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퍼펙트 데이즈 같은 하루

스타트업 / 직장 / 삶에서의 성공 생존기

by 공빌

의미로만 점철되어 재미를 잃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도 작품을 만들 때 가장 큰 목표를 재미로 삼듯, 스크린이 시작되고 나서 핸드폰을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지루한 영화를 싫어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재밌지 않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이야기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키우는 화분들에 물을 주고, 바깥을 나와 하늘을 보며 새벽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희미한 미소를 띠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세면대 밑 작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빈틈없이 청소하는 모습, 매일 점심 도시락을 근처 신사 공원에서 먹는 모습,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카메라로 담는 모습, 일이 끝나고 자주 가는 목욕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모습, 익숙한 가게에 들어가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와 작은 조명불에 책을 읽다가 잠드는 모습.


지루하고 단조로운 하루의 반복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삶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불평이 많을 수도 있는 삶이지만, 그는 내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즐거워한다.




스타트업은 특성상 빠르게 진행되는 일이 많고, 그에 따른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진행하던 프로모션 이벤트에 허점이 있었고 그 허점을 이용한 고객들이 새벽 간 대량 발생하여 예상한 금액보다 몇 배를 초과한 이벤트 금액을 지출하게 되었을 때, 개발상 오류가 그대로 프로덕션에 배포되었지만 QA때 발견하지 못해 고객에게 그대로 전해졌을 때, 마케팅 수신동의에 관한 법률에 대한 이해 없이 CRM을 발송했다가 컴플레인이 발생하는 등 예상하지도 못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이럴 때 드는 감정은 보통 당황, 조급 함이며 태도는 책임지고 해결하려 하지만, 스트레스받아하는 편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겠지만, 내겐 책임지는 태도는 곧 내 탓으로 연결되곤 한다. '그때 이걸 더 신경 써야 했어', '왜 이걸 놓치고 진행했지? 진짜 바보인가?', '아 이건 신경 쓰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너무 급하게 했다.'같은 말들이 속으로 들끓는다. 책임이 과해지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남 탓을 하기도 한다. '이건 앞에서 좀 더 신경 써서 전달해줘야 했던 거 아니야?', '이거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한다고?', '나보고 모든 일을 다해 내라는 건가?' 같은 생각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이런 순간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였다. 그는 결코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인물이 아니고, 거창한 의미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내고, 그 단조로움 속에서 아주 작은 기쁨들을 발견해 나간다. 나무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볼 때의 잠깐의 미소,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바람이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 자신이 맡은 화장실을 그냥 ‘일터’가 아니라 ‘하루를 통과해 가는 공간’으로 대하는 마음가짐. 그의 하루는 사건으로 가득 차 있지 않지만, 태도만큼은 언제나 잔잔하며 밝았다. 그 태도가 상황을 이기는 힘이라는 걸 느낀다.


히라야마처럼 상황을 흘려보낼 만큼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문제가 왜 생겼지?”라는 자책이나 “왜 나만 이걸 신경 써야 하지?”라는 억울함 대신,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을 차분히 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잘잘못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허둥대기보다는, 작은 빈틈을 발견하면 조용히 메우는 사람.


태도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진 않지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바꿔준다. 방식이 바뀌면 결과도 달라진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는 일은 늘 급하고 지저분해지지만, 긍정적인 태도는 생각을 정리하게 하고, 선택을 단단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그런 태도는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다.


히라야마의 단조로운 하루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도 결국 그것이었다. 그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태도로 하루를 맞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배운다.

뭘 하든, 어떻게 할지는 결국 나의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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