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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윤지 Aug 28. 2023

지구에게 귀가 있다면

제인 구달 단편 다큐멘터리 공동체 상영 후기

지난 7월 초 제인 구달 선생님이 방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는 수백 명이 모여있었다. 제인은 전 생애를 걸쳐 과학자이자 환경 운동가로서 지구 곳곳에 희망을 전해온 사람 특유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제인의 목소리와 제스처, 에피소드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벨 평화센터(Nobel Peace Center)를 떠올렸다. 시대와 나라마다 폭력과 무지, 괴로움 속에서 희망과 평화를 실천해 온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에게서 빛나던 용기와 기백을 제인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 희망처럼 빛나던 제인 구달 박사님 - 제인 구달 방한 대중강연 희망의 실천(Hope Throgh Action) 2023.7.7


특히 강연 막바지에 한 참여자의 질문에 대한 제인의 답은 지구 환경을 향한 제인의 꿋꿋한 희망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생명다양성재단 인스타그램

만약 지구나 환경에게 귀가 있다면
박사님께서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지구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을 것 같아요.
수년 동안 나와 우리 모두에게 제공해 준 수많은 혜택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당신을 보호하는 걸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파괴한 것을
되돌려놓기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지구에 대한 고마움과 책임의식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그의 말은 당시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지구에게 전하는 백전노장(百戰老將)의 약속은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 생태계를 사랑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힘 있는 위로가 되었다. 강연 후 며칠 동안이나 제인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 감동을 혼자 간직하기 아쉬웠던 찰나에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주관하는 <From Jane To Jane : 제인구달이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이하 From Jane To Jane) 다큐멘터리 공동체 상영회에 신청을 했다. 함께 나눌 대화를 기대하며 두 번의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다.




삼윤지와 수민이 제로 웨이스트 트립


삼윤지와 수민이는 올해 초부터 함께하고 있는 환경교육 스터디 그룹이다. 우리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환경예술교육 콘텐츠를 연구하면서 생태 전환을 위한 영화, 전시, 책을 비롯한 예술 콘텐츠를 함께 즐기고 비건 음식점 탐방을 하고 있다. 삼윤지와 수민이는 지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예술적 경험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 교육과 일상에 흘러들어 간다고 생각해 왔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뭔가 특별한 일이 없을지 궁리하던 중 제로 웨이스트 트립과 함께 From Jane To Jane 공동체 상영을 하기로 했다.


지난 5월 21일 2023년 국제 생명다양성의 날 기념 다큐멘터리 애니멀(Animal) 영화 상영회에 함께 간 삼윤지와 수민이
여름 채소 카레 한 상 차림! 각자 집에서 가져온 열무김치와 된장, 고추가루, 매실청을 곁들여 더 풍성한 저녁 식사가 마련되었다.
집에 두고 쓰지 않은 수제 비누를 선물로 나눴다. 조식은 홈메이드 소이 요거트에 제철과일과 견과류, 유산균을 곁들여서 냠!


우리는 전국 제로웨이스트 숙소 중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이너시티에서 하루를 묵었다. 각자 집에서 챙겨 온 텃밭 채소와 식재료, 그리고 지역 시장에서 구입한 채소들로 근사한 저녁상을 차렸다. 든든한 저녁식사 후 해바라기씨, 볶은 콩, 뻥튀기 등을 들고 앉아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의 질문을 안고 스크린 앞에 앉았다.


교육으로 정말 생태 전환이 가능한가?
끈기 있게 기후행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로 기후행동을 할 때 얼마나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다양한 생태 전환을 시도할 수 있을까?

영화 상영과 콜라주 활동! 진지한 탐구와 대화가 이어졌다.


미술교육, 예술경영, 환경교육 분야에서 기후행동을 실천해 온 멤버들은 제인 구달 박사님에 대해 이미 조금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 그려진 그의 영향력은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고 세밀했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유독 눈을 떼지 못했던 한 멤버는 그간 자신이 이어온 환경 교육 활동을 하며 느꼈던 바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제인 구달 박사님의 메일함을 보며 좌절한 마음을 추슬렀던 한 활동가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우리는 지구와 동행하는 삶은 혼자 이루어갈 수 있는 게 아니며, 서로를 지지해 주는 만남과 대화가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디딤돌이 된다는 걸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상영 소감을 나눴다.


