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쿨렐레는 해치지 않아
“써니, 바이얼린 배워요?”
눈썰미 좋은 주니엄마가 거실 한구석에 놓여진 검정색 악기케이스를 보며 물어봅니다.
“아... 저거 내꺼야. 내가 요즘 우쿨렐레 배워. 자격증 따려고 연습 중이거든.”
“우와. 언니 아이 유치원도 일찍 끝나는데 언제 강의 듣고 언제 연습하세요? ”
저희 아이 써니는 한시반에 끝나는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7살 써니 또래엔 하원후에 이런 저런 사교육을 받느라 스케쥴이 빠듯 하지요. 써니도 일주일에 한번 미술수업과 영어도서관 그림책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주니 엄마가 그렇게 물어본것도 당연해요. 오히려 지금 저 자리에는 제 우쿨렐레 대신 써니의 바이얼린이 놓여져 있는것이 일반적인 일일테니까요.
우쿨렐레 수업을 알게 된 것도 사실 써니덕분이었어요. 써니가 다니는 영어도서관의 한구석에 해방촌 도시 계획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주민들에게 우쿨렐레와 만돌린을 무료로 강의해준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던거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냥 막연하게 우쿨렐레를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해왔었거든요. 인생 악기를 갖고 싶다거나 취미로 악기 하나쯤은 다뤄야지 하고 생각해본 것이 아니라 콕 집어 우쿨렐레만큼은 한 번쯤 쳐보고싶다, 만져라도 보고 싶다라고 생각해왔어요. 왜 그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막연한 욕망이 어디에서 출발한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수업 시간대도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을 평일 오전이고 무료라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해방촌 주민도 아닌지라 집에서 해방촌까지는 버스로 20여분 가야하지만 좋아하는 남산길을 둘레 둘레 돌아서가니 그 또한 설레였어요.
살다보면 앗!이건 왠지 운명같아. 하는 순간이 몇 번은 찾아오잖아요. 리차드바크의 ‘환상’이란 소설을 보면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책을 펼쳐도 답이 들어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중학교때 처음 이 구절을 듣고는 무슨 마법같은 이야기인가보다 했는데 커보니 알겠더라고요. 운명의 책, 운명의 짝, 운명의 구절은 내가 원해야만 나타난다는 것 말이예요.
우쿨렐레 역시, 그렇게 운명으로 다가왔어요.
아...기억을 되짚어보니 일년전 그런 운명의 파고가 다가왔었습니다. 써니네 유치원 바로 근처에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우쿨렐레 교습소를 발견한거죠. 그때도 이것은 운명이구나 하고 설레발치며 들어갔었더랬죠. 기타를 전문으로 강습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곳이더군요.
그런데, 한달에 수업료가 15만원이라는겁니다~! 며칠을 고민했었어요. 우쿨렐레가 아니면 안 된다, 이걸로 밥을 먹고 살아야한다 이런 것도 아닌 전업주부에게 한달 15만원은 적은 비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주민센터라도 알아보자... 하고 자신을 설득하며 단념했습니다.
일 년 전 그 수업을 들었더라면 지금 어찌 되었을까요. 15만원짜리 클래스를 들었으면 본전을 뽑아야겠단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아 금방 때려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일년전에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아뭏튼 이렇게 우쿨렐레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5월 무렵, 해방촌의 한 성당에서 무료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