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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곤 Nov 01. 2017

[전주 여행]
전주한옥마을은 'Touristy'하다

당일치기 전주 기행下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관광지스럽네."
("It's much more 'touristy' than I thought it would be.")

― 2년 전 여름, 전주 한옥마을을 처음 찾은 독일인 친구 조나단의 첫인상.


   上편에서는 남부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도시 재생과 조점례 피순대에 대해 얘기해 보았다. 청년몰을 필두로 한 도시 재생과 순대국밥에는 제각각의 역사와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지켜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반면 전주 하면 떠오르는 대표 관광지라 할 수 있는 한옥마을은 지난 몇 년 간 양적으로는 급성장했지만,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점점 잃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조나단은 전주 한옥마을을 두고 '관광지스럽다(touristy)'라고 평했다. 어느 장소가 'touristy'하다는 말은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그들의 쇼핑과 활동을 위한 것들로만 가득하다"는 부정적인 평가이다.(사전)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사람이 북적여서 그렇게 느꼈나 보다 했는데, 이번 방문에서 천천히 둘러보니 왜 그런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이 점점 고유의 매력을 잃고 'touristy'한 장소로 변해가는 이유를 이번 방문에서 느낀 점을 토대로 나름 분석해보았다.




의衣 : 국적불명의 한복


   한옥마을 초입에 위치한 전동성당 앞뜰에서부터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기보다는 (약간 과장해서) 한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랄까? 제각각 화려한 색깔에 디자인도 다양했다. 아동 사이즈로도 구비되어 있는지 단체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도 모두 한복 차림이었다. 이후 한옥마을 깊숙이까지 천천히 돌아봤는데, 골목골목마다 한복 차림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한복을 여행지에서나마 직접 입어 보고 즐길 수 있는 점은 분명 환영해 마땅하다. 하지만 한옥마을에서 볼 수 있었던 수많은 한복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주변 대여점에서 빌려주는 한복은 대부분 전통적인 한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과 왕족이 입었던 화려한 복장을 체험하는 차원이라면 모를까,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과 비전통적인 요소가 과하게 가미된 한복이 많았다. 조금 철 지난 표현으로 말하자면 '한복st 코스튬'이랄까. 특히 여성 한복의 치마는 마치 레이스가 풍성하게 달린 서양식 드레스를 보는 듯했다.

엥?

   '나만 불편한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관광지에서 쉽게 빌려 입는 한복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미 여러 언론과 전문가를 통해 제기되고 있었다.


   [서소문사진관] 고궁 주변의 한복, 우리 옷 맞나요?

      : 서울 시내 고궁 주변에서 한복 입은 사람들을 취재하며 발견한 문제점들을 지적

   '패션 한복 명장' 김예진 디자이너 "한복도 한류 주역"

      : 뉴욕패션위크에서 한복 패션을 선보인 디자이너가 '대여점 한복이 한복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비판

   "우리가 한복을 망치고 있다고요?" 억울한 고궁앞 대여점들

      : 종로구청이 마련한 '우리 옷 바로 입기' 워크샵에 참석한 대여점 업주들의 반박


   지적된 '대여점 한복'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치마폭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뼈대를 넣고, 전통 원단 대신 값싼 커튼 천을 쓴다. 뿐만 아니라, 더 화려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 (원래 한복에는 없는) 허리 리본을 부착하는 등 서양 복식을 차용한다. 지역마다, 또 대여점마다 각각 사정이 다르겠지만 공통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은 '대여점 한복'이 한복의 정체성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통문화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즐기면 좋은 일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나 한복이 비싸고 고루한, 명절에나 입는 옷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적 조건에 휩쓸려 정체성마저 잃어버린다면 그 옷은 더 이상 한복이 아니게 된다. 적어도 전통문화를 이끌어나가야 할 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의 본래 아름다움을 지켜가면 안 될까? 



식食 : 전주 여행은 먹방 여행?


