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하나를 선물 받는다면

어느 날, 나에게 행성이 배달되었다.

by 공담소

'띵동'

늦은 밤, 예상치 못한 벨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내 이름이 적힌 두툼한 봉투가 바닥에 툭 놓여있다.

국제 소포 알림을 받았던 터라 크게 의심하지 않고 집어든다.

그 속에는 이상한 도면과 서류 한 장이 들어있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행성이 등록되었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는 단출한 문장이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보이스 피싱? 레터 피싱? 어이없는 장난에 헛웃음이 난다.


"뭐, 그럼 하늘에라도 떠 있게?"

코웃음을 치며 창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별빛이, 마치 나를 부르듯 낯설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묘하게 내 시선을 붙잡았다.

놀람은 곧 설렘이 되었다. 행성을 소유하다니.

우주 어딘가에 내 이름으로 불릴 땅이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어깨가 괜스레 펴졌다.

방 두 개인 집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내가, 하루아침에 행성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니.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 가를 늘 생각하던 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행성을 받자 더없이 커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낯선 무게가 밀려왔다.

누가 나에게 이것을 보냈으며, 행성을 가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저 행성에 어떻게 가지?

만약 어떤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간과 비슷하다면?

그들이 내 행성의 '주민'이 되는 걸까? 나에게 그럴 권리가 주어진 것인가?

저 속에 엄청난 에너지원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구랑 환경이 비슷하면 진짜 이주해서 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행성이 소유가 된다면 재산세가 붙을까?'

궁금한 것 투성이다.


언론에라도 알려지면, 탐욕스러운 자본가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행성을 독점한다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우주에 관심 있는 자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이다.

'나에게 팔라' 든 지,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 든 지.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듯 상상했다. 관리비, 개발 비용, 혹은 그냥 방치했을 때의 위험.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행성은 너무 거대했고, 나는 너무 작은 존재였다.

아기 손에 쥐어진 수정 구슬처럼, 아름답지만 무겁고, 반짝이지만 벅찼다.

가까운 주변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야, 그걸 팔면 너 평생 부자야." 친구가 눈을 반짝였다.
"일단 갖고 있어! 어떤 부가가치가 있을지 모르잖아!" 동생은 말한다.

"근데, 행성의 주인이 된 기분이 어때?" 언니가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복잡할 뿐이다.


설령 저곳에 간다고 해도, 전문적인 팀이 함께하지 않으면 행성을 파악할 수 없다.

투자금을 받아 어떤 단체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그건 '나의 부'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하다 보면 관심이 가고, 선도자가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도 되면, 상상할 수도 없는 부를 이룰 수도 있다.

선심 쓰듯 내가 속한 나라에 일부 땅을 빌려줄 수도 있는 것이고,

뭐 부탁한다면 다른 나라나 개인들에게도 일부 땅을 팔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성인데, 내가 그래도 되는 걸까?


며칠을 버티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나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 낸 최선의 의미는 미래 자손들을 위한 '공익'이었다.

나라에 귀속시킬 작정이다.


우주 관계 기관에 연락을 취했다.
장난전화로 받아들여질까 긴장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메일 주소를 하나 알려주었고, 그 메일로 내가 받은 행성 도면과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 첨부해 주었다.

5분도 안 되어 기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기증의 절차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단순했다. 관계 기관에서 건넨 서류에 도장 하나를 찍는 것.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도장을 꾹 눌렀다.

그 순간, 마치 내 어깨에서 커다란 바위가 굴러내리는 듯 가벼워졌다.

손끝에서 우주가 빠져나갔는데, 책상 위는 그저 조용했다.

거대한 사건이 이렇게 단순하고 고요하게 끝나다니.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역대 최초, 개인 소유 행성 국가 기증!” 같은 제목이 쏟아졌다.

기증의 조건은 철저한 익명 보장이었기에 내가 노출되지는 않았다.

유명 연예인이라니, 숨어 있는 자산가라니, '카더라'와 추측성 기사가 도배되었다.

덕분에 완전히 감춰질 수 있었다.


국제회의가 열렸다. 행성이라면 지구적 측면에서도 큰 이슈일 법하다. 우주 자원에서 갑자기 우위를 점하게 된 나라의 등장에 국가 간 갈등 빚어질까 두려웠지만, 한 국가의 행성 소유는 갈등을 유발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것 앞에서는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국제 공동 연구라든지, 협력 협정 요청이 빗발쳤다.

그러면서 '인류의 발걸음이 별들 사이로 서둘러 옮겨졌다'라나 기증자를 추켜세워 주었다.

담담했다. 거대한 것을 놓아버리는 일이 이렇게도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삶은 이어졌다.

아침이면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은하계보다 더 실감 나는 따스함이 전해졌다.

마트에서 아이와 함께 장을 봤다.

장바구니에 담긴 고기와 채소 과자, 그 무게가 어쩐지 행성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여겨졌다.

저녁에는 책 몇 장을 읽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 들었다.

내 삶은 전과 똑같았다. 행성이 있든 없든, 하루는 같은 리듬으로 흘렀다.

다만 가끔 창밖을 올려다볼 때, 저 멀리 반짝이는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것이었다가,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된 행성.
그 빛을 볼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은근히 데워졌다. 마치 내가 잠시 품었다가 놓아준 보물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반드시 움켜쥐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도, 시간도, 하루의 햇살도. 손에 넣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흔적을 남기고,

내 삶을 빛나게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성이 없었던 듯 살아가지만, 밤마다 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