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베티 Mar 29. 2021

세상에 하나뿐인 진짜 이야기


“엄마는 어릴 때 어땠어?”


써니가 조른다.


어릴 때 좋아하던 과자는 뭐야? 어릴 때 누구랑 친했어? 어디서 살았어? 뭘하고 놀았어?



아이는 내 기억의 작은 틈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려는듯 묻고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작년 여름 내 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기억 못하는 빈약한 기억력의 이야기는 반은 되는대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토막나 있어 이야기의 곡선을 그려보지도 못하고 시시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나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나를 무릎에 앉혀두고 책을 읽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야기만큼은 그 누구 못지 않게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권도 나올꺼다.”



9남매 차녀로 태어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녀 노릇을 한 것이 아홉 살. 연년생으로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욕창이 난 일, 나물을 캐어다가 죽을 끓여 온 가족을 먹이려고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이무기를 만난 일, 아버지의 임종시까지 탕약을 달인 이야기만도 이미 한 권은 너끈히 빠지고도 남을 분량이다.



어린 내가 듣기에 상큼할리 없는 ‘라떼는~’ 이야기가 기억 속에 흥미진진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엄마의 화술 덕분이다. 아이가 듣기에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이고 무서운 이야기들도 엄마의 입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이야기들을 어쩌면 그렇게 여과없이 들려주었는지, 또 나는 무슨생각을 하며 받아들인건지 신기하기만하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이를 작은 어른으로 보고 ‘어차피 알게 될 이야기’라 하여 끔찍하고 잔인한 동화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도 우리엄마처럼 이야기를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 팩트에 충실하게 들려준 것일지는 모른다.



엄마 무서운 이야기 들려줘~라고 하면.



“귀신은 진짜로 있어. 내가 봤다니까.”


엄마는 그렇게 운을 뗀다.



“어휴 말을 하면서도 머리가 하늘로 솟는다.”


과한 리액션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때는 너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던 윤사월 무렵이었을 거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심난해서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지. 한 날은 억지로 눈을 붙였는데 할머니가 있는 안방에서 앓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나는 할머니가 어디가 아프신가 싶어 걱정을 하는데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지. 덜컥 겁이 났어. 할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마저 죽으면 어린 동생들은 어떻게 해? 그때 막내는 아직 젖도 안 뗀 돌쟁이였단 말이지. 나는 옆에서 자는 큰 삼촌을 깨웠어.



‘오빠, 엄마가 왜 저래. 어디 아픈가 봐.’



큰 삼촌은 잠결에 부스스하게 눈을 떠서는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더니 씩 웃으면서 ‘그런 게 있어. 잠이나 자라.’ 하는게 아니겠어? 나는 너무 무서웠지만 할머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 일어나나 보려고 용기를 내어 안방을 들여다봤지. 근데 글쎄 왠 도둑놈같은게 할머니를 올라타고 있는거야. 저놈을 죽일까, 어쩔까.. 할머니 숨이 꼴까닥 넘어갔나보다 싶어 심장이 벌렁 벌렁하는데, 그 놈이 내려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할머니가 신이 나서 웃는거야. 할머니가 살아난건 다행이었지만 저 도둑놈은 도대체 무슨관계이고 할머니는 왜 내쫓지 않는건지 이상했지.



목소리를 듣자 하니, 옆 동네 머슴 이씨였어. 그런데 이놈 하는 이야기가 가관이야.


‘애들이 너무 많으니 어디 머슴으로 줘버리고 그 품삯이나 받어~. 그러면 내가 살림을 합칠께.’ 이러는 게 아니겠어? 할머니는 또 그러마.. 하고 약속을 하는거야. 진짜 다음날 삼촌을 머슴으로 보리 두말 받고 팔아버렸지. 어휴 지금 생각하면 내가 분통이 터져 갖고.



아뭏튼 밤마다 그 이씨란 놈은 우리집을 찾아왔고 할머니는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했지. 그러다가 그 일이 터진거야....



이씨란 놈이 돼지 좀 잡아달라고 한거지. ”



“가난했다더니 돼지를 다 길렀어?”



“글세. 그 돼지가 그냥 돼지가 아니야.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내가 ‘아버지 저도 다른 친구들처럼 치마저고리가 입고 싶어요.’ 하니까 장에서 사다 주신 새끼돼지야. ‘열심히 여물을 먹이면 추석무렵에 장에 팔아다가 치마저고리를 사주마.’ 할아버지가 약속하신 내 돼지였다고. 그런데 여물이 어딨어. 사람도 먹을 게 없는데. 그러다 보니 돼지도 크지도 못해서 지금 복실이만 했을 거야. 그래도 나는 치마저고리 입을 생각에 열심히 풀을 뜯어다가 쑤어먹였지. 그런데 그 이씨란놈이 그 돼지를 잡아달라고 한 거지~! 할머니는 또 그놈 말만 듣고 크지도 않은 돼지를 잡는다고 가마에 불을 땠지.



여물지도 않은 보리로 죽을 쒀먹던 시절이었으니 오죽 먹을게 없었겠어. 어린 것들은 늘 배가 고팠지. 그런데 돼지 냄새가 풍기니까 다들 주루룩 모여서 그 이씨놈이 돼지살 한점까지 다 뜯어먹을때까지 침만 흘리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더란 말이지. 그러니 그 놈이 ‘이 새끼들아 뭘봐. 저리가.’하면서 욕지거리를 하더라.



