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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Apr 01. 2021

시립미술관의 마지막 티타임

도슨트 수업 첫날, 정동 시립미술관 카페 창가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지고 있었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나는 커피 대신 차를 주문했다. 유산 후 찾아온 두통 때문에 카페인을 끊어볼 참이었다. 카페인이 없는 음료를 찾아내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M이 떠올랐다. 만성 두통 때문에 커피를 마음껏 못 마시던 M은 카운터 앞에서 늘 마지막까지 메뉴를 골랐었다. M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었다.

어느 여름 밤, 우리는 한강 유람선을 타러 갔다. 승선 줄 옆에는 작은 종루가 하나 서 있었다. “저거 뭐야 진짜 종인가?” “에이, 그냥 항구 분위기 내려고 세워 둔 거겠지.” M과 내가 속닥거리는데 어느새 S언니가 종루로 다가가 큰소리로 종을 쳐댔다. 쨍!, 쨍! 의외로 큰 소리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부끄러워진 M과 나는 언니를 타박했다.

“니들 저 종 진짜 울리나 안 울리나 궁금하지 않았어? 지금 안 해보면 평생 모를거잖아.”

언니의 뻔뻔함에 우리는 다 같이 깔깔거렸다.

우리는 대학원 진학을 위한 영문학 스터디에서 처음 만났다. 나보다 네 살 많았던 언니는 ‘영민’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명료하고도 문학적으로 작품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M은 나와 동갑이었다. 허리통증으로 발레를 접고 영문학도가 된 그녀는 고집이 셌지만 따뜻한 아이였다. 다른 취향, 다른 성격에도 우리 셋은 금세 친해졌다. ‘미녀삼총사’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모임의 별명도 만들었다.

‘미삼클럽’

미삼클럽은 일요일마다 남산도서관에서 만났다. 미삼을 만날 때면 가방에 굽 없는 여벌신발을 꼭 챙겼다. 오전엔 공부, 오후엔 미술관, 맛집, 카페, 공원을 전전했다. 일주일치 수다를 떨고 각자의 집으로 가는 막차를 탈 때면 모두 목이 쉬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음 일요일에 해보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다. 누구는 비엔나미술전을 보고 싶었고, 누구는 딘타이펑의 샤롱바우가 먹고 싶었고, 누구는 남산의 케이블카가 타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늘 서로의 미션이 마음에 들었다.

볕이 뜨거운 초가을이었다. 언니가 느닷없이 간송미술관에 가자고 했다. 간송미술관 앞 긴 줄은 한성대역근처까지 늘어져있었다.

“어우, 언니 줄 좀봐. 다음에 다시 오면 안돼?”

언니는 단호했다.

“ 간송미술관은 일 년에 딱 두 번 열려. 맘먹었을 때 아니면 못가.”

그리고 무심히 중얼거렸다.

“우리에게 이런 좋은 시간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건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감히 더 묻지 못했다. 몇 번의 가을과 겨울이 지났다. 각자 원하던 대학원에 진학하고,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도 미삼클럽은 건재했다. 언니의 말은 틀렸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되뇌이곤 했다.

미삼클럽이 10년째 되던 해 봄이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M은 동생과 함께 학원 사업을 시작했다. 언니는 평생 다니던 직장을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서로의 새 출발을 격려하는 것도 잠시였다.

나는 임신, 퇴직, 유산을 했다. M은 고질적인 두통과 허리통증, 동생과의 성격차이, 사업부진으로 힘들어했다. S언니는 통화조차 힘들 만큼 괴팍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미삼의 마지막 일요회동이 겨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화기 너머로 M이 말했다.

“ 언니 남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었어. 언니가 응급실에 실려가 일주일만에 퇴원했었다더라. 무슨 병명이었는지는 말 안 해주고, 그냥 많이 회복되어서 나왔대. 혹시 언니가 우리에게만 속 얘기를 했나 싶어 언니 몰래 전화 해 본 거래. 그 동생도 언니가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는 몰랐었대. 그래서 아예 남동생네가 언니네 집 근처로 이사 와서 언니를 돌보기로 했대... 너도 얼마 전에 언니랑 통화해봤지? 교수가 될거라고도 하고, 곧 결혼한다고도 하고. 자꾸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뭐라 답해야할지 모르겠더라.”

한숨이 오갔다. 조만간 보자. 일 정리 되는대로. 우리답지 않은 빈말이 오갔다. 통화가 끝나고 한참을 시립미술관창가에 앉아 있었다. M도, 언니도 없는, 미삼의 마지막 티타임이었다. 그 이후로 M은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해 겨울, 나는 셋이 깔깔대며 걷던 정동길을 혼자 걸었다. 여전히 내 등 뒤로 무성한 여름나무가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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