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애를 뽕키라고 불렀다. 뽕키가 없을때 어른들은 작은 목소리로 ‘튀기’라고도 했다. 반면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문맥없이 큰 소리로 ‘야 이 튀기야!’라고 놀렸다. 그러면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던 뽕키는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튀기’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아이는 어른들에게 혼이나 울었다.
뽕키의 원래 이름은 가영이였다. 촌스러운 이름이 넘쳐나던 시절, 가영이란 이름은 만화주인공 같았다. 이름만 예쁜 게 아니었다. 금빛이 도는 밝은 갈색머리에 우유같은 뽀얀 살결에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뽕키는 <소공녀>세라가 갖고 놀던 에밀리 인형 같았다.
우리가 살던 미로 같은 이태원 시장 뒷골목은 한 칸 건너 한 집에 양색시가 살았다. 혼혈아를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옆집 에릭이네도, 정희언니네도 다 그런 집이었다. 뽕키와 나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그애는 자주 우리 집에 와 있었고 나도 가끔 그애네 집에 놀러가곤 했다.
온전한 것 제대로 없는 살림을 자랑하던 시절, 뽕키네집은 미군부대에서 빼온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어린 내 눈에도 사뭇 이국적이었다. 문자 그대로 집에서 나는 냄새부터 달랐다. 어른들은 그것을 양키 냄새라고 했다.
사실 뽕키네 집을 좋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집에는 엄청 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판 <캔디 캔디> 일러스트 책이었다!
그 책은 외계에서 떨어진 물건처럼 놀랍다못해 기묘했다. 일단 캔디가 컬러 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5살때부터 아빠랑 만화방 출입을 한 나는 <캔디캔디>로 글자를 뗄 정도로 좋아했다. 만화방을 데려가다 지친 아빠는 아예 그 만화방에서 그 책을 사주셨다. 덕분에 내 캔디는 여러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겉표지를 마분지를 덧대었고 캔디 캔디 1 이라고 만화가게 주인아저씨가 파란색 싸인펜으로 꾹꾹 눌러쓴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캔디책은 다 그렇게 너덜너덜한 줄 알았다.
그런데 뽕키네집 캔디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던 데다가 겉장은 근사한 꼬부랑 글씨로 장식되어 있었다. 테리우스와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기도 했다. 캔디가 컬러로 있다는 것, 이렇게 멀쩡할 수도 있다는 것에 배신감과 경외심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여기 있었다.
정작 뽕키는 캔디 이야기를 읽은 적도 없었다. 그런 애가 그걸 갖고 있다는 건 뭔가 불공평했다. 이건 내 책이어야하는데~! 어린시절이 진즉에 끝난 지금도 그 갖고 싶다는 욕망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뽕키도 내 눈에서 탐욕을 읽어냈는지, 자랑용으로 꺼낸건지, 늘 잠깐 맛보기만 해주고 금세 어디론가 감춰 버렸다.
어느날은 뽕키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이거 봐라~!!”
하얀 그리스식 지중해풍의 건물 앞에 파아란 수영장이 있었다. 동화 속에서나 보던 집 같았다.
“우리 아빠네 미국 집이다!"
"너네 아빠 미국에 있어?"
"어. 이거봐. 아빠네 집에 수영장도 있대!"
"....왜?"
‘우와’라는 말대신 ‘왜’라는 말이 튀어나온 건 너무나 당연했다. 공동수도를 쓰는 집도 수두룩하던 시절이었다. 집에 수영장이 왜 있어야 하지? 자랑을 하는 뽕키도 그 부분은 설명하기 힘들었나보다. 그건 <캔디 캔디> 일러스트보다도 더 믿겨지지 않았다.
‘뽕키 아빠는 큰 부자임이 틀림없다.’
9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집에는 수영장만 있는 게 아니었다.
”미국집에는 아빠랑 엄마, 언니랑 오빠도 살고 있대.“
“엄마? 너네 엄마는 여기 있잖아. 그럼 그 사람은 새엄마야?”
“아니, 새엄마는 아니고 그냥 다른 엄마야.”
“너는 엄마가 둘이야, 그럼?”
“몰라. 암튼 곧 미국으로 간대.”
“그럼 너네 엄마도 같이 가?”
“엄마는 나중에 온대.”
미국이 어디 붙어 있는 동네인지도 몰랐지만 사진 속 수영장보다 더 작은 지금의 집을 벗어나 저택으로 가는 뽕키는 <캔디 캔디>일러스트집처럼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미 다 갖고 있는 아이였다.
‘우리 엄마도 양색시였으면...’
엄마는 종종 나를 붙들어 놓고 젊은 과부가 결혼하지 않은 동생 다섯과 늙은 노부모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 거기에 너까지 얹어 키우는 것에 대한 공치사를 했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했다.
“너, 옆집 정희엄마가 나더러 일본에 일하러 가자고 했는데 안 갔어. 가면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데 내가 너 나중에 결혼할 때 남편쪽에서 뭐라 그럴까봐 너 때매 안 간거야.”