그때였어~!!



갑자기 할머니가 눈이 빨개지면서 개거품을 물고 푹 쓰러지는거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사지가 마비가 된거지. 사람도 못 알아보고 그냥 푹 자빠지더라. 큰 삼촌도 없고 애들은 울고 있고 이씨놈은 도망가버리고. 나는 어째야하나 발을 동동구르다가 갑자기 그 일본 점쟁이 여자가 생각이 난 거야.”



“헐... 그때 엄마가 몇 살이었는데?”



“여덟이나 아홉 살 됐을 때지.”



“그런데 용한 점쟁이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어?”



“그 점쟁이가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는걸 딱 맞췄거든. 우리는 그여자를 일본여자라고 불렀는데. 그냥 사람만 보면 딱 맞춰. 뭐 점을 보고 자시고도 없고 쌀 세톨 쭉 뿌리면 점괘가 바로 나와. 와. 그 점쟁이 지금 어디 사는지...진짜 신통하기도하지. 그 점쟁이가 말이야 할아버지더러 이번 달에는 절대로 초상집을 가면 안 된다고 했거든? 그런데 할아버지는 미신같은 거 안 믿으니까 까 먹고 그달에 초상집을 갔더랬지.



걸어갔던 양반이 업혀 들어오는데 아~! 점쟁이 말이 그제서야 생각나는거야. 에휴. 그때 가지 말랐을 때 가지 말았어야했는데. 할아버지는 초상집 다녀온 뒤 삼 일만에 돌아가셨어. 그 정도니 뭐 점쟁이 말을 안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 점쟁이는 용포라고, 지금으로 치면 여기서 신사동 정도 되는 거리에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쓰러지는걸 보니 앞 뒤 볼 것 없이 점쟁이한테로 내달리게 되더라고.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점쟁이를 붙들고 울면서 말했지.



‘아줌마, 우리 엄마 어떡해요. 지금 숨이 넘어가고 사람도 못 알아봐요, 살려주세요. ’


했더니 점쟁이가 쌀을 또로록 굴리지 않겠어?



그러더니


‘돼지 잡았구나?’


하며 깔깔 거리고 웃더라고.



‘걱정마라. 너네 아버지가 니 엄마 하는 짓이 괘씸해서 벌주려고 하는 거니까.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아버지 산소가 있는 쪽에 물을 떠놓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라. 아버지, 어린 우리를 봐서라도 한 번만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라고 빌어야 한다.’



나는 또 숨을 헐떡이며 죽어라하고 집에 왔지. 점쟁이 말을 듣고 너네 할아버지 산소를 지나오는데 귀신이 정말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우리 아버지라지만 머리가 하늘로 솟더라고.



집에 왔더니 온 동네사람들이 우리 집앞에서 구경을 하면서 서 있더란 말이지. 돼지 잡느라고 불은 뜨끈뜨끈하게 때워둔 방에 할머니를 뉘이고 옆집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할머니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어. 그런데도 할머니는 뻣뻣하게 굳어서 누워있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거야.


나는 점쟁이가 시킨대로 산소쪽에 절을 했어. ‘아버지, 저희를 봐서라도 제발 엄마 좀 살려주세요.’ 그렇게 절을 계속하고 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걸어나오더라~! ”



“와. 할머니가 일어나서 뭐라고 해? 귀신봤대?”



“ ‘왜들 모여있어? 무슨 일이 났어?’하더라고. 아무일도 없었단 듯이 말이야. ”



“에이. 그건 너무했다. 잘못한 건 할머니인데 놀란 건 엄마가 더 놀란 거 아니야. ”



“글세 말이야. 나만 죽을 고생한거지. ”



“그래도 덕분에 할머니도 머슴놈하고도 끝났겠네?”



“끝나긴 뭘 끝나~! 그러고도 정신 못차려서 보리 두말에 다른 삼촌까지 팔아먹었는데. 아 글쎄 이 놈이 막판에는 우리 이불 한쪼가리 있는거 까지 훔쳐서 달아났어. 얼마나 없는 놈이면. 니네 할머니도 그렇다. 이왕 새로 시집을 갈 꺼면 뭐 돈이라도 좀 많은 놈이랑 나던지. 불알 두 쪽 뿐인 그런 놈하고 눈이 맞을 꺼는 또 뭐야. 결국 그 일로 동네에 소문이 나서 우리는 다 쫓겨나서 딴 동네로 이사갔잖아.”




희한하게도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때면 침통하거나 억울하기는커녕 흥을 타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세기도 더 된 기억이라 슬픔이나 억울함도 모두 증발 되어서인가. 아니면 몇키로가 되는 거리도 한달음에 내달리던 소녀적 심장박동이 더 생생해서일까. 작고 남루한 9살 소녀가 귀신들린 엄마를 살리려고 몇 개의 산을 넘는 이야기가 마냥 즐거울리만은 없건만 엄마를 거치면 그렇게 무섭고도 슬프고도 재미난 이야기가 된다. 작고 단단하게 입을 악문채로 깊은 산을 달리고 또 달렸을 어린 엄마의 모습이 본 것처럼 그려진다.



종종 써니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하면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건 ‘진짜’ 있었던 이야긴데... 라고 운을 떼면서.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그애를 뽕키라고 불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