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가 믿어내야 했던 선택들에 대하여

스타트업 / 직장 / 삶에서의 성공 생존기

by 공빌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을 진행하며 오는 여러 가지 갈래길에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인력이 모자라서 개발자가 마케팅 관련 업무를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 대표가 제안하는 목표를 무조건 따를 건지 따르지 않을 건지의 선택, 회사가 원하는 방향가 내 개인적인 커리어 성장의 방향성이 맞지 않아도 회사를 위해 일할 건지 퇴사할 건지의 선택.

중요하다 여겼던 선택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불과 5년의 서울 생활을 했지만 많은 선택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회사에 교수님 추천으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작은 건축 아뜰리에 회사로 가겠다 한 선택, 그렇게 들어간 작은 회사를 8개월 만에 퇴사한 선택, 그렇게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의 회사로 이직을 선택했던 선택,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변경하기 위해 공부를 했던 선택, 대표 인터뷰에 매혹되어 이력서를 넣은 작은 스타트업에 합류하기로 한 선택.


하나의 선택에 수 백번의 고민이 있었다. 8개월 만에 나온 작은 아뜰리에에서 나오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잠깐의 점심시간, 퇴근하고 집에서의 고민과 수많은 번복이 있었다.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했다. 내 앞으로의 인생이 달린 일, 이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이 맞을까,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후회와 희망과 좌절과 기대의 반복이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린 이순신 장군 전시에서 울산왜성전투도를 보았다. 왜성을 둘러싼 명나라 군사들의 다양한 표정들이 있었다. 전쟁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라기엔 고양되지 않은, 뒷사람은 뭘 하고 있나 궁금해하는 일상의 표정들이 있었다. 그들은 원해서 전쟁에 나오게 되었을까, 원하지 않았음에도 선택할 겨를이 없어 끌려 나오게 된 것일까, 전쟁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의 표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선택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왔다면, 선택은 정말 중요한 것이 맞을까. 어쩔 수 없는 주변 상황, 사회, 현상으로 선택하지 못한 상황으로 내쳐졌다면, 나는 선택하지 못했기에 좌절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440FA64F-E8BA-46FE-B5DC-1B655716CB7C_1_201_a.jpeg 울산왜성전투도에서 뒷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 병사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내가 한 선택들은 정말 주체적인 선택이었을까. 작은 아뜰리에에서 나온 선택은 주체적이지 못했다. 소장은 이런 식으로 하면 1년 채우고 잘릴 수 있다고 했었다. 나는 지레 겁먹었고, 겁먹은 상태에서 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먼저 도망치겠다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개발자를 준비하기로 한 선택은 정말 내가 한 선택일까? 아니다. 한참 개발자가 꿈의 직업으로 부상했던 시기가 있고, 나는 그 사회 기류에 편승한 한명일뿐이다. 주체적인 선택보단 강물에 휩쓸린 것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그때의 선택들이 만족스러웠고, 만족스럽지 못했고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시지프스 신화는 신에게 반항한 처벌로 거대한 바위를 산 위까지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다시 굴러 떨어져 처음부터 반복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시지프의 이야기다. 바위를 계속 밀기만 해야 하는 아무 의미 없는 인생, 알베르 카뮈는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상상해야 한다."라 말했다. 시지프가 바위를 미는 것이 의미 있어서 미는 게 아니고, 바위를 미는 행위를 자기 삶의 선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것. 결국 어떤 선택이든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라는 것.


처음엔 이 주장을 보고, '단순히 자기 합리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으나, 삶은 어차피 부조리하고, 세상엔 의미가 없으니,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의 차이, 그렇게 하여 어떻게 삶을 더 잘,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내는 가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의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삶으로 포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을 포기하거나, 나의 삶을 남에게 귀속시킬 수밖에 없다.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선택에 맞는 자기 확신과 옳은 선택으로 만들고자 움직이는 발버둥이 그 선택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내려면 그렇게 믿어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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