다큐멘터리 상영 후 우리는 그룹 콜라주 활동을 했다. 콜라주의 주제는 "지구에게 귀가 있다면, 뭐라고 이야기할까?"였다. 나는 그룹 콜라주 활동을 기획하면서 그동안 탐구해 왔던 지구색 물감을 준비해갔다. 흙, 풀, 돌, 꽃 등을 원료로 만든 천연물감으로 그린 추상적인 패턴을 오려 각자 지구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나무, 계곡, 물고기, 별, 계절의 오고 감을 조형적으로 시각화하고, 지구 위 생명들은 모두 하나의 DNA를 가졌다는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에게 들려줄 말로 "I See You. 당신을 봅니다."를 적었다. 지구의 아름다움, 생명력 있는 모습, 신비로움, 우리와의 연결성을 매일 보면서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부지런히 콜라주를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지구에게 들리도록!




공간 호미와 함께한 지구 미술의 날

친구들과 제로 웨이스트 트립을 다녀온 후 두 번째 공동체 상영을 기획했다. 최근 멤버로 입주한 작업실 공간호미에서 사람들을 초대해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구미술의 날​을 기획해보기로 했다. 공간호미는 빈티지, 레트로, 자연주의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제로웨이스트 공간이다. 중고 가구로만 꾸며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호미는 평소에는 호스트의 작업실이자, 비건 포트락 파티나 커피와 차를 즐기는 호미다방으로 쓰인다.

따뜻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질감으로 꾸며진 공간호미의 거실


8월의 뜨거운 어느 저녁에 열린 지구미술의 날에 생태 텃밭 농부, 예술 행사 기획자, 이제 막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분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우리는 지구색 물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첫 만남의 어색함을 풀었다. 돌, 흙, 풀, 꽃 등으로 물감을 만드는 도구와 그간의 실험을 통해 발견한 지구색의 다채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큐멘터리 상영을 준비했다.



나는 이번 행사의 이끔이를 맡아 상영에 앞서 참여하신 분들께 질문했다.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다큐멘터리 상영 후 우리는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을 보내면서 기후우울을 느꼈던 경험을 나누었다. 제인 구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셨고, 평생에 걸쳐 희망의 불씨를 지켜온 제인 구달 박사님이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어온 모습에 무척 응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제인이 강조한 희망의 본질을 되새겼다.


희망은 우리가 역경에 맞서 계속 나아가게 해 주는 힘입니다.
희망은 살아남은 것들의 특징이고 생존의 본질이에요.

공동체 상영 후에는 앞서 소개한 지구색 물감을 활용해 "지구에게 귀가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를 주제로 콜라주 활동을 했다. 지구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종이를 오렸다. 완성된 작품은 감탄을 자아냈다. 지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분도 계셨고, 아름다운 별들이 더 반짝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표현해 주신 분도 계셨다. 비와 무지개, 바람과 해 등 지구의 다채로움을 사랑한다는 고백도 담겨 있었다.


지구 미술의 날에 예술로 나눈 대화들이 다채로운 지구색 물감으로 작품이 되었다. 지구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성숙해지기를.




두 번의 공동체 상영을 하는 동안 나는 여생을 바쳐 지구를 보호하고, 파괴한 것들을 되돌려 놓겠다는 제인의 약속을 떠올렸다. 제인으로 부터 시작된 감동을 여러 사람과 나누면서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지구를 바라보고, 지구의 목소리를 상상해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앞으로도 지구를 바라보고, 지구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시간을 쌓아가야지!


공존을 말하기에는 여전히 우리의 불완전한 일상과 태도에 대해 아직도 질문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번 공동체 상영 덕분에 미해결 질문을 가지고 친구들과 모여 오감을 열고 지구의 숨소리를 들어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나와 내 친구들이 제인의 걸음을 따라 용감하고, 단단하게 하루, 이틀 우정을 쌓아가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제인이 전해준 위대한 유산(Legacy)을 우리 삶을 통해 계속해서 흘러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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