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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베티 Feb 25. 2019

Lesson1 해방촌의 봄

우쿨렐레는 해치지 않아

Lesson1.해방촌의 봄 



린시절을 떠올리면 늘 밝은 햇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머릿속에 저장된 어린시절의 순간은 노출보정을 많이 한 사진처럼 항상 밝고 화사한 느낌이예요. 그래서 아마도 제가 봄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해방촌 성당에 들어섰을때의 장면 역시 그런 화사한 빛이 가득 담겨있어요. 실제로는 열댓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창문조차 없는 강의실이었는데도 말이죠.     

 

 제대로 된 레슨실을 빌리지 못해 해방촌 작은 강의실에서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실 이 레슨은 해방촌도시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해방촌주민들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 중의 하나였습니다. 


해방촌은 이태원의 경리단만큼이나 낡고 오래된 동네인데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서 주민들 모두가 노력하는 동네예요. 덕분에 경리단처럼 화려한 동네가 되지는 못했지만 상인과 주민들이 공생하는 옛 동네로 남게 되었죠. 그래서인가 주민들이 동네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고 자생적으로 만든 이런 프로젝트들이 참 많아요.           


열 명이 조금 못되는 멤버들은 척 보기에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성당 노인대학 멤버이시라나요? 아이엄마들 사이에선 어딜가나 왕언니꼬리표 붙었던 제가 파릇한 새댁 취급을 받으니 그 또한 신선했어요. ‘언젠간 가겠지~푸르른 이 청춘~’이란 가사의 “청춘”이라는 곡을 연습할 때는 옆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연주하시다 말고 저를 보고 씩 웃으시더라고요.  “젊은 사람이라서 아직 이 노래 이해 못 할 거야.” 하고요.       


우쿨렐레를 가르쳐주시는 이국표 선생님의 첫인상은 플로메리아 꽂핀을 꽂으신 소녀였어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분으로 목소리가 항상 솔에 맞춰져있는 활기찬 분이었어요. 알로하라고 인사를 하며 우쿨렐레 수업을 시작하셨죠. 우리나라에는 우쿨렐레1세대이신 분이셨지만 본래는 만돌린을 위해 이태리 유학도 다녀오시고 현재도 많은 제자들과 공연도 계속하시는 실력파셨어요. 덕분에 저는 우쿨렐레를 아주 클래식하게, 제대로 배울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으니 운이 좋았죠.      


통성명만 하고 아직은 서로 서먹한 가운데 도레미파솔라시도 보는 법, 높은음자리, 낮은음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초등학생이라도 된 듯 긴장된 분위기에서 보드판을 바라보다 앗차 싶었어요.      


아, 그렇습니다. 제가 잊고 있었네요. 악보보기가 너무 무섭고 싫어서 고등학교 중창단 3년을 활동하면서도 음을 머리로 외워서 불렀다는 것을요. 높은음자리, 낮은음자리, 화음, 화성, 단조, 장조 그것들이 모두 수학적인 논리를 요구하는 것들이라 음악 필기시험을 죽도록 싫어했다는 것도요. 


악보포비아는 5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피아노학원에 갔는데 피아노 연습이 너무 싫어서 거짓말로 연습수첩에 엑스자를 표시했다가 들켜서 엄마에게 혼난 기억이 있었던 거예요. 도미솔 도미솔 연습도 재미없엇고요. 40년을 넘어 바이엘 하권에서 멈췄던 저의 태엽이, 끼이익 녹슨소리를 내면서 덜컹 하고 한칸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듯했습니다.      



다행히 우쿨렐레는 악보를 몰라도 칠 수 있는 곡들이 꽤 많아요. 타브악보란 것도 있고요. 타브 악보는 줄을 표시한 악보입니다. 즉 음표를 몰라도,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음악을 완성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보들도 겁 없이 덤빌 수 있는 악기인 것이고 독학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 그대로 초보일때의 이야기이지요. 첫 날의 강의에서 타브 악보 잡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악보의 장벽이 맘에 걸렸습니다. 어차피 악기도 없고 제가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악보를 공부하고 있겠나 싶어 다음 수업에 나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이 첫 날, 선생님이 저에게 운명적인 말씀을 건네십니다.      


“악기가 없죠? 제걸 빌려줄테니 다음시간에 연습해서 오세요.”     

 다음 시간에 또 나올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무료수강생에서 악기를 빌려주시다니! 이제는 연습을 안 해갈 수도 없고 악기를 반납해야 하니 두 번째 수업에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떨결에 악기를 받아들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연습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낮에 배웠던 음계가 생각나면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더듬 더듬 칠 수 있었어요. 남편에게 저는 혹시 천재가 아닐까 허세를 부리던 첫 날의 강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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