인 지지'가 필요한가 보다. 여전히.
한 줄 평?
그 '내 편'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