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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두레밥 Nov 27. 2023

프레임의 주인공인 너

사진 취미의 매력에 관하여.

내게는 취미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취미 만들기'이다.

내가 충동적으로 취미를 만들고는 금세 때려치우는 것을 보고 한 친구가 무심결에 뱉은 말에 착안한 취미다.


그만큼 나는 취미를 만들고는 싫증을 금방 내는 프로 취미 찍먹러이다.


이런 나에게도 바스러져버리는 취미가 아니라 진득하고 끈적하게 남아있는 취미가 몇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지금 한창 하고 있는 취미보다는 그 와중에 살아남아 진득하게 하고 있는 취미를 주로 이야기한다.


그 대답 중 하나가 사진이다.


이 싫증 많은 변덕쟁이가 어떤 이유로 사진만큼은 찍먹 하지 않았을까?



보통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일상에서 벗어나 멋지고 광활하고 압도적인 풍경으로 가서 커다란 백통렌즈를 물려놓은 채 야생의 풍광과 동물들을 숨죽여 찍는, 이를테면 내셔널지오그래피의 사진작가


혹은


스튜디오에서 백라이트 키라이트 필라이트 등 왠갖 조명을 켠 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고혹적인 포즈와 눈빛으로 프레임을 압도하는 모델을 찍는, 이를테면 보그, 엘르의 사진작가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사진이 취미라고 밝힌 횟수에 비례적으로 따라오는 반응이 있다.


"오, 그러면 여행 많이 가시나요?"

"예쁜 곳으로 놀러 가시는 것 좋아하시겠어요."

"놀러 가서 찍은 사진 보여주세요."


아무렴요. 여행 가면 찍어야죠~!


얼핏 보면 각기 다른 반응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반응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진을 '특별한 곳'내지는 '특별한 것'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사람의 사진이 어떠한가'보다는

'이 사람은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여행, 장소, 사람을 만나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물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것을 찍는 사진은 매우 멋지다. 나 또한 여행을 간다든지, 특별한 날, 특별히 예쁜 곳을 가게 되면 사진기를 허겁지겁 꺼내어 순간을 담아내려 갖은 노력을 다 들여놓고는 한다.


그러나 이런 사진은 사진을 취미로 만들어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사진은 매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이 취미가 되기 위해선 매일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렇게 내 생각을 밝히면 혹자는 '매일 찍을 수 있는 사진? 매번 사진 찍을 만한 것이 있기는 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이 의문에 왕초보 사진가가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게 감히 대답을 올린다.


뭐든 예쁘게 찍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사진의 매력입니다.



이미 타인에 의해 매력과 아름다움이 검증된 '슈퍼스타 피사체'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쉽다고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이쁜 벚꽃

벚꽃은 '슈퍼스타 피사체'이다.


벚꽃은 누구나 사랑하고 한껏 주인공이 되는 물체는 내가 아닌 누가 찍어도 아름답고, 설령 내가 못 찍는다 하더라도 벚꽃 입장에서는 서운할 게 없을 것이다.


봄의 주인공으로서 모든 이의 눈길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잔뜩 군림하다 떠나는 벚꽃.


이 아름다운 슈퍼스타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겠는가.

이미 누구나 예뻐하고, 사랑하고, 보아주는 데.


벚꽃은 이미 스타이기에 이를 프레임에 담기만 하면 이미 벚꽃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떨쳐댄다.








우리에게 주인공으로 군림할 만한 '슈퍼스타 피사체'는 매일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찍을 것이 과연 없을까?


우리의 일상은 이미 어떠한 물체와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도 매일


또한 이 많은 물체들은 각자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보는 사람이 그걸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리라.


아무도 보아주거나 예뻐해주지 않는 것을 보아주고 예뻐해 주며, 심지어는 주인공으로 한 번 만들어주는 것이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진기를 들곤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예쁘게 찍을만한 거리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하찮게 지나갔던 물건이 문득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시멘트 블록에 끼어 간신히 꽃을 피운 민들레

누구도 풀 수 없을것처럼 복잡하게 꼬인 전신주의 전깃줄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신문함

오늘따라 빛을 잘받는 우리집 화분


아무도 보아주지 않았던 것들을 향해


'내가 널 예쁘게 담아볼게.'라고 마음속으로 말을 건네는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아파트 주차장
신문구독함
고물상 자전거
혼자만 하복인 너


이런 사진의 매력이 인생의 매력이기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일상적이지 않은 일은 아름답게 생각하면서 일상적인 일은 그저 흘려보내버릴 때가 간혹 있다.


평일의 학교 수업보다는 입학식, 졸업식을

매일 먹는 된장찌개보다는 필레미뇽 스테이크를

매일 보는 내 방보다는 고급 호텔의 호캉스를


일상적이지 않은 일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기억될 수밖에 없다.


허나 일상은 내 선택에 따라 아름다워지고, 기억된다.


'내가 너를 예쁘게 보아줄게.'라는 내 마음속 말을 나의 오늘에게 전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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