   전주의 가장 큰 자랑이자 관광 자원은 식문화다. 나도 수원으로 돌아오기 전에 '베테랑 칼국수'에 들러 칼국수 한 그릇 하고, 풍년제과에서 초코파이 한 봉다리 사 왔다. 이전에도 전주에 가게 되면 막걸리 골목은 항상 빼놓지 않고 들렀다. 이번에도 '조점례 피순대'의 순댓국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갈 정도였으니 이미 전주의 맛은 나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맛있고 풍성한 먹거리로 유명한 곳에서 먹거리를 관광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마을을 돌아보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상업시설이 식당이다. 식당이 아니면 거의 카페다. 어쩌면 이곳이 거대한 푸드코트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다 보니 다 먹고 다 마신 후에는 한옥마을에 남아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 이러니 '전주 여행 = 먹방 여행'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질 수밖에. 남부시장 청년몰의 경우엔 소규모 갤러리와 공방 등의 볼거리가 꽤 있는 편인데,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한옥마을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먹고 마시고 사진 찍기 위주의 관광객이 많이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일본 교토의 기온 거리도 식당, 카페, 기념품점이 대부분이니 '거대한 푸드코트화'는 관광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문제라면 적어도 한옥마을의 먹거리는 '한옥마을 다움', '전주 다움'을 갖췄으면 한다. 전주의 식문화를 외지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꼬치구이 파느라 놓쳐버리면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전주다운' 음식을 이미 내고 있는 음식점에서도 그 음식에 담긴 지역적 색깔을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사람들을 다시 찾아오게 한다.



주住 : 한옥마을엔 한옥만 있어야 하나


   한옥마을을 돌아보며 한옥 지붕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고전적인 한옥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경기전은 물론이고, 곳곳에 있는 한옥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바로 한옥마을의 양적 성장에 따라 속속 신축되고 있는 '신축 한옥' 때문이다.


   '한옥마을에 한옥 짓는 게 뭐가 문제냐'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옥에 역사성이 있다면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도 그 나름의 역사성이 있고 똑같이 우리가 지켜가야 할 유산이다. 애초에 전주 한옥마을이 형성된 것이 일제강점기 이후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비슷한 시기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이나 일본식 건축물(소위 적산가옥)도 보존하고 계승해야 마땅하다.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다른 건물은 몽땅 허물고 한옥으로 새로 짓는다면 공터에 조성한 민속촌이나 드라마 세트장과 다를 바가 없다. 한옥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돈이 된다고 해서 무작정 근대 건축물을 부수고 한옥으로 새로 지을 일이 아닌 것이다.


   다행히 전주 한옥마을에도 근대 건축물을 부수지 않고 그 매력을 살린 사례가 없지 않다. 경기전 돌담 바로 옆에 위치한 교동아트센터(홈페이지)는 70년대 지어진 백양메리야스(현 BYC)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다. 속옷 등의 경공업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던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의 지역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두 달 정도 인도 여행한 뒤에 면도를 해보면 이런 느낌일까 (출처:웹진 아르코)


   경성게스트하우스는 일제강점기 지어진 화양식(和洋式:일본식+서양식) 가옥을 리모델링한 숙박 시설이다. 경찰서장 관사로 지어진 이 집은 해방 이후 개인에게 팔렸는데,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민병선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집을 물려받아 리모델링 후 게스트하우스로 오픈했다. 나도 이번에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한옥마을의 근대 건축물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발견했는데, 링크에 민 대표의 인터뷰를 포함한 자세한 소개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건물에 100년의 역사를 담은 경성게스트하우스 (출처:stayfolio.com)



   2016년부터 한 해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방문객의 수가 10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인기 많은 관광지가 외국 친구에게 'touristy'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옥마을이 선보여야 할 전통과 역사, 그리고 정체성이 상업적 목적에 의해 자꾸만 흐려지는 걸 이번 방문에서 똑똑히 느꼈으니 말이다.


   나의 여행 경험을 되돌아보면 다시 가고 싶은 장소는 항상 '그곳다운 곳'이었다. 교토 기온거리 상점가의 일본스러움, 방콕 짜뚜짝 시장의 태국스러움(습한 공기와 얼굴에 개기름까지), 몬트리올의 캐나다다운 평화로움까지. 대체할 수 없는, 대체되지 않는 '그곳다움'은 여행자를 데려올 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가서도 그곳을 그리워하게 한다.


   한옥마을의 매력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특유의 분위기에 있다. 나는 그 분위기가 '한옥마을다움'이고, '전주다움'이며, '한국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옥마을다움'을 잘 살려야만 전주 한옥마을이 현재의 양적 성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관광산업을 우리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삼천리 화려강산 곳곳에 카지노 짓고 리조트 짓고 골프장 지을 게 아니라 이런 점을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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