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일기 - 2035년에 쓴 '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
10년 전,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했다. 이곳은 '읽기만 하는 이'보다 '쓰기도 하는 이'가 더 많아서, 쓰는 맛도 좋고 읽는 맛도 좋았다.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만큼 두려운 게 없었다. 글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숨는다고 숨었다. 그런데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나니 어디에서보다 진짜인 모습이 드러났다. 이름, 나이, 학력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읽어주는 이들이 글 속에 묻어 나는 나를 발견해 주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던 일상과 상상을 올렸는데, 하트가 달렸다. 독자가 생겼다. 구독자가 첫 10명을 돌파했을 때의 기쁨은 천 명, 만 명을 돌파할 때보다 짜릿했다.
틈이 날 때마다 쓰고 또 고쳤다. 처음엔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최소 사흘, 길게는 2주가 넘게 걸렸다. 그런데도 작품을 동시에 세 개나 벌려 놓았었다.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시작되었고, 결과적으론 좋은 전략이었다. 글쓰기 초짜가 글력을 높이는 데는 '마감일 낭떠러지'만 한 게 없었다.
한 해 정도 되니 다른 작가님들의 글에 댓글을 남기거나 소통을 하며 글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들의 글이 궁금해서 찾아가고, 반짝이는 표현에 감탄했다. 건강한 가치관이 스민 작품은 선생님이 되었다. 선배 작가님들이 미숙한 나의 글에 찾아와 준 것처럼, 새로운 작가들을 응원할 수도 있게 되었다.
브런치에는 출간의 기회가 많았다. 감사하게도 한 출판사가 관심을 보였고,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 지 3년 만에 첫 책을 발간했다. 출판사는 나름대로 마케팅을 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슬프지는 않고 미안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1년 뒤 열린 출판사 팝업스토어에서 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SNS가 내 책에 대한 내용으로 뒤덮여 버렸다. 곧 신예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고, 사인회와 인터뷰를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필명으로 소개하고, 안경을 쓰고 헤어스타일을 바꿨지만 기존에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을 속이지는 못했다.
"네가 공담소지?"
그리고 유명한 사람만 받는다는 '돈 좀 빌려달라'는 연락까지 받았다. 그때는 왜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지... 지금 같으면 조용히 '차단'했을 것이다.
6개월 반짝이었다. 사그라진 인기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잘 쓰는 작가님들이 많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저 행운이 먼저 찾아온 것뿐이었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면 눈에 띄게 늘어난 구독자 수와 이러저러한 수입이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책 한 권 출판했다고 냉큼 슬럼프가 찾아왔다.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고 앉으니 쓰고 싶은 것이 없었다. 무엇을 쓰기 좋아했는지 다시 살펴보아야 했다. 그래서 잠시 글을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썼던 글과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나갔다.
고맙게도 몇몇 군데에서 함께 책을 내자며 제안해 주었다. 막상 미팅을 해보면 그들은 '신예 작가, 유망 작가' 타이틀이 필요했지, 내 글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나를 진심으로 기다려주던 이들은 따로 있었다. 글쟁이 친구들이 여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다시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 덕에 두 해 뒤, 다른 한 권의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내 필명으로 된 책이 두 권이나 있다. 큰 업적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진짜 자랑은 따로 있다. 브런치에 발행된 글만 천 편이 넘고, 아직 서랍 속에 머물러 있는 원고도 백 편이 넘는다는 사실이다.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받은 가장 두둑한 인세였다.
오늘, 브런치 20주년을 맞아 공담소의 이름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이제는 진짜 이름을 찾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꼭꼭 숨을 것이다. 내가 공담소라는 정체를 숨기고, 아무도 모르게, 구독자 0명부터 다시.
무명작가여도 괜찮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면 충분하다. 여기는 바로 그런 곳이다.