고맙게 생각하란 뜻이었다. 그 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 그랬으면 일본도 맘대로 가보고 좋았을 텐데 왜 안 갔지? 그냥 가지...’하는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묻지도 않았다. 물었어도 대답해주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물어도 대답이 없는 질문들이 수두룩했다. 그 나이는 원래 그런 나이라지만 이태원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안개처럼 막연한 질문들이 늘 공기중에 떠다녔다.
‘너네 아빠는 어딨어?’,‘너는 왜 얼굴이 까맣고 머리는 빠글빠글해?’,‘ 양색시는 뭐하는 사람이야?’ ‘튀기는 무슨 뜻이야?’
한 날은 뽕키랑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놀러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먼 곳도 아닌데 난생 처음 보는 건물들에, 알 수 없는 글자들과 말로 가득 하다보니 멀게 느껴졌던 것같다. 미군부대라는 곳이었다. 미국물건을 수입하던 뽕키엄마를 따라 갔던 것 같다. 난생처음 미국 땅을 밟아본 날이었다.
“저 아저씨 너네 아빠야?”
“아니. 우리 아빤 미국에 있다니까.”
“그럼 저 아저씨는 누구야?”
뽕키가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미 우리들의 혼을 쏙 빼놓을만한 것들이 아주 많았기때문이다. 그 안에는 극장도 있었다. 뽕키엄마는 우리에게 <슈퍼맨2>를 보여주었다. 슈퍼맨이 로이스와의 사랑을 위해 정체를 밝히고 인간이 된다는 설정이었다. 자막 한 줄 없고 영어 한마디도 모르던 우리가 그 영화를 두 시간동안 다 이해하고 보았다. 얼마나 영화를 집중해서 봤는지 뽕키엄마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도 몰랐다. 애초에 극장에는 우리 둘만 들어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극장을 나온 우리는 풀밭이 무성하고 시내가 흐르는 수풀에서 신나게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놀았다. 해가 뉘엿 뉘엿 져가고 있을 무렵이 되어서야 이 넓은 수풀에서 어른도 없이 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집에 어떻게 가지? 여기는 어디야? 라는 생각에 울어제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군복을 입은 어떤 미국 사람이 슈퍼맨처럼 나타났다. 엄청난 정글인 줄 알았는데 몇 발자국 나서자 우리가 사는 그 동네였다. 극장은 오래전에 나섰는데 여전히 극장안에 있다 나온 것 같았다.
그 해 뽕키는 정말 미국으로 갔다. 잘 살고 있다는 편지도 보내왔다. 뽕키엄마는 이태원 단칸방에 남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스레 “뽕키엄마는 언제 미국에 가?”라는 질문은 묻혀졌다. 내가 10살 무렵, 이태원 미군기지가 동두천으로 옮기면서 우리도 이태원을 떠나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뽕키를 떠올린 건 써니가 나의 써니만한 시절 얘기를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아주 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이미지처럼 남아 있어 긴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뽕키네 집에 가서 본 <캔디 캔디>이야기며, 수영장이 딸린 미국 아빠의 집은 살을 붙이면 제법 쓸만한 이야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뽕키라는 이름은 아이가 듣기에도 재미있었다.
“엄마, 지금 뽕키도 아줌마가 되었겠네?”
“그럼 엄마랑 동갑이니까. 그런데 또 모르지 결혼을 했을지 안 했을지. 아뭏튼 미국에 살고 있겠지. ”
불현 듯 그래서 뽕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엄마랑 전화통화를 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엄마, 뽕키엄마 소식 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 어딘가에 살고 있겠지. 갑자기 왜?”
“그냥.. 뽕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미국 아빠한테 간다고 했는데. ”
엄마는 픽 콧방귀를 뀌었다.
“걔가 아빠가 어딨니? 지네엄마도 애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데.”
“엄마, 뽕키가 아빠가 왜 없어? 걔네 집에 갔을 때 사진도 보여주고 막 수영장도 있고 그랬단 말이야~! 거기가면 언니랑 오빠도 있다던데?”
“걔 그거.., 팔려간거야.”
“... 무슨 애를 팔아. 뭔소리야. ”
“지 엄마가 미국에 돈 받고 입양 보냈다고.”
“... 나 걔네 아빠네집 사진도 봤다니까?! ”
“아 글쎄, 걔는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니까. 걔네 엄마가 애가 점점 커가니까 단칸방에 남자를 끌어들이기 그러니까 미국으로 보내버린거야.”
아...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늘 우리집에 와 있던 것도 방을 비워주기 위해서였다. 그제서야 미국에 가면 다른 엄마가 있다는 것도, 뽕키 엄마가 왜 같이 못 간 것인지도, 모두가 퍼즐처럼 맞춰졌다. 한 번 열린 판도라의 상자는 닫힐 줄 몰랐다.
“너. 걔 별명이 왜 뽕키인지 알아? 걔네 엄마가 뽕 해서 그런거야.”
그 시절, 누구도 답해주지 않던, 안개처럼 막연하던 공기는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아찔하던 세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던 결계였다. 뽕키, 아니 가영이가 결계를 벗어나 9살 자기 인생을 치열하게 살고 있었을 순간부터 어제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결계안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잘생긴 미국 아빠도, 넓은 수영장이 딸린 대 저택도 이제는 이야기속에서만 살아남았다. <캔디캔디>일러스트집처럼 기묘하고도 낯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