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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Jul 02. 2021

수면대공황이 남긴 의미

8. 공황은 삶의 애착의 반증이다.


정말 오랜만에 수면공황이 크게 왔다. 곤히 잠들었다 열 한시쯤 되었을까. 눈이 번쩍 떠지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눈물이 날 것처럼 두려웠다. 

“괜찮아. 나는 안 죽어. 아무렇지도 않아. 괜찮아. 늘 그렇듯 수면공황이야. 처음만큼 심하지 않아. ” 

일어나서 남편을 깨우면 공황이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남편을 깨운다 한들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내가 일어난다 한들 비상약을 먹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그대로 누워서 눈을 질끈 감고 숨고르기를 했다.       


낮에 정형외과에서 소염진통제를 처방해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조금 어지러울 수 있는데 금방 괜찮아져요.”라고 의사가 지나가듯 한 말이 화근이었다. 물론 그 약을 먹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내 내면은 계속해서 염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가 밤사이에 한 방 먹인 것이었다.

  “이게 소염진통제의 부작용인가?” 수면공황으로 잠에서 깸과 동시에 생각해버렸으니 너무나 확실하게도, 어이없게도 소염진통제의 부작용에 대한 염려였다. 그 와중에도 ‘하루에 두 번 먹으라고 했으니 약효가 12시간 간다는 거지? 이제 먹은 지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니 약효가 사라지려면 새벽까지는 버텨야할 것 같은데.’이라는 계산까지 빠르게 마친 상태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이 년쯤 지났을 때였다. 한창 아이가 재롱을 부릴 시기였건만 내 몸의 기는 모두 빠져나가 아이가 예쁜 줄도 몰랐다. 나와 마찬가지로 노산이었던 M이 이수역 근처에 용한 한의원이 있는데 가서 맥을 짚으면 좋은 약을 처방해줄 뿐 아니라 눈물도 펑펑 쏟다 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맥을 찬찬히 공들여 짚어보던 한의사는 ‘뭐가 그렇게 힘들길래 맥이 이 모양이냐’며 물었다. 

“그냥... 이것 저것이 다 걱정이 돼요. 무엇보다 아이가 아플까봐 걱정이 돼요.”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지.”

“병원에 가서 의료사고라도 나면요? 애가 심해진건지 어떤건지 제가 몰라서 아이를 제대로 고칠 타이밍을 놓치면요?”

“아니, ‘엄마’라는 사람은 그렇게 물렁하게 마음을 먹으면 안되죠! 이 아이는 아빠가 없어도 내가 혼자서라도 키운다. 이렇게 강하게 마음을 먹어야해요! 네?” 

한의사는 호통을 쳤다. M이 말한 눈물을 펑펑 쏟는 게 이런건가 싶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나를 더 당황하게 한 것은 한의사의 다음 질문이었다. 


 “죽음을 떠올리면 마음이 어때요?”


 나는 머뭇거렸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순간 너무나도 빨리 ‘편안해요.’라는 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에게 너무 놀라서 대답은 하는둥 마는둥 넘어갔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죽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도를 해본 적도 없고 구체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적도 없었기에 내가 그렇게까지 죽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몇 번 고쳐 생각해도 ‘이 모든 염려와 고통이 끝난다’라고 생각하자 편안할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 그 편안함을 추구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사실 그 말은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죽으면 얼마나 편할까?”

지독한 유전병처럼 그 말은 고스란히 내게 되물림 되었다.      



공황이란 죽고 싶지 않아서 오는 병이라고들 한다. 종종 증상이 강해질때는 그 두려움이 너무 커서 ‘올테면 와 보라지, 죽으면 말고!‘ 라고 생각해버린 적도 있었다. 불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 다짐에 실제로 불안이 조금은 사그라들지만, 그 말이 내포한 의미에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왜 이토록 삶을 쉽게 생각할까. 그렇게 아무렇게나 내려놓아도 되는 거라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부여잡고 있는 걸까.       



극심하게 온 수면공황은 체감상 10분은 지속 된 것 같았다. 마라톤을 뛰고 난 것처럼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나는 안 죽는다. 더 어찌 되지 않아. 이제 다 지나갔어.’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는 건강해. 기껏해야 심장이 뛰고 있는 것뿐이야. 낮에 먹은 약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냈잖아.’    


       

작은새처럼 파닥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자는 아이의 머리를 하릴없이 쓰다듬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곤히 잠든 가운데에도 엄마의 손길을 느낀 아이는 작은 블럭이 큰 블록을 찾아내듯 내 몸에 착 달라붙는다. 아이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악착같이 살아!!!


내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너무나 살고 싶다고.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불안을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 인양 대하며 중독되었던 건 내 습관들일뿐 나는 삶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던 거다.      


그 날의 기분을 쭉 기억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삶을 간절히 원하는지, 얼마나 더 단단하게 버틸것인지, 정작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때는 그 공포로부터 얼마나 빠져나오고 싶어했는지, 그 날의 공황은 그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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